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이 5월 20일 개막해 6월 11일까지 대장정에 돌입한다. 개최국 한국의 목표는 1983년 대회와 '2002 한일월드컵'에서 성인팀이 이룬 ‘4강’이다. 하지만, 선수들과 신태용 감독 모두 내심 그 이상의 성적, 우승까지 바라보고 있다. ‘풋볼리스트’는 지난 3개 대회의 챔피언이 어떻게 우승을 이뤘는지, 그리고 우승의 주역들은 누구였는지, U-20 월드컵 이후의 행보까지 정리했다.

바로 지난 대회였던 ‘FIFA U-20 월드컵 뉴질랜드 2015’에서 세르비아의 우승은 이변이었다. 동유럽 팀의 우승은 1987년 유고슬라비아(당시 대회명은 청소년선수권) 이후 처음이다. 유고 연방이 갈라진 뒤 처음 동유럽에서 나온 우승이었다.

본선이 시작된 뒤에도 한동안 세르비아를 우승 후보로 꼽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회 첫 경기에서 우루과이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르비아는 남은 두 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각조 1위를 차지한 6팀 중 세르비아의 성적이 가장 나빴지만, 득점이 4골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조 1위였다. 우루과이에 내준 한 골이 조별리그에서 유일한 실점이었다.

토너먼트에서 세비야가 밟아간 과정은 아슬아슬했다. 16강전에서 헝가리와 연장전 끝에 2-1로 승리했다. 8강에서는 미국과 무득점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까지 갔고, 9번 키커까지 가는 접전 끝에 간신히 생존했다. 4강 역시 연장전까지 갔고, 말리를 2-1로 꺾었다.

결승전에서도 연장전까지 끌고 간다면 세르비아는 국제 대회 토너먼트 전 경기를 연장전으로 치르는 진기록을 갖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후반전에 브라질과 한 골씩 주고받은 뒤 연장전으로 돌입했고, 연장 후반 종료를 단 2분 남겼을 때 네마냐 막시모비치가 결승골을 넣어 우승을 이끌었다. 기적적인 우승이었다.

세르비아는 득점왕은커녕 3골 이상 넣은 선수도 없었다. 대회 골든볼(MVP)와 실버볼을 모두 다른 팀에 내주고, 세르비아의 주축 선수였던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는 브론즈볼에 그치는 괴상한 시상식이 벌어졌다. 매 경기 선방을 양산한 프레드라그 라이코비치 골키퍼가 골든글러브를 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세르비아에 스타 골키퍼는 없었지만, 대신 전술적으로 뛰어난 팀이었다. 벨리코 파우노비치 감독은 동유럽 특유의 좋은 체격을 활용하기 위해 필드 플레이 상황에서 세트 피스와 공수 밸런스 유지를 중시했고, 세트피스에서 공수 모두 강점을 보였다. 안정적인 빌드업과 볼 키핑은 아슬아슬한 경기에서 매번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다.

대회 최고 골키퍼로 선정된 라이코비치는 넓은 활동 범위와 적극적인 빌드업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의 분석으로는 ‘발을 쓰는 골키퍼’로 유명한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뮌헨)보다 더 적극적으로 빌드업에 개입했을 정도였다. 과감한 접근법이 승리를 불렀다. 스타 한두 명이 좌우한다는 청소년 대회의 통념과 달리, 세르비아는 전술의 힘으로 우승한 셈이다.

스타의 힘으로 우승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빅클럽에 진출한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밀린코비치사비치는 라치오의 핵심 선수로 활약 중이며 빅 클럽들의 영입 대상으로 자주 거론된다. 밀로스 벨리코비치(베르더브레멘), 마르코 그루이치(리버풀), 안드리야 지브코비치(벤피카), 밀란 가이치(보르도) 등이 당시 멤버 출신이다. 라이코비치 골키퍼는 이스라엘 명문 마카비 텔아비브행을 택했고,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파우노비치 감독은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파이어를 지휘한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