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수원] 한준 기자= “정성룡은 일단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수다. 나도 그렇고 선수들도 인간적으로 정성룡을 너무나 좋아한다.” 

오니키 도루 가와사카프론탈레 감독에게 후반 추가 시간에 결정적인 선방으로 25일 '2017 AFC챔피언스리그(ACL)' G조 5차전 수원삼성전 1-0 승리를 지킨 골키퍼 정성룡(32)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오니키 감독은 경기력을 떠나 그의 인간성에 대한 칭찬에 집중했다.

“선수로도 대단하다. 오늘 경기도 최고의 활약을 했다. 하지만 그런 실력을 떠나서 존경 받을 만한 선수다. 팀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 인간적으로 훌륭하다.”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정성룡이 무실점 경기를 한 것은 가와사키 입장에서 매우 중요했다. 가와사키는 이날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이었다. 수원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승점 차이를 1점으로 좁혔다. 이스턴SC와 6차전 경기에서 이길 경우 16강 진출이 가능해진다. 수원은 광저우 원정으로 치를 6차전에서 이기지 못할 경우 탈락하게 된다. 이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을 확정할 수 있었던 수원에겐 뼈아픈 패배였다.

결정적인 선방을 펼친데다, 친정팀 수원의 홈경기장, 2015년까지 자신의 안방이었던 빅버드에서 처음 경기를 치른 정성룡은 믹스트존에서 많은 취재진과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하는 정성룡에게 주장 나카무라 겐고가 축하 인사를 건내며 지나갔다. 이제는 적장이 된 서정원 수원 감독도 정성룡의 엉덩이를 때리고 지나갔다.

#존경 받는 정성룡, “내가 잘 막아서 이긴 게 아니다” 

경기 종료 직후 정성룡은 먼저 가와사키 동료 선수들과 승리를 자축하고, 원정을 온 가와사키 서포터즈에게 인사했다. 가와사키 서포터즈가 자리 잡은 곳에 정성룡의 이름을 새긴 걸개가 가장 크게 걸려 있었다. 정성룡이 가와사키에서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믹스트존에서 정성룡에게 후반 추가 시간 구자룡의 슈팅을 막은 것에 대해 동료 선수들이 뭐라고 했냐고 물었다.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긴 했다. 하지만 내가 더 고맙다고 했다. 골을 넣은 선수에겐 우리를 이기게 해준 골을 넣어줘서 고맙다고 했고, 수비수들에게도 잘 지켜줘서 고맙다고 했다. 팀 닥터에겐 날 잘 치료해줘서, 날 잘 뛸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했다. 내가 잘 막아서 이긴 것이 아니다. 팀의 모든 사람들이 노력해서 이길 수 있었다.”

정성룡의 이 한 마디에서 왜 그가 가와사키에서 ‘인격적으로 존경 받는 선수’인지를 알 수있었다. 단순히 같이 식사를 하고, 잘 어울리는 것을 넘어 그의 진실한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물론, 실력은 기본이다. 정성룡은 J리그에서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가와사키는 라인을 높이고 도전적인 축구를 한다. 공격력이 뛰어나지만, 정성룡의 선방을 통해 승리를 지킨 경기가 적지 않다.

#수원과 정성룡의 아름다운 재회

정성룡은 수원 구단 관계자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인사를 한 뒤 북측 골대 뒤에 모여 있는 수원 서포터즈 앞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경기 도중에는 정성룡의 실점을 고대하던 팬들은, 2015년까지 수원의 골문을 지켰던 옛 수호신 정성룡에게 박수를 보냈다.

정성룡은 후반전에 수원 서포터즈를 등지고 경기하는 상황이 오자 “익숙했다. 오히려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가 되더라. 고향에 돌아온 마음이었다”고 했다. 골키퍼라서 애초에 세리머니를 할지 안할지 고민할 상황은 없었지만, 수원 서포터즈와 정성룡 모두 서로 예의를 갖춘 경기를 했다. 정성룡과 수원 팬 사이에 네거티브는 없었다. 

정성룡은 가와사키의 1-0 승리로 경기가 끝나는 휘슬 소리가 울리자 환호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에 대한 질문에 “원래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 보다 땅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 답했다. 친정팀은 물론 지금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와사키를 위해서도 예의를 갖추려는 의도가 묻어난 답변이었다.

수원을 지게 만든 활약을 했음에도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정성룡이 수원에서 남긴 것, 수원을 떠난 뒤에도 보인 친정에 대한 존중심이 전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성룡은 “수원을 떠났지만 계속 수원 경기를 보면서 응원하고 있다. 강원전도 이겼고 수원도 분위기가 좋더라. 직접 선수로 상대해보니 역시 위협적인 팀이었다. 정말 어려운 경기였다. 수원도 충분히 기회가 있었다”며 수원의 전력을 칭찬했다.

이날 결승골을 넣어 경기 MVP가 된 수비수 다츠키 나라는 “수원전이라고 해서 정성룡이 특별히 정보를 준 것은 없다. 코칭스태프에서 분석해서 알려줬다”고 했다. 정성룡도 “이미 한 번 경기를 해보기도 했고, 전력 분석을 코칭스태프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따로 얘기해줄 필요는 없었다”고 했다. 보통 친정팀을 만나게 되면 현 동료들에게 숨겨진 힌트를 주기도 하는데, 정성룡은 무리해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나서려 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했다. 

정성룡은 “일본 J리그에서는 ACL 경기가 있으면 금요일에 경기를 한다. 수원은 토요일에 경기를 했다. 금요일에 경기를 했는데도 힘들었는데, 수원 선수들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정원 수원 감독도 이날 경기에서 “많은 경기를 치르며 체력적으로 어려웠다”며 후반전에 가와사키의 공세를 버티지 못한 이유를 말했다. 정성룡은 수원에 패배를 안기고, K리그 팀들의 ACL 도전을 위한 조언도 남기고 떠났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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