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5골 8도움이요.”

권순형은 지난해 자신이 기록한 골과 도움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2, 3개 정도 골과 도움을 기록하는 것이 고작이던 선수가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5와 8’은 권순형의 가치가 그만큼 올라갔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짧은 요약문이다.

이번 시즌에도 권순형의 플레이는 여전하다. 제주는 현재까지 K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각각 한 번씩 패배했는데 모두 권순형이 선발 라인업에서 빠진 경기였다. 리그 최강을 노리는 제주에서 보이지 않는 기여도가 큰 선수다. 물론 보이는 기여도 역시 크다. 권순형은 이번 시즌에도 아직 초반인 가운데 2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두 골 모두 아래 인터뷰에서 언급되는 대로 인스텝으로 때린 중거리슛이었다.

‘풋볼리스트’는 4월 초 권순형과 서귀포 현지에서 인터뷰를 나눴고, 장쑤쑤닝 원정을 다녀온 27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가졌다. 권순형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제주 미드필드는 발전한다

많은 선수가 바뀌었고 미드필드도 마찬가지예요. 작년까지는 (송)진형이와 호흡을 많이 맞췄고, 그 다음이 작년에 온 (이)창민이었어요. 올해 (이)찬동이가 들어온 뒤 수비적으로 더 단단해진 것 같고 호흡도 잘 맞아요.

제 역할이요? 경기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 패스 연결을 하면서 미드필드에서 가장 많이 뛰어줘야 하는 위치거든요. 보이지 않게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더 잘 감당해야 할 것 같아요.

찬동이는 다 아시겠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중에서도 파이터형이고, 상대 공격이 우리 수비수들에게 바로 넘어가지 않도록 끊어주는 역할 많이 하고 있고요. 저는 약간 더 위에 위치해서 경기를 조율하거나 연결하는 역할을 많이 맡고 있고. 창민이는 조금 더 앞선에서 공간으로 뛰어주기도 하고 연결고리고 되기도 하고 결정을 짓기도 하는 역할을 맡고 있죠.

우리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은 딱딱하게 정해진 게 없어요. 상황에 맞춰서 움직여요. 한 명이 측면에 쏠려 있으면 반대쪽을 다른 사람이 지키자, 라고 약속을 하는 거죠. 윙백이 오버래핑한 자리도 미드필더가 커버할 수도 있고, 스토퍼가 커버하면 그 자리를 미드필더가 또 커버할 수도 있고. 유기적으로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제주와 함께 부활

2009년 강원에서 프로 데뷔하자마자 어려움부터 겪었죠. 신생팀이라 지는 횟수가 많았고, 같은 포지션에 (이)을용이 형과 오하시 마사히로 같은 베테랑이 있어서 뛰기도 힘들었고, 축구 수준도 갑자기 높아졌고요. 첫 팀이고 고향 팀이라 더 잘하고 싶었는데. 제주에 왔을 땐 좋았어요. 2012년이었는데 진형이와 짝을 맞춰서 재밌는 축구를 했죠. 지금과 비슷한 축구 스타일이요. 제 기억에 시즌 40경기인가 뛰었을 거예요.

그런데 1년 동안 잘 나간 뒤 문제가 생겼죠. 2012년에 체력 소모가 많았고, 잘 쉬는 대신에 운동을 많이 했어요. 욕심이죠. 2013년 초에 연골이 파열되더라고요. 그래서 경기 감각을 잃었고, 회복 후엔 새로 영입된 윤빛가람 선수 등에게 밀렸고. 그 뒤에 군대에 다녀왔죠.

부상으로 고생하던 시절에 조성환 감독님이 코치셨는데, 제가 몸 만드는 걸 많이 도와주셨어요. (어떻게 도와줬다는 건가요?) 음, 그게, 훈련량으로… 훈련을 아주 많이 시켜주셨죠…. 죽을 정도는 아니었고요, ‘이게 더 건강해지는 거야’라면서 많이 시키셨죠. 그리고 상주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훈련량을 늘려서 몸을 잘 만드니까 확실히 점점 괜찮아지는 걸 느꼈어요.

작년에도 제가 주전이라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어요. 백지 상태로 시작한 거죠. 동계훈련 부터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죠. 올해 뭔가 걸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제 모든 걸 다 걸었죠. 축구에만 진짜 집중하려고 했고. 그걸 감독님이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요 성실하게.

#골 넣는 미드필더

우리 팀은 작년에도 골과 도움이 많이 분산됐어요. 감독님은 모든 선수가 공격 상황에서 슈팅이든 크로스든 적극적으로 하길 원하세요. 그래서 다들 자신감 있게 시도를 하는게 공격 포인트 분포도가 퍼져 있게 만들어요.

제 중거리슛도 작년에 갑자기 늘어났죠. 프로 입단 이후 일년에 한 골 정도 넣는 추세였는데 상주상무 입단하면서 많이 넣기 시작했고(당시 2시즌 동안 4골) 그 이유가 상주 시절 파트너는 이호, 김성환, 최현태 등이었는데 저보다 수비적인 선수들이거든요. 편하게 공격에 집중할 수 있어서 그런 슈팅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올해도 찬동이 덕분에 마음 놓고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것 같고요.

예전에는 기회가 와도 ‘아 때릴까말까’ 망설였는데 지금은 과감하게 때리려는 편이죠. 아마추어 때도 골을 많이 넣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제 생각에는 제주 동료 중에 공격력 좋은 선수가 워낙 많다보니까 분산이 되잖아요. 그러다보니 슈팅 찬스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동료들 덕분에.

요령이요? 힘을 너무 주면 오히려 볼이 벗어나더라고요. 그냥 갖다 맞춘다는 생각으로 많이 때리는 것 같아요. 저는 인스텝으로 주로 때리는 편이고요. 흘러나오는 볼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땅 많이 푸고 그래요.

 

#뛰어난 플레이메이커가 되기 위해

저는 피지컬적으로 뛰어난 선수도, 빠른 선수도 아니라서 생각의 속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그래서 간결하게 볼처리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야 팀 템포가 빨라지고 매끄러워지기 때문에. 미리 상황 인식을 해 놔야 되죠. 그게 생각의 속도인 것 같아요. 축구는 모든 상황이 다 다르니까 순간순간에 맞는 플레이를 해야 되는 거니까요.

장거리 패스 연습을 많이 해요. 훈련 끝나면 주로 백동규 선수를 남겨놓고 킥 연습을 해요. 예전부터 룸메였는데 제가 잘 부려먹는 후배라서. 패스 축구는 동료들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동료 선수가 어떤 성향인지, 공간에 줘야 하는지 발밑에 줘야 하는지 구분해서 패스를 해야 돼요. 에를 들어 (안)현범이는 공간으로 줘야죠. 현범이에게 패스하는 건 편해요. 빠르니까 잘 받아주거든요.

 

#경기 중 쾌감을 느낄 때

좋은 호흡으로 원터치 패스를 주고받을 때. 그럴 때 관중들도 희열을 느끼고 탄성을 지르시잖아요? 개인으로서 하는 플레이가 아니고 팀으로서 만드는 플레이잖아요. 그럴 때 쾌감은 골과 비슷해요.

올해 경기 중 예를 들자면 전남전이었던 것 같은데. (박)진포가 오버래핑 나갈 때 제가 패스를 띄워서 해 줬는데 그 다음 크로스를 통해서 골이 들어갔거든요. 그런 장면 나올 때 굉장히 희열을 느끼죠. 제 어시스트로 기록되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우승

국제 대회는 처음이에요. 힘들긴 하지만 못해먹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요. 잘 회복해서 다음 경기 준비해가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이 우리 팀에 중요한 시기잖아요. 매 경기 집중력이 떨어지면 안 되거든요.

장쑤전(25일, 2-1 승) 하프타임 때 (김)원일이가 그러더라고요. 저희는 하프타임에 나가기 직전 선수들끼리 짧은 미팅을 하는데, 원일이가 ‘작년부터 제주에 있었던 선수들 작년 생각 좀 해 봐라. ACL 나가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지금 떨어지면 너무 아깝지 않냐’라고 했어요. 다들 같은 마음가짐이었고, 결국 역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해는 어느 대회든 우승을 좀 하고 싶어요. 선수로서 우승한 적이 없어요. 공격 포인트나 개인상 같은 건 다른 선수들이 다 해도 되니까 우승 좀 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도 비슷했어요. ACL에 나가자는 간절함이 있으니까 결국 이룰 수 있었거든요. 올해도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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