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한준 기자= 신태용 감독이 부임 반 년 여 만에 U-20 대표팀에 자신의 축구철학을 입혀 결과를 냈다. 1차 목표인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16강 진출을 첫 두 경기를 연승으로 장식하며 달성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8강 진출을 이룬지 1년 만에, 더 어린 연령대의 팀으로 더 완성도 높은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신 감독은 한국 축구계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하는 지도자다. 라인을 높이고 후방빌드업을 추구하고, 공격 지역에서 변화무쌍한 위치이동과 논스톱 패스를 추구해 아르헨티나의 명장 마르셀로 비엘사의 철학적 방향성과 궤를 같이한다. 

신 감독은 특별히 비엘사 감독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현역 시절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창조적이고 감각적인 축구를 했다. 그래서 그의 축구철학에는 그만의 언어가 있다. ‘돌려치기’로 알려진 논스톱 패스 플레이와 침투 플레이는 U-20 대표팀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다.

U-20 대표팀보다 기술력과 빌드업 능력이 우수했던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선 ‘돌려치기’를 시도하기 보다, 악착 같은 수비로 상대 공세를 막고, 공간을 지우는 수비에 더 치중했다. 후반 6분 마르셀로 토레스에 한 골을 내주긴 했지만 아르헨티나가 무려 19번의 슈팅을 시도하는 와중에 1실점으로 막아낸 수비 조직력과 집중력은 탁월했다. 

파비안 고도이 디렉TV 기자는 “한국이 전술적으로 매우 잘 훈련되어 있고, 조직적으로 매우 뛰어나 놀랐다. 공을 잃으면 공간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신 감독은 지난 3월 온두라수스, 대회 전 우루과이와 평가전에서 스리백을 시험했는데, 아르헨티나에 대한 대비로 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상대의 기술적인 공격을 막기 위해 문전 공간을 안정화하는 스리백을 썼다.

신 감독이 꺼낸 전형은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스리백과 포백의 유기적 혼용이다. 이상민과 정태욱으로 구성된 센터백 조합 앞에 제3의 센터백으로 김승우를 배치한다. 두 센터백 뒤를 지키는 스위퍼가 아닌 포어리베로 형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두 센터백과 동일 선상에 서거나, 그 뒤를 커버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셋 중 한 명이 선제적으로 수비를 하고 배후 공간 침투에 수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신 감독의 스리백 활용은 수비를 안정화하는 동시에 공격력을 유지하는 현대형 전술이다. 다만 미드필더 이승모를 포백 앞에 두고 빌드업 미드필더로 센터백 사이에 내린 기니전과 비교하면, 센터백 김승우는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두고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한 아르헨티나전은 확실히 수비에 신경 쓴 전략이었다.

센터백을 세 명 배치한 것은 단지 문전 위험 지역에 숫자를 늘리기 위함이 아니다.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 공간까지 센터백 선수들이 넓게 커버하며 위험 지역에서 슈팅을 내주기 전에 차단하고 역습을 전개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그래도 때로 5백을 형성하기도 한 좌우 풀백은 전반전에 윙어 위치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후반전에 상대의 일방 공세를 수비 축구로 잠그며 대응했지만, 스리백을 쓴 것은 골문 앞에서 상대 수비를 몸을 던져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제적인 수비를 위해서다.

이 선제적인 수비를 신 감독은 ‘묻어치기’라고 표현한다. 이는 믹스트존에서 가진 장신 수비수 정태욱과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가 오면 돌아서지 못하게 묻어치는 수비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내가 키가 크다 보니 이동이 느린 편인데, 그걸 보완하려면 상대가 돌아서 뛰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나가서 묻어치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태욱은 큰 키로 인해 순발력이나 스피드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이날 자기 영역을 벗어나 전진하는 수비를 통해 공을 잘라내고, 상대 공격을 밀어냈다. 선제적인 수비를 통해 안정적인 방어를 펼쳤다. 세련된 수비 기술, 영리한 수비를 펼쳤다. 정태욱은 “아무래도 스리백으로 서면 한 명이 나가도 뒤에 두 명이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나갈 수 있다”며 스리백 전술이 묻어치기 시도에 유리하다고 부연했다. 

묻어치기를 벗겨내기 위한 방법이 돌려치기다. 선제적인 수비를 펴면, 돌려치는 패스 플레이와 침투로 공간을 공략해야 한다. 백승호가 전북현대와 연습 경기에서 “상대가 묻어치기를 많이 하니까, (공을) 받으러 나와야 했다. 우리 쪽으로 (수비를) 유도하거나 돌려치기를 해야 한다”며 준비한 경기방식을 설명하기도 했다. 

묻어치기로 막고, 돌려치기로 공략하는 것이 신태용호가 단련한 축구 디테일이다. 기니전은 돌려치기가 잘됐고, 아르헨티나전은 묻어치기가 잘됐다.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두 가지가 경기 중에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구현되어야 한다. 수비수 정태욱은 “후반전에는 너무 수비적으로 경기를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격축구를 못보여줬다”고 인정했다.

신 감독 역시 강력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신태용 축구가 수비가 약하다고 하는 데 오늘 강하다는 걸 보여줬다”고 하면서도, 공격적으로 숙제를 확인했다고 했다. “우리 팀이 더 강해지기 위해선 아르헨티나가 프레싱하고 우리를 짓눌렀을 때, 우리가 갖고 있는 패턴플레이를 영리하게 가져가야 한다.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 하지만 오늘 이기고 올라간 것이 많은 경험이 되고 선수단에게 자신감을 줄 것이다.”

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상대할 잉글랜드는 피지컬 능력과 수비력, 조직력 등에서 기니와 아르헨티나 보다 우세한 상대다. 1승 1무를 기록 중인 잉글랜드전에 패할 경우 조 2위로 16강에 오르게 된다. 아르헨티나전에 잘된 묻어치기를 유지하고, 기니전에 잘된 돌려치기를 발전시켜야 세 번째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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