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한축구협회는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재부임 논란으로 큰 소동을 치렀다. 한 번 겪으면 면역이 생기는 홍역인 줄 알았는데, 축구협회는 아무런 면역 시스템을 만들지 않은 채 내용 없는 사과에 그쳤다.

19일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이어진 일련의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히딩크 논란, 축구협회 임직원의 비리 논란, 축구협회 시스템, 남자 대표팀 성적 등 최근 축구협회는 다각도로 비판의 대상이다. 정 회장은 여러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대부분의 사과에는 개선 방안이 뒤따랐다. 대표팀 경기력은 신태용 감독에 대한 전폭적 신뢰, 코칭 스태프 확충, 지원 확충, 정 회장 직접 지원 등 다양한 방안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인적 쇄신 및 체계 쇄신은 비리 문제를 처리하느라 확정을 못했을 뿐 이미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이라며 곧 쇄신안이 발표될 거라고 예고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논란거리에 대한 구체적 해명, 해결 방안이 모두 담겨 있었다.

반면 히딩크 관련 논란에 대해서는 확실한 해명도, 개선 방안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했다. 정 회장을 비롯한 축구협회가 이 논란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정 회장은 “최근 정리는 됐지만 히딩크 논란으로 상황이 악화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 물론 초기 대응을 명확하게 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을 덮을 수는 없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나와 축구협회는 신태용 감독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낸다”고 발언했다. 논란의 원인에 대한 시각, ‘사태의 본질’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초기 대응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자평을 해 달라는 요구를 받자 정 회장의 말은 또 갈팡질팡했다. “(김호곤) 부회장께서 문자(카카오톡 메시지) 온 걸 전혀 기억 못 하셨다는 것이 나중에 언론에 나오게 됐는데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히딩크 논란의 본질은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 미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벡 전에서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끝난 것처럼 이야기한 건 방송 관계자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한 거였는데 감독의 잘못이라기보다 스태프가 잘 이야기해줬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런 미세한 점들이 미흡했다.”

정 회장의 말은 ‘대표팀 경기력에 대한 축구팬들의 불만이 히딩크 논란을 낳았을 뿐, 김 부회장의 말바꾸기를 제외하면 축구협회가 잘못한 건 없다’는 투로 들리기 쉬운 발언이었다. 정말 대표팀 경기력이 히딩크 사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다시 받았을 때도 정 회장은 “카타르전, 중국전, 이란전, 우즈벡전이 복합된 것 아닌가. 다른 배경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히딩크 전 감독의 한국 복귀에 대한 논란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히딩크 전 감독은 한국 대표팀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적이 없다. 히딩크 측 대리인인 노제호 히딩크재단 사무총장이 김 부회장에게 사적으로 연락해 부임 가능성을 타진하려 했으나 대화가 이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이 해프닝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논란이 불붙었을 땐 이미 신태용 감독이 선임됐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의 부임 가능성이 이미 사라진 뒤였다.

문제는 단순한 해프닝을 거대한 의혹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 김 부회장의 잘못된 대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이 여전히 이 부분을 간과하는 듯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정 회장이 공개적으로 김 부회장을 질타하진 않더라도, 재발 방지를 약속하거나 재발 방지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할 필요가 있었다.

축구협회는 히딩크 논란 외에도 대표팀의 성적 문제, 임직원 비리 문제가 앞뒤로 터지며 비판을 받았다. 히딩크 논란이 ‘말바꾸기 의혹’으로 번져가자 일종의 비리가 그 뒤에 있을 수도 있다는 여론도 생겨났다. 축구협회는 이 여론에도 제대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김 부회장이 국정감사에 소환된 뒤 응하지 않은 과정 역시 축구협회로선 일정상 충분한 사유가 있었으나 축구팬들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축구협회의 미흡한 대처는 히딩크 논란 내내 이어졌다. 정 회장 스스로 히딩크 논란을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면, 해프닝을 이 정도로 큰 문제로 키워버린 축구협회의 무기력한 대응을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논란의 본질은 대표팀의 부진”이라는 발언은 부적절했다. 대표팀은 언제나 부진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히딩크 논란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는다. 평소 부진과 달랐던 건 축구협회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엉뚱한 진단이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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