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올해는 선거의 계절이 일찍 찾아왔다. 유례없는 장미 대선이다. 축구계에서도 중요한 선거가 있는데, 국제축구연맹 회장 선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대한축구협회도 회장 선거를 했으나 정몽규 전임 회장이 단독 입후보했다. 두 선거 모두 대의원 투표다. 일반 시민들에겐 투표권이 없다. 

피부로 와 닿는 축구계의 선거는 스페인 라리가 클럽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회장 선거다. 두 팀의 회장이 되기 위해선 클럽 재정을 보증할 수 있는 ‘부’(레알 기준 직전 시즌 구단 총 예선의 15%의 자금을 개인 능력으로 보증)가 필요하지만, 클럽의 유료회원인 ‘소시오’의 투표로 클럽 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다. 

특히 FC바르셀로나의 운영 모델은 사회조합형태의 본보기로, 국내 여러 지자체장들이 방문해 실사를 갖기도 했다. 

프로 축구팀은 보통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미국에서는 프로스포츠 팀의 상업적 측면이 훨씬 더 부각된다. 미국 프로스포츠의 경우 프로팀이 사업성을 이유로 연고지를 옮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축구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는 지역 사회를 위한 사회 공헌과 통합의 의미가 작지 않다.  지역을 기반으로 뿌리내리고, 지역 정서와 클럽의 역사가 일체감을 갖고 운영되어온 유럽에선 연고 이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시오가 총회를 통해 구단의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레알, 바르사와 같은 경우 연고 이전과 같은 일은 벌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스페인의 주요 대도시에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두 팀은 국제적으로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거둬들이며, 웬만한 대기업 수준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상업 스포츠 단체가 아닌 협동조합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사회 구성이 달라진다. 이사가 되기 위해서도 일정기간 소시오(레알 기준 회장 10년, 이사 5년)로 활동한 이력이 필요하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정체성은 필수다. 

레알과 바르사 같은 팀은 첼시, 맨체스터시티, 파리생제르맹처럼 ‘부호’의 손에 운영권이 들어갈 일이 없다. 이들 모두 회장 입후보 조건을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 레알과 바르사의 구단주가 되고 싶다면 소시오 가입 이후 일정 기간 이상 해당 지위를 유지한 뒤 회장 선거가 열릴 때 입후보해야 한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무엇보다 스페인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가장 어려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스페인 라리가에사 이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팀이 레알과 바르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스크 지역을 대표하는 아틀레틱클럽, 팜플로나를 연고로 하는 오사수나도 소시오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팀에도 소시오가 있지만, 구단 운영권이 소시오가 아닌 개별 기업 혹은 사업가에게 있다.

소시오 제도는 하고 싶다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래 스페인 축구팀들은 모두 소시오 제도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구단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정부가 개입해 구제 작업 및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운영방식 법제화를 진행했다.

스페인은 1990년 체육법을 개정하며 프로 축구 팀은 개인 소유 회사가 운영하도록 했다. 스페인축구협회가 각 클럽의 재정 불균형 상태를 우려해 내린 처방이다. 스페인 내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형태는 스포츠 공공유한회사(Sociedad Anonima Deportiva) 형태로 전환했다.

1992년 6월 새 법이 적용되어 1992/1993시즌 스페인 프로리그에 참가하는 136개 클럽이 공공유한회사로 전환했다. 회계감사 결과 준수하게 운영된 4개 팀(레알, 바르사, 빌바오, 오사수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잘 운영해온 전통과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줬다.

소시오 제도의 맹점은 구단 운영의 성패가 성적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구단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선수 영입 및 방만한 경영이다. 회장의 임기가 정해져 있고, 재정 문제에 대한 온전한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1980년대 스페인 라리가의 거의 모든 팀들이 파산 상태에 직면했다. 

현대 축구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영국도 그렇고, 20세기 초 대다수 클럽이 생겨난 스페인의 경우 출범 당시 운영 형태는 이와 같았다. 이들은 스포츠로 돈을 벌기 위한 기업을 설립한 것이 아니라, 축구팀을 만들었다. 구단을 만들고 운영하는 이들이 선수로도 뛰었다. 구단을 설립한 이사진이 출자한 돈으로 운영했고, 경기 입장권 수익 및 후원자 모집을 통해 규모를 늘렸다. 

프로축구의 규모가 커지면서 축구단이 회사처럼 운영되는 시대가 도래했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 반도의 팀들은 꽤 오랫동안 소시오 제도를 유지했다. 레알과 바르사 모두 국제적인 인기가 높아지면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던 소시오 가입의 길이 막혔다. 

두 팀 모두 적정 수준의 소시오 숫자를 유지하고자 한다. 기존 소시오와 혈연관계이거나, 미성년자의 경우에만 신규 소시오 가입 기회가 열려있다. 이는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소시오에 가입하더라도 1년 이상 활동해야 투표권이 부여된다. 

소시오 제도는 팬들의 의견이 직접 반영되고, 운영진이 팬심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고취시킨다. 그러나 회장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정치적 경쟁이 심해져 구단 운영이 정치적으로 흐르며, 정권이 바뀔 경우 구단 운영의 지속성도 흔들린다는 단점도 지적된다.

네거티브 선거는 같은 팀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을 야기하고, 출혈 경쟁을 낳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카탈루냐 민족을 대표하는 바르사의 경우 구단 회장 선거의 정치적 성격이 더 강한데, 이 과정에서 클럽 레전드 요한 크라위프나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불편한 상황 속에 팀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발렌시아나 말라가처럼 외국의 자본가가 구단을 인수한 뒤 팀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큰 낙폭을 겪는 사례를 보면 소시오 제도의 장점이 돋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레알과 바르사처럼 수익 구조가 탄탄하지 않은 작은 규모의 팀의 경우 지역 자본가의 투자금으로 운영하는 편이 더 안정적일 수도 있다. 어느 제도가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제도든 장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클럽 내부인들의 노력과 자정이 필요하다. 

글=한준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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