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1시즌 우승을 자축하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파비오 카펠로 감독, 프랑코 센시 회장, 프란체스코 토티(왼쪽부터)

[풋볼리스트] 선수는 성장하고 진화한다. 한결 같은 패턴으로 경기하는 이도 있지만, 주어진 상황이나 포지션에 따라 경기 방식을 바꾸는 이도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프란체스코 토티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풋볼리스트'는 진화하고 변화한 선수 이야기를 모았다. 

 

축구의 낭만은 공격과 미드필드 사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 흔히 2선이라고 부르는 이 곳에서 예측불허의 선수들이 대대로 플레이해 왔다.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지네딘 지단, 현대의 리오넬 메시까지 축구사 최고로 꼽히는 선수들의 포지션이다.

프란체스코 토티는 그 중 최고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선수다. 토티는 현대축구가 갓 태동한 1993년 데뷔해 25년차 프로 선수로 활약 중이다. 토티의 능력을 끌어내는 건 로마를 거쳐 간 모든 감독들의 숙제였고, 그들의 전술 속에서 토티의 포지션과 역할도 계속 변했다.

토티를 통한 감독들의 실험은 루치아노 스팔레티 시절 ‘가짜 9번’의 현대적 재창조라는 중요한 결실로 이어지기도 했다. 토티는 공격 2선에 존재하는 모든 포지션과 모든 역할을 경험했다. 토티 개인의 역사를 탐구하다보면 2선으로 분류되는 모든 포지션을 돌아볼 수 있다.

 

1기 : 세콘다푼타로 데뷔(1993~ )

토티는 공격수인가, 미드필더인가?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갖고 있던 토티는 데뷔 초반 섀도 스트라이커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세콘다푼타(seconda punta)라고 부르는 포지션이다. 투톱 중 한 명이 문전을 어슬렁거리는 전문 공격수라면, 나머지 한 명은 좀 더 먼 거리에서도 골을 노리는 동시에 동료에게 득점 기회도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토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부야딘 보스코프 감독을 거쳐 카를로 마초네 감독 시절부터 토티가 본격적인 주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프로 2호골이 토티 특유의 칩 슛이었다. 공 아래쪽을 가볍게 찍어 차 골키퍼의 머리 위를 넘기는 기술은 토티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다. 이탈리아어로는 숟가락이라는 뜻의 쿠키아이오(cucchiaio)라는 단어로 부르는 기술이다. 토티 특유의 비범한 감각이 잘 드러난다.

토티는 감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능력이 유독 발달한 선수다. 주로 쓰는 오른발뿐 아니라 왼발로도 칩 슛을 종종 보여줬다. 어시스트를 할 때는 힐 패스가 토티의 가장 큰 무기였다. 뒤꿈치를 비롯한 발의 온갖 부위를 이용한 원터치 플레이는 다른 선수들이 연습한다고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뿐 아니라 때론 동료도 예측할 수 없는 토티의 능력을 살리기 위해 이탈리아식 포지션 구분에서 가장 어울리는 위치가 세콘다푼타였다.

“데뷔 즈음엔 동료들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았다. 가능한 한 많은 득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득점보다 그게 더 좋았다.”

 

2기 : ‘반대발 배치 윙어’(1997~ )

재능은 있지만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이탈리아 대표로도 뽑히지 못하고 있던 21세 토티는 완전히 새로운 축구를 만나며 득점에 눈을 떴다. 1997년 로마에 부임한 즈데넥 제만 감독이었다. 토티는 이때 세리에A 13골, 컵대회 1골을 기록하며 생애 처음으로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제만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감독 중 가장 독특하고 괴팍한 인물로 꼽힌다. 나름의 원칙으로 완성한 4-3-3 포메이션을 통해 젊은 공격수들의 재능을 극대화시키는 공격 축구로 하부리그에서 여러 차례 돌풍을 일으켰다. 로마에 도착한 제만은 토티를 눈여겨봤고, 왼쪽 윙어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오른발잡이 왼쪽 윙어인 토티는 사이드라인에서 거의 플레이하지 않았다. 대신 페널티 지역 근처로 진입하며 동료의 패스를 받은 뒤 상대 풀백 한 명을 돌파하고 오른발 슛을 날리는 것이 특기였다. 지금은 상식이 된 포지션이지만 1997년 당시에는 생소했다.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호나우지뉴, 리오넬 메시 등이 보여주며 세계적 유행을 탄 ‘반대발 배치 윙어’를 토티가 10여년 먼저 멋지게 소화하고 있었다. 돌파와 킥이 뛰어난 선수를 이 위치에 배치하면 상대 풀백과의 일대일 돌파 기회를 많이 만들어줄 수 있고, 선호하는 발로 감아찰 기회를 많이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만 아래서 두 시즌을 보내며 토티는 세리에A 25골을 넣었다. 그 중 ‘반대발 배치 윙어’의 전형적인 골이 8골 정도였다. 왼쪽에서 중앙으로 달려들며 동료의 패스를 마무리하거나, 왼쪽 멀리서 오른발 중거리 슛을 날리거나, 수비를 돌파한 뒤 득점하기도 했다. 킥력이 점점 향상되며 프리킥 골의 비중이 높아져갔다.

“조금 다른 역할을 갖게 됐다. 하나의 팀으로서 더 뛰어야 했다. 기본적으로 내 플레이스타일은 같았지만, 측면에서 상대 선수를 돌파해 들어가기 쉬웠다. 두 시즌 동안 굉장히 즐긴 역할이다.”

 

3기 : 트레콰르티스타(1999~ )

제만이 물러나고 실용주의의 화신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로마에 부임하면서 팀 컬러는 크게 변했다. 로마는 이탈리아 축구를 이야기할 때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실용적인 팀이 됐고, 토티는 자유분방하게 상대 진영을 휘젓기보다 공격수 아래서 창의적인 어시스트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흔히 ‘7공주 시대’라고 부르는 중흥기 세리에A는 각 팀에 한 명씩 존재한 스타 플레이메이커들을 위한 무대였다. 유벤투스의 지네딘 지단, 피오렌티나의 후이 코스타, 파르마/라치오의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AC밀란의 즈보니미르 보반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외국인인 이들 사이에서 로마를 상징하는 선수는 토티였다. 토티는 이탈리아 대표급 공격수인 빈첸조 몬텔라, 마르코 델베키오를 받쳤다.

트레콰르티스타(trequartista)는 ‘4분의 3에 위치한 사람’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흔히 3-4-1-2나 4-3-1-2처럼 ‘세 번째’ 라인을 혼자 책임지는 포메이션에서 주로 쓰는 말이다. 뒤에서부터 세면 세 번째지만, 공격진부터 세면 두 번째, 즉 2선이다. 2선을 공격형 미드필더 혼자 책임질 때 트레콰르티스타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 이 표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사전적 의미뿐 아니라 한 팀의 공격 작업을 혼자 책임진다는 무게감도 포함돼 있다.

카펠로가 부임한지 두 번째 시즌에 로마는 세리에A 우승을 차지한다. 아직까지도 토티 커리어에 유일한 리그 우승이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영입돼 20골을 몰아쳤다. 바티스투타, 몬텔라를 뒤에서 보좌한 토티는 페널티킥을 비롯한 각종 전문 키커로 활약하며 리그 13골을 기록했다.

토티의 득점 패턴은 윙어일 때와 크게 달라졌다. 주로 공격수와 연계 플레이를 하며 2차 기회를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폴리를 상대로 넣은 골은 전형적인 트레콰르티스타의 득점 장면을 보여준다. 바티스투타가 원터치로 내준 공을 토티가 페널티 지역 바로 바깥에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마무리했다. 토티의 강력한 킥이 빛난 시즌이었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300골을 달성했을 때 골 장면으로 만든 모자이크.

4기 : 카사노와 함께 ‘9.5번’(2002~ )

로마가 자랑하는 바티스투타, 몬텔라, 델베키오가 자주 부상을 당하며 토티는 점점 전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003/2004시즌 바티스투타가 떠났고, 토티와 안토니오 카사노가 본격적인 투톱을 이뤄 활약했다.

토티는 다시 한 번 투톱의 일원이 됐지만 이때 역할은 과거 맡았던 세콘다푼타와는 달랐다. 토티 앞에 전문 공격수(prima punta)가 있는 것이 아니라, 카사노와 토티 모두 창의적인 섀도 스트라이커의 동선을 공유하며 유연하게 플레이했다. 9번과 10번의 구분 없이 두 명 모두 9.5번이었던 셈이다. 두 선수의 호흡이 잘 맞는 날에는 상대 수비진의 예측을 깨는 패스가 끝없이 쏟아졌다. 토티가 20골, 카사노가 14골을 기록하며 로마를 준우승으로 이끈 시즌이다.

토티가 지금까지도 행복한 기억으로 갖고 있는 후반기 유벤투스전은 창의적인 9.5번의 조합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당시 로마는 토티의 1골, 카사노의 2골을 포함한 4-0 승리를 거뒀다. 카사노가 패스하면 토티는 뒤꿈치로 돌려주고, 토티가 드리블을 시작하려 하면 카사노가 영리하게 수비수들을 유인하며 길을 열어줬다.

“로마에서 내가 뛴 최고의 경기? 유벤투스를 상대한 2003/2004시즌 경기라고 생각한다. 카사노와 나는 거의 모든 패스를 성공시켰다”

 

5기 : ‘가짜 9번’의 현대적 시조(2005~ )

떠오르는 명장이었던 루치아노 스팔레티는 2005년 로마에 부임한 뒤 공격적인 축구를 하고 싶었다. 문제는 공격수였다. 몬텔라, 카사노, 후보 공격수인 샤바니 농다가 모두 골골거렸다. 카사노는 구단과 마찰을 겪다가 시즌 중 레알마드리드로 떠나게 된다.

스팔레티 감독이 어쩔 수 없이 토티를 최전방에 배치하기로 하자 예상하지 못한 효과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토티는 최전방에 서 있으면서도 미드필더 같은 플레이를 했다. 로마가 역습을 할 때면 일단 토티에게 공이 가고, 침투하는 동료 미드필더에게 토티가 절묘한 스루 패스를 제공하는 공격이 가능해졌다. 수비 임무에서 거의 해방된 토티는 상대가 공격하는 동안 가장 빈틈이 많은 위치를 찾아다니다가 역습이 시작될 때 높은 확률로 동료의 패스를 받아냈다. 상대 수비수로서는 토티를 따라 미드필드로 내려가며 견제해야 할지, 무시하고 내버려둬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토티의 충격적인 활약은 현대적인 가짜 9번의 첫 사례로 꼽히곤 한다. 이 역할은 토티의 캐릭터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토티는 어느 미드필더보다 창의적인 패스를 할 줄 알지만 팀 전체를 지휘하거나 공격 템포를 조절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만약 토티가 플레이메이커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그는 팀의 위대한 지휘자가 되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는 포워드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상대의 페널티 박스 가까이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칠 뿐이다“(아젤리오 비치니 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라는 평은 토티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토티는 안정감 있는 미드필더는 아니었지만, 마지막 패스의 창의성은 어떤 미드필더보다도 뛰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공격수 위치에서 미드필더 같은 플레이를 하는 역할이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스팔레티와 함께, 내 포지션은 궁극적으로 바뀌었다. 나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자유를 가졌다. 내 경력을 통틀어 최고 포지션이었다고 생각한다.”

 

5기 이후 : 다시 제만, 그리고 다시 최전방으로(2012~ )

스팔레티가 2009년 로마를 떠난 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로마를 거쳐갔다. 토티의 말년에 영향을 미친 건 2012년 부임해 한 시즌도 못 채우고 떠난 제만 감독이다. 제만은 로마에 돌아오자마자 공격 축구를 지탱하기 위한 혹독한 체력 훈련을 시켰다. 이때 토티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젊은 시절보다 한층 노련하게 제만의 요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왼쪽 윙어로 배치된 토티는 시즌 12골을 넣으며 활약했다.

2013년 부임해 세 시즌 조금 넘게 로마를 지휘한 뤼디 가르시아 감독은 제만과 마찬가지로 4-3-3 포메이션에 천착하는 인물이었지만 윙어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 가르시아의 윙어는 빠르고 직접 돌파를 통해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어야 했다. 릴에서 에덴 아자르를 지휘할 때 맡겼던 역할이다. 토티는 제르비뉴 등 동료 선수들에게 측면을 맡기고 최전방으로 다시 올라갔다.

나이에 상관없이 늘 주전이었던 토티에게도 황혼이 찾아왔다.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은 지난 2016년 부임해 토티를 벤치에 앉혔다. 토티는 보통 교체 멤버로 투입돼 상대 진영 곳곳을 돌아다니며 패스를 연결하거나 골을 노린다. 상대 압박이 적은 곳에서 스루 패스를 날리는 것이 요즘 토티가 선호하는 플레이다. 거의 20년 만에 후보 신세가 된 토티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 유력하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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