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전북현대에서 스카우트로 일했던 차모 씨가 지난 16일 자살한 장소는 전북 월드컵경기장이었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났다.

21일, 올해 처음으로 전북 홈 경기가 열린 전주 월드컵경기장은 사건의 흔적이 거의 없는 모습이었다. 추모 시설도 추모 행사도 없었다. 차 씨가 생을 마감한 연결 통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관계자들의 이동에 쓰이고 있었다.

유일한 추모 메시지는 전북 서포터석에 걸린 걸개였다. 전북 서포터 모임의 이름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근조 문구가 걸려 있었다. 구단 측은 서포터 걸개가 추모 메시지의 전부라고 밝혔다. 구단이 공식적으로 추모의 뜻을 밝혀야 할지 논의하던 중 서포터들의 추모 의사를 들었고, 걸개로 갈음하자는 결정이 났다. 서포터들이 분향소까지 마련하려 했으나 구단은 걸개를 권했다.

최강희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경기에 영향을 줄까봐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경기에 대한 이야기만 나눴으면 한다”며 차 씨에 대한 질문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상대팀 강원FC를 이끌고 방문한 최윤겸 감독이 오히려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어떤 능력이 있고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 됐다”고 애도하는 말을 남겼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선수들도 적극적인 애도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 전북 선수단 중 가장 이른 2006년부터 활약한 최철순은 차 씨와 10년 넘는 인연이 있지만 직접적인 애도 메시지를 남기는 건 꺼렸다.

최철순은 개인적으로 차 씨의 빈소에 조문을 다녀왔고, 차 씨와 가족이 채무로 힘들어할 때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전달한 선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경기장에서는 애도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비극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말자는 분위기였다.

최철순은 “선수들끼리 그 이야기를 안 한다. 어려운 이야기라 못 하고 있다. 고참 선수들 중심으로 ‘운동장에서 마음을 보여주자’는 뜻을 모았고 그걸 후배들이 잘 따라 줬다”고 했다. 공식적인 추모 행사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실장님을 모르는 선수들도 많다보니 경기에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됐다. 경기에서 잘 하는 것이 고인에게도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구단들은 잉글랜드, 호주 등 해외에 비해 추모 행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팀들은 경기를 앞두고 사망한 팬을 위해서도 묵념을 하고 검은 완장을 찬다. 축구 선진국뿐 아니라 호주 등 여러 리그에서 팬을 위한 애도의 메시지를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에선 그런 일이 좀처럼 없다. 창단 직후부터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수원삼성의 사진을 꾸준히 찍었던 고(告) 신인기 씨처럼 감동적인 사연이 있는 경우에나 묵념 등 추모의 시간이 마련된다.

이 점을 고려하더라도 차 씨는 구단과 인연이 매우 깊은 사람이다. 차 씨는 지난 2002년 5월부터 전북에서 일했다. 스카우트를 중심으로 유소년 교육 관련 업무까지 겸할 때도 있었다. 지난해 심판 매수 사건으로 실형을 받을 때까지 약 14년 동안 전북에서 일했다. 특히 최강희 감독이 부임한 2005년 이후에는 최 감독의 심복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고, 상당수 전북 선수들과도 인연이 있다. 마지막엔 실형을 받고 팀을 떠났지만, 전북에서 일한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한 축구 관계자는 “전북 직원들도 피해자”라고 했다. 차 씨의 시신을 직접 보고 경찰에 알렸던 여러 사무국 직원들은 충격과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조용히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이 추모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이유는 되지 못한다.

유가족은 최강희 감독에게 반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차 씨가 사망한 장소를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이 먼저 차 씨에 대해 공식적으로 다루는 건 부담스러울 만하다. 그러나 사건이 이미 알려진 가운데 쉬쉬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애도는 필요하다.

전북은 추모뿐 아니라 사태 수습에도 소극적이다. 차 씨에 얽힌 추측 중 일부는 음모론에 가까울 정도로 구단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전북 측은 최강희 감독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황과 심경을 밝혔고, 경찰 조사에 응했다는 정황만 간단히 이야기했을뿐 구단 차원에서 추모의 뜻을 밝히거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은 구단이 정하기 나름이지만, 그것이 추모를 하지 않는 수준으로 번진 건 아쉽다.

경기 후 이재성은 “함께 했던 선생님이 떠나셔서 많이 놀랐다. 많이 슬펐다.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애도는 개인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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