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경기 중 수시로 전술을 바꿔가며 포지션을 파괴하는 건 한때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의 특기였다. 그러나 이번 시즌 승부처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유독 변화를 꺼렸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홋스퍼 감독의 다양한 전략에 잡아먹혔다.

18일(한국시간) 영국의 맨체스터에 위치한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2018/2019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 2차전을 치른 토트넘이 맨시티에 3-4로 패배했다. 앞선 1차전은 토트넘이 1-0으로 승리했다. 두 경기 합산 점수가 4-4인 가운데 원정 골 우선 원칙에 따라 토트넘이 4강에 진출했다. UCL 출범 이후 토트넘의 최고 성적이다.

전력이 앞서고 홈 어드밴티지 위에서 경기한 맨시티는 ‘플랜 A’인 4-3-3 포메이션을 고수했다.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페르난지뉴 대신 일카이 귄도간이 뛴 것 말고는 주전 라인업과 평소 전술 그대로였다.

토트넘은 4-3-3 포메이션을 격파하는 자신들의 ‘카운터 펀치’를 들고 나왔다. 첼시를 상대로 큰 효과를 봤던 4-3-1-2 포메이션이다. 공격진이 중앙에 집중돼 있고 포지션 체인지를 하기 용이한 4-3-1-2는 상대의 중앙 빌드업을 막아낸 뒤 속공으로 득점하는데 용이하다.

두 팀이 노림수가 모두 적중하며 전반 21분까지 5골이나 터졌다. 전반 4분 케빈 더브라위너의 패스를 받은 라힘 스털링의 골부터 시작해 11분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도와준 베르나르두 실바의 골, 21분 또 더브라위너에게서 스털링으로 이어진 골까지 맨시티의 초반 세 골 모두 특유의 빠르고 정확한 패스워크와 넓은 공간 활용이 적중한 장면들이었다.

반대로 토트넘은 상대 중앙에서 과부하를 유발, 두 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반 7분과 10분에 넣은 손흥민의 두 골 모두 상대 수비의 실수를 이끌어낸 것이 골로 이어졌다. 첫 골 직전 델리 알리의 스루 패스를 맨시티 수비수 아이메릭 라포르테가 끊을 수 있었으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손흥민 앞으로 공이 흘렀다. 두 번째 골 상황은 라포르테의 공을 공격수 루카스 모우라가 압박해 따내며 시작됐다.

두 팀의 차이는 가용할 수 있는 전술의 종류와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었다. 토트넘은 포체티노 감독 부임 이후 비슷한 선수들을 꾸준히 기용하면서 점점 전술 소화 능력이 높아지고 있는 팀이다. 손흥민 역시 포체티노 감독 아래서 전술 지능이 높아지고 있다.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많다. 한 경기 안에서 너댓 번 전술을 바꿔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는 팀이다. 파울루 벤투 한국 감독이 지향하는 세련된 현대 축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토트넘은 4-3-1-2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한 뒤, 두 골을 넣고 나서 손흥민을 왼쪽 윙어로 이동시켜 4-2-3-1 포메이션으로 전환했다. 잠시 후에는 원톱 모우라를 더 끌어내려 공격형 미드필더 델리 알리와 함께 2선 압박을 맡겼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 식으로 투톱이 수비에 많이 가담하는 4-4-2 형태였다. 전반 41분 미드필더 무사 시소코가 부상으로 교체되자 알리를 시소코 자리로 내리고 공격수 페르난도 요렌테를 투입해 4-4-2를 유지했다. 손흥민과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좌우 미드필더로서 더욱 수비적인 역할을 맡았다.

토트넘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앙 미드필더는 19세 유망주 올리버 스킵이었다. 시소코의 부상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멀티 포지션 능력을 갖춘 선수들로 채워진 토트넘은 미드필더가 아닌 공격수 요렌테를 투입하고도 수비 공백 없이 포메이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후반 14분 맨시티가 집요한 공격 끝에 네 번째 골을 넣자 토트넘도 공격이 필요했다. 토트넘은 멤버 교체 없이 요렌테를 원톱으로 전진시키고 2선을 모우라, 에릭센, 손흥민으로 배치하는 4-2-3-1 포메이션으로 회귀했다. 이때부터 19분 동안 토트넘은 슈팅 횟수에서 3회 대 1회로 앞섰다. 마음만 먹으면 맨시티 원정에서도 공격을 강화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줬다.

요렌테의 장신을 활용한 공격으로 후반 28분 한 골을 넣어 다시 4강 진출이 가능해지자, 포체티노 감독은 후반 37분 모우라를 빼고 왼쪽 수비수 벤 데이비스를 투입해 수비를 강화했다. 선수 배치를 유지하면서 원래 왼쪽 수비수인 대니 로즈를 왼쪽 윙어로 배치했다. 로즈와 손흥민이 더욱 수비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4-4-1-1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에도 종종 사용했던 전술이다.

후반 추가시간 1분, 토트넘은 로즈까지 빼고 센터백 다빈손 산체스를 추가했다. 추가시간이 6분이나 주어진 경기에서 막판 5분 동안 5-4-1 포메이션으로 버텼다.

토트넘은 이 경기에서 포메이션을 네 번 바꿨다. 같은 4-4-2 포메이션과 4-2-3-1 포메이션 속에서도 선수 교체를 통해 미세한 변화를 주고 변수에 대처하면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 했다. 모든 교체가 전술 변화를 야기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최소 7차례 전술 변화를 준 경기였다.

반면 맨시티의 전술은 경직돼 있었다. 원래 현대축구의 멀티 포지션과 포지션 파괴, 경기 중 유연한 포메이션 변화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주도한 흐름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뮌헨에서 전술 지능 높은 선수들에게 2, 3가지 위치를 소화하게 하며 파격적인 전술을 자주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8강전에서 보여준 선택은 유독 보수적이었다. 지난 1차전은 수비적인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고, 2차전에서 득점이 절실할 때도 공격 강화를 주저했다.

페르난지뉴 대신 귄도간을 선발로 쓴 선택까지는 상당히 모험적이었지만, 그 뒤로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맨시티는 후반 18분 공격형 미드필더 다비드 실바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 페르난지뉴를 투입했다. 이때 귄도간을 실바의 자리로 전진시켰기 때문에 포메이션은 연전히 4-3-3이었다. 승리를 지키면 되는 상황에서 수비적인 선수를 갈아끼운 것에 불과한 교체였다.

득점이 절실해진 후반 39분, 과르디올라 감독은 윙백 벤자맹 망디를 빼고 원래 윙어인 르로이 자네를 투입했다. 어느 정도 교체 효과를 보긴 했지만, 자네의 위치는 망디와 다를 바 없는 윙백이었다. 공격 숫자를 파격적으로 늘린 건 아니었다. 왼쪽 윙어 스털링과 자네의 콤비 플레이가 맨시티의 마지막 승부수였으나 자네의 돌파는 두어 차례 토트넘 수비를 흔든 것 외에 소득이 없었다. 맨시티 벤치에는 공격자원인 리야드 마레즈, 가브리엘 제주스가 남아 있었으나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들을 투입하지도 않았다. 지난 1차전과 마찬가지로 불리한 가운데 전술 변화를 주저했다.

토트넘은 변화무쌍한 팀으로 거듭났고, 그 가운데 전술 기여도가 나날이 상승하는 손흥민이 있다. 반면 한때 전술 실험의 선구자였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자신의 장점을 포기하고 뻣뻣한 축구를 하다 탈락하고 말았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UEFA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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