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보루시아도르트문트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두 경기만에 탈락 위기에 몰렸다. 정열적인 ‘헤비메탈’ 축구만 돌아온 줄 알았는데 유럽대항전 부진도 함께 돌아와 버렸다.

도르트문트는 27일(한국시간) 홈구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열린 2017/2018 UCL H조 2차전에서 레알마드리드에 1-3으로 완패했다. 지난 1차전 토트넘홋스퍼 원정 경기도 1-3으로 패배한 도르트문트는 벌써 2패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다. 레알과 토트넘이 2승으로 조 선두권을 형성했다.

 

헤비메탈의 부작용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에서 5승 1무를 거둬 1위를 달리고 있다. 무려 19득점 1실점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큰 화제를 모으는 팀이다. 페테르 보스 감독은 지난 시즌 아약스를 UEFA 유로파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던 격렬한 압박 축구를 도르트문트에 이식했다. 한때 ‘압박의 대명사’였던 도르트문트는 돌아온 팀 컬러를 잘 소화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그러나 레알전에선 압박이 잘 통하지 않았다. 대패는 전반 초반부터 예고돼 있었다. 전반 9분과 10분, 레알 미드필더들은 도르트문트의 압박을 수비게 통과한 뒤 연속으로 아슬아슬한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다. 속공이 오가는 난타전은 도르트문트뿐 아니라 레알의 특기이기도 했다.

도르트문트는 레알의 약점을 대신 감춰주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이번 시즌 레알의 약점은 최전방 공격수다. 이날 카림 벤제마까지 부상으로 빠지며 레알은 정통파 스트라이커 없이 경기해야 했다. 대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가레스 베일이 투톱을 맡았다. 도르트문트가 수비라인을 잔뜩 올려준 덕분에 베일은 특기인 배후 침투를 통해 계속 골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베일에겐 아주 편한 환경이었다. 지네딘 지단 레알 감독은 왼발잡이 베일을 왼쪽, 오른발잡이 호날두를 오른쪽에 배치하는 절묘한 용병술을 보여줬다. 호날두는 보통 왼쪽을 더 선호하지만 이날은 오른쪽에서 활동했다. 이렇게 배치하면 안으로 파고들며 슛을 날리기 불편한 대신, 측면으로 빠지며 윙 플레이를 하거나 논스톱 패스를 할 때 더 편하다.

결국 베일 쪽에서 두 골이 나며 승부가 기울었다. 전반 18분 라이트백 다니 카르바할이 절묘하게 찍어 찬 스루패스가 도르트문트 수비수들의 머리를 넘어갔다. 베일의 왼발 발리슛이 적중했다. 후반 4분에는 왼쪽에서 공을 돌리는데 가담하던 베일이 순간적으로 배후로 침투하며 스루패스를 받아냈고, 베일의 땅볼 크로스를 호날두가 마무리하며 점수차를 벌렸다.

도르트문트는 2실점을 할 때까지 유효 슈팅 횟수에서 1대 4로 대책 없이 밀렸다. 아무리 압박을 가해도 토니 크로스, 루카 모드리치는 쓱 빠져나갔다. 도르트문트 좌우 윙어인 막시망 필립, 안드리 야르몰렌코는 모두 투박한 선수들이다. 도르트문트가 더 많은 실수를 범하며 더 자주 공을 잃어버렸다.

도르트문트는 오히려 경기 흐름이 약간 느려진 뒤에야 경기력을 되찾았다. 후반 9분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 넣은 만회골도 속공이 아니라 지공에서 나온 득점이었다. 후반 34분 모드리치의 전진 패스를 호날두가 마무리하며 점수차가 다시 벌어지긴 했지만 후반전 점수만 놓고 보면 동등했다. 레알의 핵심 선수 이스코가 지친 기색을 보이다 교체되는 등 레알의 문제점 덕분이기도 했지만, 도르트문트의 경기력도 마리오 괴체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공을 순환시킬 때 더 나았다.

 

클롭 초창기의 데자뷔

위르겐 클롭(현 리버풀) 감독 아래서 화려하게 부활하던 시절에도 유럽대항전 부진은 도르트문트의 약점이었다. 긴 암흑기를 지나 우승을 차지한 2010/2011시즌 유럽대항전 성적은 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2011/2012시즌 역시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모처럼 돌아온 UCL에서 조별리그 최하위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도르트문트의 유럽대항전 성적은 ‘헤비메탈’에 대한 고집을 약간 줄였을 때 개선됐다. 2012/2013시즌 도르트문트는 전방 공격수들의 개인 능력을 활용한 실리적인 축구를 일부 접목했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마르코 로이스, 마리오 괴체가 맹활약하며 UCL 준우승을 달성했다.

빠르고 격렬한 전방 압박만으로는 유럽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 도르트문트는 클롭 시절이나 지금이나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단을 가진 팀 중 하나다. 격렬한 경기 흐름 속에서 서로 공격 기회를 많이 잡는다면 이득을 보는 쪽은 주로 도르트문트다. 그러나 유럽에선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의 팀을 만나는 경우도 많다. 상대팀들이 대체로 더 신중하게 나온다는 점도 도르트문트의 축구가 통하기 힘들게 만든다.

보스 감독은 지난 시즌 아약스를 유로파리그 준우승까지 올려놓으며 명성을 얻었다. 지난 시즌에도 보스 감독의 축구 스타일은 아슬아슬했다. 16강부터 홈 승리, 원정 패배 패턴이 반복됐다. 4강에서 올랭피크리옹을 만났을 땐 홈에서 4-1로 대파한 뒤 원정에서 1-3으로 지며 한 골 차로 간신히 결승에 갔다. 결승에선 스타 선수가 즐비한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넘지 못하고 0-2로 패배한 바 있다. 이번 UCL에서도 보스 감독의 스타일은 비슷하다. 달라진 점은 홈에서조차 보스식 축구를 하기 힘들게 만드는 레알 같은 상대가 있다는 것이다.

 

보스 감독에겐 가혹한 일정, 뒤집기 가능할까

시행착오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UCL 초보‘ 보스 감독에겐 불운한 일정이었다. 도르트문트를 이끌고 처음 만난 UCL 상대가 토트넘, 그 다음이 레알이었다. 조 최약체 아포엘을 초반에 만났다면 시행착오 속에서도 승점을 벌 여지가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미 교훈은 주어졌다. 토트넘은 도르트문트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는 팀은 아니다. 토트넘은 도르트문트전에서 수비라인을 내리고 버티다 역습하기로 했다. 도르트문트는 여전히 강력한 압박으로 공격을 시도했지만, 실리를 챙긴 건 한껏 물오른 해리 케인을 앞세운 토트넘의 속공이었다. 타국의 전술가들을 상대로 ‘헤비메탈’만 고집하는 건 위험하다는 걸 확인했다. 이어 레알전에선 정면 승부로 이기기 힘든 전력의 팀도 있다는 걸 확인했다.

도르트문트는 아직 아포엘과 한 경기도 하지 않았다. 3, 4차전에서 아포엘을 상대로 이변 없이 2승을 따낸 뒤 5, 6차전에서 토트넘전과 레알전 승리를 노려봐야 한다. 특히 토트넘이 한 경기라도 미끄러지길 기대하면서 맞대결 승리를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미 불리해졌지만 역전 가능성은 있다. 다만 역전을 위해선 보스 감독의 전략이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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