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런던(영국)] 김정용 기자= 웸블리 스타디움의 관중석은 홈팀 토트넘홋스퍼의 완벽한 승리를 보며 행복에 겨워 출렁였다. 그 사이엔 한국인들도 잔뜩 껴 있었다.

1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2017/2018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25라운드를 가진 토트넘이 맨유를 2-0으로 꺾었다. 2위 맨유가 승점 53점으로 제자리걸음을 한 사이, 5위 토트넘은 승점 48점을 따냈다. 이날 4위 첼시도 본머스에 0-3 충격 패를 당하며 승점 50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3위 리버풀(승점 50)부터 토트넘까지 치열한 4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넓게 보면 맨유까지 토트넘이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수용 인원 9만 명인 웸블리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경기장이다. 3층까지 스탠드를 꽉 채운 관중 사이엔 한국인이 다수 섞여 있었다. 경기 세 시간 전부터 경기장에 딸린 팬 숍은 한국인들의 연이은 쇼핑으로 북적거렸다. 손흥민의 높은 인기는 유니폼 진열에도 반영돼 있다. 개인 진열대가 마련된 선수는 토트넘 ‘판타스틱 4’인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 델레 알리, 손흥민뿐이다. 진열대 12칸 중 5칸에 손흥민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케인이 3칸, 에릭센과 알리가 각각 2칸씩이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출입하는 복도 바로 옆이자 벤치 바로 뒤 명당에 한국인 관중이 유독 많았다. 태극기가 한 장도 아니고 세 장이나 한 화면에 잡혔고, 이들은 손흥민이 지나갈 때마다 유독 큰 응원을 보냈다. 축구 여행 인솔 경험이 많은 전문 가이드 곽혁 씨는 “내가 찾아온 유럽 경기장 중 이번에 가장 많은 한국인을 봤다. 토트넘 경기인데다 상대가 맨유라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관중들이 더 즐거워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토트넘이 경기력에서 맨유를 완벽하게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축구의 흐름을 잘 아는 이들은 골과 묘기에만 환호하지 않았다. 맨유가 곤경에 처했을 때가 가장 유쾌한 시간이었다. 맨유 수비수 필 존스가 패스할 곳이 없다는 손동작을 했다. 네마냐 마티치가 앙토니 마르샬에게 간단한 패스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공격권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 토트넘 팬들은 박수를 치며 따뜻한 격려와 조롱을 동시에 건넸다.

토트넘 팬들은 특히 교체에 즐거워했다. 맨유 교체는 경기가 안 풀린다는 걸 반영하고 있었다. 두 골 차로 뒤진 상태에서 후반 18분 최고 스타인 폴 포그바가 빠졌다. 토트넘이 얼마나 맨유를 잘 괴롭히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토트넘 팬들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포그바를 배웅했다. 큰 소리로 “바이 바이”를 외치는 사람들도 군데군데 있었다. 포그바의 교체는 곧 토트넘 팬들의 행복이었다.

포그바가 빠질 때 투입된 펠라이니는 단 7분 뒤 안데르 에레라와 다시 교체됐다. 나중에 주제 무리뉴 감독은 펠라이니를 가벼운 부상 때문에 뺐다고 설명했다. 경기 중에는 정확한 이유를 알기 힘들었다. 펠라이니가 기량 미달이든 부상을 입었든, 한 번 투입한 선수를 다시 빼는 건 곤란한 일이었다. 토트넘 팬들은 이번에도 열광적으로 손을 흔들며 펠라이니에게 “잘 가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경기가 끝나고 토트넘 팬들이 “글로리 글로리”로 시작하는 응원가를 고래고래 부르며 귀가하고 있던 시간, 손흥민은 도핑 테스트 대상자로 뽑혀 뒤늦게 퇴근길에 나섰다. 취재진과 만난 손흥민은 한국 팬들의 응원을 받는 자신이 행운아라고 말했다. “오늘도 많이 오셨지만, 매번 경기장에 와서 응원해주시는 걸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다. 나는 행운아다. 유럽에서 뛰는데도 한국 팬들이 많이 와서 응원해주신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힘이고 경기장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한다. 너무 감사드린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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