[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포르투갈과 접전 끝에 비긴 멕시코, 러시아에 무기력한 패배를 당한 뉴질랜드의 대결의 승패는 뻔해보였다. 결과적으로 멕시코가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러시아 2017’ A조에서 뉴질랜드를 상대로 대회 첫 승을 올렸지만, 생각처럼 쉽게 얻은 승리는 아니었다. 멕시코는 전반 42분 크리스 우드에 선제골을 내준 이후 후반전에 간신히 뒤집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멕시코의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은 다채로운 전술 변화를 구사하는 지도자다. 포르투갈과 대회 첫 경기까지 부임 후 25차례 A매치에서 2번 밖에 지지 않았을 정도로 단단하게 팀을 이끌어왔다. 뉴질랜드를 상대로는 선수와 전술 모두 실험하는 패기를 보였다. 선발 명단에 8명이 선수가 바뀌었고, 4-4-2 포메이션에서 3-5-2 포메이션으로 전환했다.

#멕시코의 실험, 뉴질랜드 전방 압박에 잡아 먹히다

오소리오 감독의 복안은 5백으로 수비를 두텁게 한 뉴질랜드의 밀집 수비를 공략하기 위한 측면 활용이었다. 멕시코는 수비 지역에서 빌드업 능력을 갖춘 오스왈도 알라니스를 왼쪽 센터백, 라이트백 포지션을 겸할 수 있는 카를로스 살세도를 오른쪽 센터백으로 두고, 네스토르 아라후호를 가운데 둔 스리백을 배치했다.

스리백 앞에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겸할 수 있는 디에고 레예스를 두고, 좌우 윙백으로 측면 공격수에 가까운 하비에르 아키노와 위르겐 담을 배치했다. 두 선수 모두 윙어 자리가 더 익숙하다. 수비력 보단 공격력이 강점이다. 

멕시코는 포르투갈전에 나선 치차리토와 카를로스 벨라를 모두 쉬게 하고 오리베 페랄타와 라울 히메네스를 투톱으로 배치했다. 이들 뒤에 마르코 파비아과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가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됐다. 세분화하면 3-3-2-2 포메이션으로, 독일이 호주와 B조 1차전 경기에서 가동한 전술과 형태가 같다.

상대 지역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고, 파이브백 밀집 수비를 흔들기 위한 전략이다. 아키노와 담 모두 준족으로 측면을 직선적으로 흔들 수 있고, 파비안과 지오반니는 중앙 지역에서 세밀한 연계 플레이가 가능하며, 페랄타와 히메네스는 단호한 마무리 슈팅 능력이 강점인 투톱 조합이다.

뉴질랜드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 참가했던 U-20 대표팀과 전력이 같았다. 전문 센터백 세 명을 문전에 두고, 좌우 윙백이 아닌 풀백을 배치한 5-3-2 포메이션이다. 장신 투톱 한 명을 두고, 중앙에 세 명의 미드필더는 블록 수비를 펼치지만 공격 전개 과정에서는 패싱력과 드리블 능력 등 공격 기술을 겸비했다. 

실제로 뉴질랜드 U-20 대표팀 감독인 대런 베이즐리가 성인 대표팀 코치다. 러시아전에 무력한 패배를 당했던 뉴질랜드는 멕시코전에 두 명의 선수를 선발 명단에서 바꿨는데, U-20 대표팀에서 데려온 미드필더 클레이턴 루이스와 라이트백 데인 윙엄이었다. 뉴질랜드는 성인 대표팀과 U-20 대표팀이 긴밀한 연속성을 갖고 있었다.

멕시코의 선제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뉴질랜드는 5백으로 나섰으나 경기 초반 수비 라인을 올렸다. 전방에서 강하게 압박하며 멕시코의 후방 빌드업을 괴롭혔다. 우드와 로하스가 멕시코 수비를 압박하자 공이 살아나오지 못했다. 레예스는 스리백 앞에서 조율사 역할이 능숙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파비안과 지오반니가 공을 소유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롱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다 보니 정확성이 떨어졌다. 뉴질랜드가 힘과 높이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전체 점유율은 멕시코가 높아도 위협적인 상황은 역습 공격으로 나선 뉴질랜드가 더 많이 만들었다. 멕시코는 측면으로 경기를 풀 수 밖에 없었다. 아키노와 담이 측면을 돌파한 뒤 크로스를 올려도 문전 공중볼 경합에서 뉴질랜드가 앞섰다. 컷백 패스로 배후로 공을 빼더라도 뉴질랜드가 많은 숫자를 수비진에 배치해 몸으로 막았다.

아키노가 전반전에 몇 차례 번뜩이는 돌파로 기회를 만들었지만 지오반니가 두 번의 슈팅 기회를 허무하게 놓쳤다. 반면 뉴질랜드는 강한 압박으로 멕시코 수비라인의 실수를 유발했고, 결국 전반 42분 상대 지역에서 공을 차단한 뒤 선제골을 만들었다. 루이스의 스루 패스를 받은 우드가 멕시코 수비 배후에서 공을 이어 받아 깔끔한 마무리 슈팅을 꽂아 넣었다. 이변의 순간이었다.

뉴질랜드는 역대 컨페드컵에서 1무 9패를 기록했다. 1무는 2013년 대회 이라크전 0-0 무승부였다. 2골을 넣고 26골을 내줄 정도로 무력했다. 2015년 FIFA U-20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차근차근 축구 인프라를 발전시킨 뉴질랜드는 잉글랜드 출신 앤서니 허드슨 감독이 피지컬적 강점과 공격 전개 과정의 효율성을 강조한 5-3-2 포메이션을 축으로 큰 발전을 이뤘다. FIFA U-20 월드컵에서 2연속 16강 진출을 이룬 뉴질랜드는 멕시코전에서 그들이 지닌 잠재력을 확인했다.

최전방과 최후방엔 힘과 높이, 터프함으로 축구했지만 중앙 지역에선 블록과 전개력, 기술력을 발휘해 골로 가는 길을 열었다. 공은 멕시코가 오래 소유했지만 경기 흐름은 뉴질랜드가 주도하는 형국이었다. 뉴질랜드가 1-0으로 리드하며 전반전을 마쳤다. 멕시코는 전반 32분경 핵심 수비수 살세도가 팔 부상으로 이탈해 이른 시간 교체 카드 한 장을 소진하기도 했다.

#후반전에 쇄신 성공한 멕시코, 경험 부족으로 리드 놓친 뉴질랜드

멕시코는 하프타임에 전술적 교체로 경기 흐름을 되찾았다. 왼쪽 센터백 알라니스를 빼고 중앙 미드필더 엑토르 에레라를 투입했다. 레예스가 센터백 자리로 내려오고, 에레라가 빌드업 미드필더 자리에서 공을 배급했다. 수비진의 안정감이 높아지고, 빌드업의 밀도도 높아졌다. 고립된 채 개인 돌파만 시도하던 아키노와 담은 파비안, 지오반니와 연계 공격이 가능해지면서 위력이 배가됐다.

전반전에 주로 사이드라인을 타고 돌파하던 아키노는 문전 중앙 지역으로 대각선 돌파를 시도하며 중앙 지역 선수들과 연계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후반 9분 히메네스의 동점골이 나왔다. 아키노의 돌파가 파비안을 거쳐 히메네스의 문전 터닝 슈팅으로 마무리됐다. 후반 27분 페랄타의 역전골도 아키노의 돌파를 통해 나왔다. 이 장면은 왼쪽 센터백으로 자리를 바꾼 레예스가 뉴질랜드 공격을 차단한 뒤 직접 공을 끌고 올라가 아키노에게 패스 하며 시작됐다.

후반전에도 멕시코의 3-3-2-2 포메이션은 수비적 허점을 드러냈다. 아키노와 담의 뒷공간에 대한 커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루이스와 토마스의 스루 패스가 여러번 멕시코 수비 배후를 위협했다. 멕시코는 2-1로 경기를 뒤집었으나 경기 종료 시점까지 호각의 경기가 이어졌다.

뉴질랜드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끝내 쫓아가지 못한 이유는 경험이 부족해서였다. 뉴질랜드는 템조 조절에 실패했고, 감정 통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전반전부터 많은 활동량을 보이며 전방 압박을 시도하다 체력이 빠르게 소진됐다. 뉴질랜드는 후반전에 투일로마, 바르바루세스, 패터슨 등을 투입하며 공격 능력을 갖춘 선수를 투입했으나 같은 구조로 경기했고, 마무리 밀도를 높이지 못했다.

멕시코의 승리는 전술적 구조 보다 개인 능력을 통한 결과였다. 아키노가 왼쪽 측면에서 뉴질랜드의 블록 수비와 터프한 힘의 수비를 벗겨낸 것이 주효했다. 스리백을 통한 경기 지배력 높이기 전략은 허점만 남긴 채 실패했다. 멕시코는 벤치에 핵심 선수 여럿을 두며 3차전을 위한 체력을 안배했지만 이날 경기에서 살세도가 크게 다치고, 교체로 들어간 모레노까지 부상으로 교체하면서 수비진에 공백이 생겼다.

멕시코는 포르투갈전 무승부에 이어 뉴질랜드를 꺾었으나 1점 차 신승이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최종전의 부담이 커졌다. 뉴질랜드는 2패를 당하며 4강 진출의 꿈이 좌절됐지만 분명한 가능성을 보였다. 자신들이 가진 피지컬적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전술로 세계 무대에서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는 팀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픽=한준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