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난징(중국)] 류청 기자= “축구로 역사적 응어리를 풀 수 있다면 멋진 일 아닌가”

 

최용수 장쑤쑤닝 감독이 홈 팬 마음을 사로 잡았다.

 

최 감독은 11일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4차전에서 감바오사카를 3-0으로 누르고 16강에 올랐다. 4연승을 기록하며 남은 2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조 1위를 확정 지었다. 알렉스 테세이라와 하미레스 그리고 홍정호가 연속골을 넣었다.

 

이날 승리는 여러 가지로 뜻 깊다. 장쑤쑤닝 연고지인 난징은 중국 내에서 반일 감정이 가장 큰 도시다. 1937년 30만 명이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최 감독은 이를 멋지게 축구로 갚아주려 했고, 결국 승리했다.

 

장쑤쑤닝은 의미 있는 승리로 ACL 첫 16강에 올랐다. 장쑤쑤닝은 전신인 장쑤세인티 시절을 포함해 2번 ACL 본선에 진출했지만 모두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 2016 시즌에는 2승 3무 1패를 하고도 탈락했다.

#난징대학살 80주기 

난징은 아픔을 간직한 도시다. 난징은 중국 국민당 시기 중화민국 수도였다. 1930년 기준으로 성 내에만 110만 명이 살 정도로 번영했다. 번영은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공포로 변했다. 북동부 베이징과 톈진을 상대적으로 손쉽게 장악한 일본군은 상하이에서 국민당 군대에 막혀 2개월 동안 고전했다. 가까스로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은 수도 난징으로 진격하며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다.

 

국민당 정부는 난징을 버리고 충칭을 임시수도로 택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국군 사령관 탕셩즈는 항전하겠다며 버틴다. 하지만 탕셩즈는 난징이 함락되기 하루 전 양쯔강을 건너 도망간다. 남은 시민들은 약 6주 동안 처참한 학살에 시달렸다. 주장이나 검증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 시기 최소 30만 명이 살해됐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포로를 생체실험에 쓰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난징대학살, 중국에서는 난징대도살, 유럽에서는 아시안 홀로코스트라부르는 사건이다

                                                                        

난징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난징대학살을 난징사건이라 부르며 축소하려고 한다. 일본 우익 중에서는 난징대학살이 환상에서 빚어진 환상설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제 총과 칼로 복수를 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난징은 11일 장쑤쑤닝이 일본 팀 감바오사카를 이기며 다른 방법으로 환호하길 바랐다. 3.1절에 제주 이창민이 감바오사카를 상대로 득점한 후 ‘산책 세리머니’를 하자 한국 팬들이 박수를 보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과를 얻은 최용수

최용수 감독은 이런 역사적인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다. 다른 부분이 아니라 승리로 팬들에게 승리를 주려 했다. 로저 마르티네스와 주장 우시 부상 그리고 알렉스 테세이라 징계 여파도 있었지만, 지난 주말 충칭당다이와 경기에서 젊은 선수를 대거 내보낸 이유도 여기 있었다. 감바오사카를 잡고 구단 역사상 첫 16강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최 감독은 3백을 들고 나왔다. 공간을 주지 않고 빠르게 역습하겠다는 의지였다.

 

결과는 빨리 나왔다. 징계로 리그 3경기를 뛰지 못한 테세이라가 중원에서 공을 빼앗아 그대로 페널티 박스 안까지 드리블을 한 후에 마무리까지 했다. 전반 6분에는 다시 한 번 수비수 공을 빼앗은 장쑤가 역습을 펼쳤고, 이번에는 테세이라가 내주고 하미레스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골을 터뜨렸다. 장쑤는 전반 내내 분위기를 잡았다. 골이 필요해 라인을 끌어올린 감바오사카를 지능적으로 괴롭혔다. 결국 장쑤는 전반 43분 홍정호가 한 골을 더 뽑았다.

 

난징 올림픽 스타디움은 뜨겁게 타올랐다. 3만 8천여 팬들은 올 시즌 가장 큰 승리를 만끽했다. 최 감독은 후반 중반 부상으로 리그 첫 경기 이후에 뛰지 않았던 로저 마르티네스까지 투입했다. 컨디션 조절을 시키기 위해서다. 마르티네스는 승부 추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100%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날카로운 몸짓으로 박수를 이끌어냈다. 장쑤는 비슷한 패턴 플레이를 계속한 감바오사카를 3-0으로 잡고 사상 처음으로 ACL 16강에 올랐다.

 

경기 끝나고 만난 최 감독은 담담했다. 그는 “ACL은 정말 운이 많이 작용한다. 오늘 감바오사카 주전이 5~6명 정도 빠졌다”라며 “우리는 리그에서 징계로 빠졌던 알렉스 테세이라가 간절한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빨리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 승리에서 그치지 않고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난징은 역사적으로 질곡이 많은 도시다. 그런 부분에서도 위안을 줄 수 있어 기쁘다”라고 했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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