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때 아닌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설로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축구 대표팀을 둘러싼 여론이 복잡해졌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한국 축구를 이끌어 줄거란 기대가 축구팬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히딩크 감독 한 명이 온다고 해서 한국이 갑자기 발전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단순하지는 않다. 한국 축구는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부임 이후로 대표팀에 대한 투자, 지원이 늘 아쉬웠다. 히딩크재단 측의 이야기대로 히딩크 감독 한 명이 연봉을 삭감하고 합류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2002년 돌풍을 이끌었던 인물은 히딩크 감독이 맞지만, 한국이 더 나은 성적을 낸 비결은 히딩크 개인이 아니라 그 ‘사단’이었다. 히딩크뿐 아니라 외국인 명장을 데려오려면 다시 한 발 앞서간 축구 강호들의 과학적 시스템을 이식할 수 있는 인물과 그 동료들이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켰을 당시의 주인공은 엄밀히 말해 히딩크 개인이 아닌 ‘히딩크 사단’이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운동 능력 향상 전문가가 된 레이몬드 베르하이옌 피지컬 코치, 나중에 이란 대표팀 감독이 된 압신 고트비 비디오분석관, 이미 네덜란드 리그와 J리그 구단들의 감독을 역임하고 온 핌 베어벡 코치 등 화려한 코칭 스태프가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다.

세계적인 명장이 부임해 전력 상승 효과를 내는 경우를 살펴보면, 대부분 감독과 함께 다니는 ‘크루’까지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슈퍼리그로 온 유럽의 명장들도 대부분 코치, 피지컬 코치 등 때론 5명이 넘는 자신의 팀을 대동하고 다닌다. 이번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감독 선임 효과를 본 사우디의 베르트 판마르바이크 감독 역시 코칭 스태프와 동행했다.

감독이 히딩크든 신태용이든, 현재 대표팀을 2002년처럼 돌려놓는 방법은 수장을 계속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지원을 2002년처럼 과감하게 확충하는 것이다. 2002년에 히딩크 감독이 소개한 과학적 체력 관리, 비디오 분석 등의 개념은 한국 축구에 잘 자리잡았다. 그러나 축구 강국, 유럽 명문 클럽의 비디오 분석 수준은 한국이 따라잡은 수준보다 다시 한 번 앞서갔다.

독일은 요아힘 뢰브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다. 뢰브 감독 개인의 전술과 카리스마가 아주 뛰어나서가 아니라, 독일 축구의 풍부한 지원을 뢰브 감독이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각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통계적인 분석 결과를 팀 운영에 도입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 중 하나다. 히딩크 감독 개인이 연봉을 크게 삭감한다는 용의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혼자 합류하는 것만으론 효과를 내기 힘들다.

한국은 지난 2014년 레알마드리드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하며 모처럼 해외파 감독을 데려온 것처럼 보였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심복’ 역할을 하는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 한 명만 대동하고 한국을 찾았다. 세계적 명장들은 심복뿐 아니라 분야별 전문가들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축구는 이미 고도화, 분업화 됐고 감독 한 명의 카리스마로 축구가 발전하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 축구에 이 사실을 알려 준 것이 히딩크 감독이었다. 같은 돈을 쓴다면 지금 대한축구협회에 필요한 건 명장 한 명이 아니라 감독을 도울 수 있는 세계적인 분석 업체와의 제휴, 비디오 분석팀의 확충, 더 빠르고 간편한 체력 관리를 위한 장비 구입 등 과학적인 시스템이다. 그걸 한국에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히딩크 감독이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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