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런던(영국)] 김정용 기자= 축구 선수들을 조합해 한 팀으로 만드는 일을 퍼즐 놀이에 비유하곤 한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전혀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을 대충 끼워맞춘 채 토트넘홋스퍼 원정에 나섰다. 재능의 크기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었다.

1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2017/2018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25라운드를 가진 토트넘이 맨유를 2-0으로 꺾었다. 순위는 여전히 맨유가 2위, 토트넘이 5위였다. 그러나 두 팀의 승점 차는 최근 10경기에서 5점이 줄어들었고, 승점 5점 차로 추격 가시권에 들어온 꼴이 됐다.

맨유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한 스타 알렉시스 산체스를 선발로 내보냈다. 산체스는 지난 1월 26일 FA컵에서 4부 리그의 여빌타운을 상대로 맨유 데뷔전을 가졌고, 이날 도움을 기록했다. 토트넘전은 산체스가 맨유 선수로서 갖는 두 번째 경기이자 첫 EPL 경기였다. 한편 토트넘은 루카스 모우라를 영입했으나 이날 하프타임에 관중들에게 인사만 했을 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전력 보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맨유가 오히려 밀린 경기였다. 토트넘은 경기 시작 후 1분도 되기 전에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선제골로 앞서갔다. 전반 28분 키에런 트리피어의 강한 땅볼 크로스를 막지 못하고 맨유 수비수 필 존스가 자책골까지 넣었다.

경기의 승패가 갈린 일차적 원인은 토트넘의 이른 득점과 맨유의 무기력증이었다. 맨유 선수들은 경기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최전방의 로멜로 루카쿠는 자신감 없는 플레이를 반복했고, 슛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소극적으로 백패스를 하다가 위고 요리스 골키퍼에게 가로채기를 당하는 볼썽사나운 플레이도 했다. 반면 토트넘은 경기 후 손흥민이 “공 하나로 싸우는 경기인데 그 공을 쟁취하려는 마음이 우리가 더 컸다. 어차피 능력 있는 선수들이 벌이는 경기다. 작은 정신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우리 선수들이 더 강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았나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확신을 갖고 플레이했다.

맨유의 전술적 문제 역시 컸다. 산체스 영입 당시 희망과 우려가 공존했다. 그중 우려는 산체스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것이었다. 산체스는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는 플레이를 좋아한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왼쪽에서 주로 활동하는 폴 포그바와 동선이 겹친다. 산체스와 포그바 모두 공을 오래 잡고 흔들어야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서로 주도권을 잡아먹을 경우 경기력이 동반 하락할 수도 있었다.

산체스를 활용하기 위해 주제 무리뉴 감독이 내놓은 해결책은 최악의 수였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맨유는 4-2-3-1 포메이션을 유지하고, 산체스가 가장 좋아하는 왼쪽 윙어로 배치해 줬다. 대신 희생된 선수가 많았다. 포그바는 여전히 4-2-3-1의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치우쳐 활동하도록 위치가 바뀌었다. 이제까지 왼쪽 윙어였던 앙토니 마르샬은 이번 시즌 두 번째로 오른쪽 윙어에 배치됐다.

포그바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감소했다. 맨유 공격은 왼쪽에 43%가 몰렸고 오른쪽은 32%로 더 적었다. 포그바의 패스는 31회로, 일찍 교체됐다는 점을 감안해 90분 기준으로 환산해도 44회에 불과하다. 이번 시즌 포그바의 평균 패스는 경기당 66.1회였다. 드리블은 1회(시즌 평균 2.6회)로 줄어들었고 키 패스는 0회(시즌 평균 2.0회)였다.

마르샬 역시 산체스를 살리기 위해 불편한 자리에 배치됐다. 슬금슬금 안으로 파고드는 드리블이 특기인 마르샬은 왼쪽에서 활동하는 오른발잡이 선수다. 오른쪽에서도 평소 하던 플레이를 좌우 반전시켜, 안으로 파고들다 왼발슛을 날려봤지만 골대를 빗나갔다.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전방으로 치고 나가는 드리블에 이어 오른발 슛을 한 장면은 단 1회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산체스가 팀에 도움을 준 것도 아니었다. 산체스는 공격자원 4명 중 가장 많은 5.3%(맨유 총 47.3%)의 경기 시간 동안 공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위력적인 플레이는 없었다. 통계상 드리블 돌파를 1회 성공시켰고 결정적인 패스 성공은 없었다. 공을 잃어버린 횟수는 팀내 최다인 4회였다.

특히 팀 플레이에 소극적인 산체스의 모습은 맨유 전체를 침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산체스는 한때 에너지 넘치고 역동적인 선수였으나 최근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아스널에서 맨유로 팀을 옮긴 뒤에도 무기력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아예 무리뉴 감독에게서 수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날개 마르샬이 열심히 수비로 내려간 반면 산체스는 전방에 머무르며 동료들이 공을 따내 연결해주길 기다리곤 했다. 산체스가 수비 가담에 소홀한 만큼 맨유의 수비 조직이 약해졌다.

무리뉴 감독은 패착을 빠르게 인정하고 후반전 들어 다양하게 조합을 바꾸며 산체스 활용법을 고민했다. 후반전 초반에는 마르샬을 왼쪽, 산체스를 중앙, 린가드를 오른쪽에 배치했다. 전반전보다 더 합리적인 선수 기용이었다. 그래도 안 통하자 후반 18분 포그바를 빼는 강수를 뒀다. 포그바 대신 더 전투적인 마루앙 펠라이니가 투입됐고, 플레이메이킹의 전권은 산체스에게 주어졌다. 그래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또한 오른쪽에서 중앙 침투를 할 수 있는 후안 마타가 린가드 대신 배치됐다. 이 조치도 효과가 없었다.

이렇게 서로 활동 공간과 스타일이 부딪치는 선수를 잔뜩 집어넣고 전술적으로 매만지지 않은 채 경기하자, 맨유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산체스와 포그바가 있는데도 린가드가 후방으로 내려가 공을 몰고 올라가며 빌드업을 하는 모습이 나올 정도로 질서가 없었다.

반면 토트넘은 평소처럼 플레이했다. 두 시즌 전부터 주력 전술이었던 4-2-3-1이 그대로 쓰였다. 해리 케인, 손흥민, 에릭센, 델레 알리로 구성된 공격진부터 무사 뎀벨레, 에릭 다이어의 미드필드 라인 등 선수들 대부분이 익숙한 호흡을 맞췄다. 공간 배분과 대형 유지 능력에서 맨유를 압도했다.

후반 맨유가 선수 교체를 해가며 반격을 노렸지만, 오히려 토트넘이 완벽하게 경기를 장악하고 공격권을 거의 내주지 않았다. 후반 11분 이후 맨유는 단 하나의 슛도 날리지 못했고, 토트넘이 11개나 슛을 시도하며 맨유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토트넘은 후반 11분 이후 점유율(경기 전체 52.7%, 후반 11분 이후 66%)과 패스 성공률(경기 전체 82%, 후반 11분 이후 88%) 모두 높아졌다. 맨유와 같은 강팀이 지고 있는 경기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마무리하는 건 이례적이다.

산체스가 맨유에서 가진 첫 EPL 경기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점을 보여줬다. 기존 선수들과의 주도권 배분, 겹치는 플레이스타일 정리, 겹치는 동선 정리가 모두 필요하다. 산체스 자신이 더 에너지 레벨을 끌어올리고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선수가 되는 것도 절실하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