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제주유나이티드는 'KEB 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2위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유일한 16강 진출, FA컵에서 첫 경기 승리를 거뒀다. 세 개 대회 우승을 모두 노리겠다는 시즌 전 선언이 아직까진 유효하다. 한반도 바깥에 고립된 제주가 한국 최강을 노리는 팀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조성환 감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현장르포K] 제주편 두 번째 이야기는 조성환식 리더십과 제주의 달라진 마음가짐을 다룬다.

조성환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은 지난해 여름 무거운 책임감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당시 사퇴 의사를 밝혔던 노상래 전남드래곤즈 감독을 보며 조 감독이 느낀 건 동병상련이었다. 그러나 조 감독은 버텼고, 3위로 올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을 따냈다. 지금은 K리그에서 유일하게 ACL 16강까지 진출한 팀을 이끌고 있다. 

 

스킨십 리더십의 효과

조 감독은 제주 용품사 키카 제품도 아닌데 주황색 옷을 잔뜩 입고 있었다. 골프웨어나 캐주얼을 사러 가도 묘하게 주황색 제품만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주황색 시계도 찼다.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은 한때 동료직원(전북 U-18 감독)이었던 조 감독을 “선수 욕심이 많다는 게 장점”이라고 정리했다. 매년 선수단을 보강하고 싶어하는 건 최 감독의 특징이다. K리그 최고 명장이 된 최 감독은 11세 어린 47세 조 감독을 보며 자신과 비슷한 성격을 발견한 것이다. 실제로 제주는 지난 겨울 강원FC와 함께 가장 적극적인 이적시장을 보낸 팀이었다. 이창근, 이찬동, 박진포, 진성욱 등 포지션별 수준급 선수들이 영입됐다.

조 감독도 스쿼드에 자부심이 있다. “우리가 영입한 선수들에게 준척이라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우리 팀에선 그 선수가 특급이다.” 시즌 개막 전부터 K리그 클래식, ACL, FA컵 모두 우승을 노리겠다고 공언한 것도 “우리가 그럴 만한 스쿼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는 전북현대를 4-0으로 꺾으며 1위로 올라섰고, 11라운드 현재 2위로 떨어지긴 했지만 리그 최다득점과 두 번째로 적은 실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선수단을 강화해 더블 스쿼드에 가깝게 만들수록 팀을 결집시키는 건 힘들어진다. 조 감독은 제주에 이제껏 없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선의의 경쟁을 시켜야 했다. 기존 선수들이 시기와 질투를 안 하니까 나로선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다. 조직력을 만드는데 오래 걸리면 팀이 망가질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 건물에 모여 사는 선수들이 1진, 2진, 2군으로 구분되면 응집력이 없어진다. 조 감독이 제주 클럽하우스의 청년들을 하나로 묶은 방법은 팀내에서 쓰는 표현으로 ‘스킨십 리더십’이다. 대표적인 스킨십이 선수들을 삼삼오오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는 것이다. 제주 선수들은 조 감독과 함께 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밥을 먹으며 축구 이야기부터 사소한 신변잡기까지 나눈다. 감독실로 불려가 면담하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제주의 팀 분위기는 연고 이전 이후 계속 나아지고 있다. 입도(入道) 직후인 2006년에는 선수들 상당수가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적응이 힘들었다. 2010년 박경훈(현 성남) 감독이 팀을 자율적으로 이끌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조 감독은 여기에 응집력을 더했다.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이제 선수들끼리도 몇 명씩 모여서 외식을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박 감독님 시절엔 눈치 보면서 나갔다면, 지금은 선수들끼리 뭉치는 것이 팀 문화가 됐다”는 답이 돌아온다. 따분한 서귀포 생활을 견디기 위해 서로 자극을 주고,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다.

조 감독의 스킨십은 성공을 위한 전략이라기보다 원래 성격에 가깝다. 한 전북 직원은 조 감독이 전북 수석코치(2012) 시절 직원들과도 따로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며, 최근 전북 코칭 스태프 중 가장 적극적으로 다가온 편이었다고 말했다. 조 감독 스스로도 “예전에는 무서운 감독이었지만, 그때도 잔정은 있었다”라고 말한다. 조 감독은 여전히 훈련할 때 선수들과 뒤엉켜 공을 빼앗는다.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사람이 먼저다, 제주의 엔트리 구성

선수들과 조 감독의 거리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정도가 된 것처럼 보인다. 제주는 올해 주장 오반석과 별도로 연령별 대표단을 3명 만들었다. 이들이 선수들의 의견을 모으면 오반석이 조 감독에게 전달한다. 건의사항 중에는 “선수단 피로가 심하므로 훈련량을 줄여달라”는 것도 있다. 한국 축구 문화에서 자칫하면 감독을 우습게 보는 분위기처럼 비쳐지기 쉽다. 그러나 오반석은 “감독님이 꽉 막히지 않은 분이니까 선수들 의견을 존중해주시는 거다. 내가 이야기한다고 기분 나빠하실 분도 아니고. 물론 판단은 감독님이 하신다”라며 조 감독이 보기보다 열린 마음가짐의 소유자라고 전했다.

조 감독이 선수 이탈에 대해 질색하는 것도 응집력 때문이다. 제주는 젊은 선수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환경이 아니다. 2, 3년 만에 육지 구단으로 이적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늘 많았다. 조 감독은 “제주도를 떠나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많다. 박 감독님 시절과 다른 분위기를 추구하고 싶었다. 자기 가치를 증명하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고 억지로 이적할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팀에 애정이 없다는 방증이었다. 이젠 나가고 싶어 하는 선수가 좀 줄어든 것 같다.”

조 감독의 선발 라인업 구성은 상대팀보다 제주 내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먼저’다. 조 감독이 인격적으로 뛰어난 지도자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선수단 융화가 잘 돼야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각 선수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실용주의적이기도 하다.

제주는 스리백을 도입하면서 유럽의 특정 구단을 참고하지 않았다. 첼시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조 감독과 오반석 모두 “우리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조 감독은 유럽 팀을 분석할 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제주가 스리백을 도입한 건 안현범의 윙백 배치 등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내기 좋은 포메이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점에서는 첼시와 일치한다. 안토니오 콘테 첼시 감독도 스리백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스쿼드에 맞는 축구를 찾다보니 도달하게 된 경우다.

종종 제주는 경기의 승리보다 선수들의 고른 출장 기회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격수 중 제 기량을 보이지 못하고 있던 진성욱, 권용현, 황일수 등에게 조 감독은 억지로 출장 기회를 줬다. 이 때문에 승리를 놓치고 위기를 겪기도 했다. 4월 초부터 2무 2패에 그친 기간이 그랬다. 이때 조 감독은 “나중에 더 큰 가치로 돌아올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 공격수는 제주의 승리가 절실했던 ACL 조별리그 5, 6차전과 그 사이에 벌어진 K리그 경기에서 돌아가며 활약했다.

뜨뜻미지근한 건 그만

“내가 싫어했던 게 하나 더 있다. 약팀도 강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그런 거. 그런 마음가짐.”

조 감독이 궁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제주는 우승을 노리는 팀이다. 그동안 제주는 2010년 준우승 이후 중상위권을 목표로 하는 팀에 가까웠다. 스타일리시한 경기 방식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성적은 중위권이었다. 제주 선수들 사이에서도 목표의식이 희박한 경우가 많았다. “올해는 꼭 우승하자”고 말하면서 시즌을 시작하는 팀은 아니었다.

올해 제주는 시즌이 시작할 때부터 세 개 대회 우승을 동시에 노린다고 공언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올해는 진짜 해볼 만 할 것 같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제주 7년차인 오반석은 “생각이 바뀌면서 사소한 게 쌓이면, 팀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면 명문이 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제주는 강해진 만큼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다. ACL 16강에 진출한 건 대회 출범 이후 처음이다. A매치 휴식기에도 순연경기 때문에 긴 휴가를 갖기 힘들어졌다. 조 감독은 주장단을 소집해 놓고 휴가 없는 일정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K리그에서 우리만 올라갈 줄은 몰랐다. 앞으로 우리만 고생하겠네.” 조 감독은 올해 K리그에서 가장 바쁜 감독이지만 ‘고생’을 발음할 때 얼굴은 웃는 표정이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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