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파주] 한준 기자= 한국 축구 대표팀의 유니폼에 새겨진 단어는 ‘투혼’이다. 그동안 한국축구는 강인한 정신력을 강조했지만, 축구적으로 뚜렷한 색깔을 갖지 못했다. 투혼도 흐릿해졌다. 최근 한국에서 개최한 FIFA U-20 월드컵은 한국축구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대회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결국 경질된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의 기세도 마찬가지다.

신태용 전 U-20 대표팀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 색깔을 입히기에 시간이 부족했다고 했다. U-20 대표팀은 안익수 감독에서 시작해, 정정용 임시 감독을 거쳐 신태용 감독이 본선에 임했다. 감독이 바뀔 때마다 전술도, 경기 스타일도 달라졌다. 어떤 지도자가 지휘봉을 잡든, 한국 축구를 관통하는 철학과 시스템이 있다면 그 과정은 더 매끄러웠을 것이다. 성인 대표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표팀을 관통하는 철학 뿐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연령별 대표팀을 지휘했던 지도자들은 각 팀에서 잘하는 선수를 모아도, 각자 팀에서 운영하는 시스템과 스타일이 천지차이라는 점에서 융합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는 한 목소리를 냈다. 

한 나라의 모든 축구팀이 같은 스타일의 경기를 할 수는 없지만, 문화와 철학적 측면은 충분히 공유될 수 있고, 그래야 힘을 발휘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독일과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등 축구 강국은 고유의 철학과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30일 오전 파주축구국가표트레이닝센터에서 2017 제1차 KFA & K리그 유소년 육성 세미나‘를 열어 한국 축구 철학 세우기의 첫 걸음을 뗐다.

#프로 산하 유스 지도자 총집결, 한국축구 철학 공유하자

통상적으로 파주NFC에서 진행되는 지도자 세미나는 자율 참가다. 각 지도자 라이선스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정 시간 이상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 이번 세미나는 협회 차원에서 처음으로 참석을 권유했다. 각 프로 산하 지도자들이 모두 이번 세미나에 참석했다. KFA가 연구를 통해 설정한 ‘플레잉 스타일’을 공유하는 첫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KFA 플레잉스타일’로 명명한 한국 축구의 전술적 방향성은 최근 기술위원장직에서 사임한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기술위원장직을 내려놓았으나 한국축구 유소년 단계 발전을 위한 미래기획단 업무는 계속 담당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대표팀 운영 만큼이나 신경 쓰고 진행해온 작업이다.

이날 세미나는 이 부회장이 개괄적인 플레잉 스타일을 소개하고, KFA 전임 지도자와 연령별 대표팀 지도자(서효원, 오성환, 김경량, 정정용), 연구 지도자(최영준) 등이 최근 한국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을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훈련법부터 전술 운영, 선수 평가 기준, 개인 기술 교육, 빌드업 형태 정보 등을 소개했다.

크게 한국축구의 철학을 정립하고, 이를 경기력으로 구현할 플레잉스타일과 연령별 훈련 프로그램, 경기 포메이션과 포지션별 선수 선발 기준 등을 제시했다. 이날 제시된 한국 축구의 철학은 KOREA라는 스펠링에 맞춰 소개됐다.

Keep out spirits up: 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축구
One team, one goal: 팀으로 하나 되어 도전하는 축구
Respects for all: 우리 모두를 존중하는 축구
Evolution of performance: 흐름을 선도하는 창의적인 축구
Achieve winning: 승리를 향한 감동축구

추상적인 개념인 1-4-3-3 포메이션이라는 구체화된 전술적 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각 권역별 최고 유망주들에게 동일한 훈련 프로그램을 전파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는 골키퍼도 포메이션 표기에 함께 하도록 권장하며 골키퍼의 빌드업 능력이 옵션이 아닌 필수로 여기도록 했다. 공을 소유하고, 주도적으로 경기하는 축구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1-4-3-3 포메이션은 5v5 훈련 상황에서 1-1-2-1, 8v8 훈련 상황에서 1-3-3-1로 구분되며, 11v11 상황에서는 풀백이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역삼각형으로 배치해 스리톱을 지원하는 공격적인 형태를 추구한다. 여기서 세 명의 미드필더는 수비적인 선수와 공격적인 선수, 양 플레이에 모두 능한 연결고리가 되는 선수로 균형을 맞춘다.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1-4-3-3, U-20 월드컵서 참고 자료 만들어

한국형 플레이스타일은 현대 축구의 최신 조류를 모델로 삼았다. 공격 스타일은 ‘빠르고 정확한 패스와 입체적인 움직임, 도전적인 돌파로 득점한다’로 규정했다. 수비스타일은 ‘볼 줌심의 압박과 적절한 위치선정으로 협력수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전환스타일은 ‘볼을 빼앗기면 바로 압박하고, 위험한 역습을 차단한다’, ‘볼을 잃지 않고 빠른 역습을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플레이를 구현하기 위해 한국 축국가 세계 축구에 뒤처지고 있는 개인 능력과 경기 운영 능력, 개인 전술 및 팀 전술 등 다양한 부문에 대해 FIFA U-20 월드컵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낸 팀의 플레이 영상과 훈련법을 소개했다. FIFA U-20 월드컵에서 협회가 설정한 1-4-3-3 포메이션에 맞춰 각 포지션에서 최고 활약을 한 베스트11을 구축해 해당 선수의 장점과 특징을 소개하고, 이들의 플레이 영상을 보여주며 이해를 도왔다.

참석한 지도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구체적 장면과 훈련 기법을 소개했다. 획일적으로 주입하기 보다 이해한 뒤 응용해달라고 했다. 참석한 지도자들은 “각 팀이 보유한 선수 구성에 따라 다른 축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하기도 했지만, 협회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며 통계와 데이터, 그리고 응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향후 진행될 세미나에서 현장에서 적용할 때 겪는 시행착오에 대해서도 토론하자고 했다.

협회는 1-4-3-3 포메이션으로 기본으로 설정했지만 세 명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 내려와 스리백을 형성하고, 세 명의 공격수 중 한 명이 내려오면 투톱이 될 수 있다. 포메이션은 숫자에 불과하며, 다만 각 포지션에 대응하는 선수 평가 기준을 만들고, 일관된 방향성으로 우수 선수를 육성하고자 하는 틀을 만들자고 제시한 것이다.

이번 세미나는 ‘1차’였다. 협회 소속 지도자들이 준비한 자료로 강의했는데, 협회는 2차, 3차를 이어가며 프로 산하 유스 지도자들이 돌아가며 주제를 정해 발표하고, 직접 수행하며 겪은 부분을 공유하고 토의하는 시간을 만들겠다고 했다. 황보관 기술교육실장은 의문점이 들거나,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팀이 있다면 직접 현장을 방문해 교습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강조된 것은 지식의 공유와 동반 성장이다. 유소년 축구 단계에서 각 지도자와 팀이 모두 승리와 우승을 위해 경쟁하지만, 결국은 한국 축구의 발전과 성장이라는 공동 목표를 갖고 일하고 있다.

협회는 각급 대표팀을 운영하는 과정, 세계 축구와 교류하며 얻은 지식을 나누고 있다. 이를 통해 각 팀이 개별적으로 성장하고, 또 연구하면서 쌓은 지식을 함께 토론하며 축구 발전을 위해 쓰자고 당부했다. 정보 습득과 교류에 대해선 UEFA와 AFC의 카운슬러로 일하고 있는 로빈 러셀이 강사로 나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한국 축구가 위기론을 겪고 있는 가운데, 돌파를 위한 해법은 유소년 축구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고, 지금부터라도 한국 축구의 철학적 뼈대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협회는 대표팀의 위기 상황을 수습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유소년 축구 철학 형성 작업을 시작했다. 늦었지만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켜보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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