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K리그 챌린지(2부)가 낳은 스트라이커’는 거의 없다. 챌린지에서 좋은 활약을 하는 공격수들은 대부분 군복무 중인 클래식 스타들이었다. 밑바닥부터 사다리를 만들며 올라와 스스로 이름을 알린 선수는 손에 꼽는다. 주민규가 대표적이다.

원래 미드필더였던 주민규는 2015년 서울이랜드FC 창단 멤버로 합류하자마자 시즌 23골을 터뜨리며 화제를 모았다. 2016년엔 초반 부진을 딛고 14골을 기록했다. 챌린지 사상 20골을 넘긴 한국인 공격수는 김동찬(2016)과 주민규 뿐이다.

주민규는 이번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능력을 입증해나가고 있다. 클래식 구단으로 이적하진 못했지만, 대신 상주상무 입단을 통해 1부 리그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주민규는 최근 6경기에서 9골을 몰아치는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단숨에 득점 순위 5위로 뛰어올랐다. 한국인 공격수 중엔 양동현(포항스틸러스)에 이어 2위다.

주민규는 “챌린지용이라는 꼬리표를 정말 떼고 싶었다”고 말한다. 주민규의 클래식 활약은 곧 상주의 상승세로, 오랜만의 특박으로 이어졌다. 모처럼 받은 특박으로 서울이랜드 동료들, 학창 시절 은사 등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주민규를 25일 만났다. 주민규 스스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도록 키워드를 몇 개 제시했다.

 

#클래식

경기장 분위기부터 챌린지와는 완전히 달라요. 관중도 많고, 서포터들 응원도 엄청 크고. 그런데 홍철 이야기 들어보니 올해는 관중이 많이 줄어든 거라면서요? 전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날 것 같은데. 경기장에 들어설 때 와, 뛰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수가 없겠다, 라고 중얼거린 적도 있어요.

클래식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어요. 제 목표는 수치가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절 인정해주길 바라면서 입대했어요. 챌린지 꼬리표를 떼고 싶어서. 제 이야기 나오면 모두들 ‘챌린지잖아?’ 작년에 7경기 연속골 넣었을 때도 ‘챌린지잖아?’ 올해 입대했을 때도 ‘클래식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제 뒤엔 물음표가 너무 많이 따라다녔어요. 그걸 느낌표로 바꾸고 싶었고, 입대가 곧 나에 대한 선입견을 없앨 기회라고 생각했죠.

 

#10+

클래식 두 자릿수 골을 넣어서 인정받을 최소한의 조건은 갖췄다고 생각해요. 서울이랜드 동료였던 (이)재안이 형이 “넌 클래식에서 더 편하게 잘할 수 있을 거다. 더 좋은 선수들 사이에서 경기하다보면 잘 될 거야”라고 말해준 적이 있어요. 요즘 그 말이 생각나요.

클래식은 경기 템포가 달라요. 챌린지 수비수들은 공을 잡고 생각할 시간, 슈팅을 때릴 타이밍을 주는데 클래식은 안 줘요. 컨트롤 하자마자 슛을 할지 접을지 순식간에 생각하지 않으면 견제가 들어오더라고요. 그게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김광석(포항스틸러스) 선수의 지능적인 수비, 알렉스(제주유나이티드) 선수의 긴 다리는 정말 뚫기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다들 실수가 적어요. 공이 한 번 넘어가면 잘 돌아오질 않아요. 그래서 양쪽 다 공격이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경기 흐름이 계속 끝에서 끝까지 오가더라고요. 그러면서 템포는 더 빨라지고요.

(김태완 상주 감독은 주민규를 신병으로 받을 때부터 “클래식에서 통할 거라고 생각한다. 주전 공격수가 될 후보군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터닝슛

광주를 상대로 한 번 넣었죠. 챌린지 시절과 비슷한 골이라고요? 그런 것 같아요. 전 언제 어디서든 슛을 때릴 수 있게 컨트롤해놓고 그 다음 때릴지 결정하자는 주의인데, 요즘 운 좋게 골이 들어가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사실 연속골 초반에는 골키퍼 맞고도 들어가고, 운이 따랐거든요. 자신감이 생긴 뒤엔 도전적으로 일단 때리고 보자는 생각을 하니까 챌린지 시절 같은 모습이 나온 것 같아요.

사실 군대 온 뒤에 스타일을 바꾸려 많이 노력했거든요. 상주에서 성공한 이근호, 이정협 선수처럼 많이 뛰는 스타일로 바꿔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김태완 감독님은 거꾸로 문전에서 더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근육을 붙이라고도 하셨고. 다양한 노력을 해 봤지만 제 장점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도 나중엔 “네가 잘 하는 걸 자연스럽게 해라”라고 해 주셨어요. 이제 저다운 모습, 본능적인 플레이를 찾은 것 같아요. 사실 다 좋은 동료들 덕분이죠.

 

# 주님

그런 별명을 붙여주셨던데 너무 과분하죠. 주자 붙은 별명은 박주영 선수처럼 월드컵에서 골 넣고, 아스널 같은 명문 팀을 찍어 본 사람에게나 붙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과정을 밟는 중이에요. 팬들이 좋게 봐 주시니까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로 삼으려고 해요.

주스타, 이건 2015년에 서울이랜드가 이슈의 팀일 때 운 좋게 제가 인터뷰를 많이 하다보니까 동료 형들이 “점마 완전 스타네 스타”라고 놀리다가 생긴 거죠. 이것도 과분하고.

사실 제 친구들은 성 때문에 별명을 붙여준 적이 없어요. 주로 몸집이 커서 붙은 별명이 많았죠. 중학교 때는 킹콩. 대학교 때는 까만 피부가 더해져서 흑곰. 지금은 이태우 코치님이 하리보라는 별명을 또 붙이셨어요. 곰 모양 젤리 있잖아요. 그게 정경호 코치님한테도 퍼지면서 하리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병

일병이에요. 사실 동기들과 저는 “야, 벌써 9개월이나 했어? 우리 다 했네?”라고 말하거든요. 근데 계급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착잡해요. 아직도 일병인가. 그런데 군 생활은 재밌어요. 거짓말 아닙니다. 좋은 동기들, 바보같이 착한 선임들 만나서 재밌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예를 들자면 윤동빈 형. 그렇게 착한 선임이 또 있을까 싶어요. 저희 중에서도 에이스 병사는 축구를 잘 하는 애가 아니라 청소를 잘 하는 애죠. 사회 있을 땐 분리수거를 직접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군대에서 배웠어요. 분리수거의 중요성. 우유팩을 버리기 전에 왜 우유를 꼭 비워야 하는지.

PX 저희도 많이 가죠. 유일한 낙인데. 식단으로 채울 수 없는 단백질도 보충할 겸, 그리고 솔직히 PX 가면 기분이 좋아요. 단 거 하나 먹고 기분전환 하고 다음날 운동 조금 더 하는 거죠. 전 ‘싸지방’은 잘 안 가요. 그리고 게임도 할 줄 몰라서 게임기도 안 갖다놨어요. 함께 생활하는 김병오 형과 주로 티타임을 가지면서 축구에 대한 대화를 나누죠. 진짜입니다.

 

#꿈

모든 축구 선수들이 꿈이죠. 태극마크를 다는 거. 주변에서 이제 국가대표에 도전해보라는 이야기를 해 주시기 시작했어요. 일단 제가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반짝 잘 했을 뿐이고, 시즌 끝날 때까지 꾸준히 잘 해서 들어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봐야죠. 그래도 챌린지 때는 아무리 골을 넣어도 챌린지라는 꼬리표가 있었는데 그때보단 상황이 낫다고 생각해요.

근데 눈 앞의 목표는 잔류를 하고 싶어요. 특히 제 입장에선 클래식을 1년만 뛰어보는 것과 군생활 내내 클래식에서 뛰는 건 엄청난 차이라서요. 정말 간절해요.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 심지어 부대장님, 경기대장님, 행보관님 모두 한마음이 됐어요. 간절함이 결과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보통 연말에 병장들이 제대하면 페이스가 훅 떨어진다고들 했죠. 그런데 우리는 제대자들이 나오자마자 오히려 2승 1무를 거뒀어요. 전북현대를 잡고 제주유나이티드와 비겼어요. 이제 우리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생기면서 오히려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어요.

(상주는 31라운드 현재 강등권 바로 위인 10위다. 11위 인천유나이티드와 승점이 같다.)

#서울이랜드

경기를 챙겨보진 못하지만 결과는 계속 보고 있었어요. 초반에 최하위로 떨어졌을 땐 마음이 안 좋았죠. 군대에 있으니 보탬은 못 되고, 마음으로만 응원했죠. 제가 나간 타격? 사실 그보단 타라바이 없는 타격이 더 커 보였어요. 대신 요즘엔 살아났잖아요. (최)오백이가 잘 하고 있고, 알렉스를 보강했고, 김성주가 또 제대했고. 이젠 새 감독님 색깔이 입혀진 것 같아서 내년이 더 기대돼요. 어제(24일) 잠실 가서 경기를 봤는데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성주도 제대하고 서울이랜드에 복귀하자마자 놀랐대요. 선수들 실력이 그새 는 건지, 원래 잘하는 걸 자기가 몰랐던 건지 아무튼 다들 늘었다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성주가 선임이라 덕을 많이 봤어요. 챌린지에서 상주 가는 선수는 몇 명 안 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많거든요. 성주가 많이 케어해 줘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어요. 다만 제대하는 길을 나가서 배웅했는데 “시간 금방 간다~” 이러면서 약올리던 그 표정이란….

사진= 김완주 인턴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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