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톈진(중국)] 김정용 기자= 약 1,500만 명이 사는 중국 톈진시는 27일 사상 첫 축구 더비 매치를 맞이했다. 톈진췐젠과 톈진테다의 역사적인 첫 톈진 더비다. 2007년 창단한 췐젠은 올해 처음으로 슈퍼리그에 올라왔고, 그동안 테다는 늘 슈퍼리그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췐젠의 홈 구장인 하이헤교육체육센터에서 ‘2017 중국슈퍼리그’ 11라운드가 열렸고, 승자는 췐젠이었다. 췐젠이 정다룬의 2골과 알렉산드레 파투의 쐐기골로 3-0 완승을 거뒀다. 한국인 선수 권경원과 황석호가 각 팀의 센터백으로 풀타임을 소화했다. '풋볼리스트'가 한국 선수들과 함께 한 톈진 축구의 역사적인 현장을 찾았다.

 

권경원과 황석호 모두 선발 출장

경기장이 저 멀리 보일 때부터 극심한 교통 체증이 일어났다. 진입로가 좁은 탓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차가 한 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역사상 첫 더비를 보려는 톈진 시민들은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하이헤교육체육센터를 가득 채웠다. 흰색 원정 유니폼을 입기로 한 췐젠 선수들에게 맞춰 관중들도 원정 유니폼이나 흰 티셔츠를 입고 스탠드에 섰다. 단 한 블록만 허락된 테다 서포터들은 경기 전부터 다닥다닥 붙어 서서 촘촘하게 깃발을 흔들어댔다.

췐젠이 유리한 경기였다. 췐젠은 10라운드에서 승리했고, 테다는 앞선 3경기에서 2무 1패에 그친 상태였다. 췐젠은 베스트 라인업을 모두 가동할 수 있는 반면 테다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 존 오비 미켈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태였다.

췐젠의 권경원과 테다의 황석호 사이에서는 ‘코리안 더비’도 벌어졌다. 한 도시에서 이웃으로 생활하는 두 선수는 시즌 초 외국인 출장 한도 제한 때문에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는 신세였다. 5월 들어 각자 소속팀에서 입지를 회복하고 선발 출장 횟수를 높이고 있었다. 황석호는 다른 외국인들의 부상과 징계로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5월 내내 주전으로 활약했다. 권경원은 브라질 출신 공격자원 모라에스, 제우바니우를 밀어내고 두 경기 째 선발로 투입됐다.

권경원, 롱 스로인으로 어시스트 기록

권경원과 황석호는 각 팀 수비의 중심이었다. 각각 상대팀 원톱 공격수를 집중 방어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었다. 테다 센터백 중 오른쪽에 선 황석호는 췐젠의 최고 스타인 파투를 밀착 방어했다. 권경원은 테다 원톱 아이데예 브라운과 자주 충돌했다. 두 한국인 선수의 활약으로 원톱들이 막혔고, 미드필드에서 창의성을 보이는 팀은 없었다. 섬세함 대신 치열함만 남은 두 팀은 거칠게 충돌했다.

변수를 만든 선수가 권경원이었다. 전반 38분 권경원이 경기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오른쪽 전방으로 올라가더니 스로인을 준비했다. 권경원이 앞선 소속팀에서도 자주 보여줬던 특기다. 신장이 186cm인 권경원은 공을 뿌리는 위치가 높고, 멀리까지 빠른 공을 보내는 능력이 발달한 선수다. 권경원은 췐젠의 스로인을 코너킥 만큼 위력적인 세트피스로 만들었다.

권경원이 던진 공은 문전에서 자리 싸움을 하던 두 팀 선수들 머리 위를 지나쳐 췐젠 공격수 정다룬의 발 앞에 떨어졌다. 정다룬이 재빨리 슛을 날려 골망을 흔들었다. 롱스로인을 받아 발로 마무리하는 희귀한 장면이 나왔다. 권경원의 중국 무대 첫 어시스트였다.

앞선 상태에서 기분 좋게 후반전을 맞이한 홈 팬들은 일제히 좌석에서 벗어나 경기장 바깥쪽 복도를 가득 메우고 담배를 피웠다. 수용 인원에 비해 지나치게 큰 복도는 하프타임에 흡연실로 쓰이고 있었다.

균열이 생긴 경기는 후반전 초반에 췐젠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후반 7분 자오슈리의 완벽한 스루패스를 받아 정다룬이 한 골을 더 터뜨렸다. 23세 유망주인 정다룬은 프로 2호골에 이어 3호골까지 터뜨리며 생애 최고의 경기를 했다. 테다가 반격에 나섰지만 췐젠 수비는 여전히 탄탄했다. 중국 대표 출신 골키퍼 장루는 아이데예를 살짝 스치며 궤적을 예측할 수 없게 된 크로스를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쳐냈다.

파투가 보여준 ‘부스터’, 경기 끝낸 췐젠

파투의 차례였다. AC밀란, 첼시 등을 거친 스타 공격수지만 중국으로 오기 전 1년 동안 심각한 부진에 빠졌던 파투는 중국 축구에 적응한 뒤 5월 들어 득점력이 살아나는 중이었다. 췐젠이 앞서가자 테다가 공격에 치중했고, 테다 수비에 파투가 공략할 수 있는 틈이 잔뜩 생겼다.

후반 19분 파투의 트레이드마크인 ‘부스터’가 나왔다. 2011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넣은 골처럼, 수비수들보다 한 발 늦게 출발했는데도 놀라운 가속력으로 몇 발 앞에 먼저 도착했다. 자오슈리의 두 번째 킬 패스를 받은 파투는 오차 없는 마무리 슛으로 췐젠에 대승을 안겼다. 관중들의 환호를 유도한 파투는 벤치로 다가가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에게 안기는 걸로 세리머니를 마무리했다.

후반 막판으로 갈수록 파투의 플레이는 더 날카로워졌다. 힐 패스로 동료에게 공을 보내고, 역습의 최잔방에서 잠깐 멈추더니 침투하는 동료에게 간결한 스루 패스를 내주기도 했다. 경기 내내 보조자 역할에 만족한 벨기에 대표 악셀 비첼도 막판에 약간 개인 플레이를 하며 실력을 확인시켜줬다. 테다 미드필더 네마냐 구델리는 이미 뒤집기 힘들게 된 경기에서 날카로운 중거리슛으로 마지막 역습을 했지만, 이 슛마저 크로스바에 맞았다.

권경원 뛰면 췐젠 승리, 실력으로 위기 극복

경기 후, 췐젠 선수들은 서포터들 앞에 미리 마련돼 있는 단상으로 다가가 승리를 자축하는 세리머니를 시작했다. 평소보다 길고 격렬한 자축 행사였다. 관중들은 경기 막판에 이미 파도타기 응원을 하고, 휴대전화 라이트를 다같이 켜고 장관을 연출하는 등 기쁨을 만끽할 준비가 된 상태였다.

췐젠은 이번 시즌 처음으로 다득점 승리를 거뒀다. 앞선 세 차례 승리는 모두 1-0이었다. 공격이 잘 풀리지 않아 아슬아슬하게 겨우 이기곤 했던 췐젠이 마침내 대승을 거두며 홈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 대상이 지역 라이벌인 테다였다. 췐젠 팬들로선 축제를 벌이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한국 선수들의 활약상이 눈에 띄었다. 특히 권경원은 이날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친 수비수였다. 권경원에겐 이날이 겨우 세 번째 선발 출장 경기였다. 췐젠은 이제까지 거둔 4승 중 3승을 권경원이 뛸 때 올렸다. 세 경기 모두 무실점이기도 했다. 실점은 많았지만 황석호 역시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왜 선발로 뛰고 있는지 증명했다.

한국 선수들은 올해 외국인 투입 한도가 갑자기 축소되며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팀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권경원은 한국 선수가 가진 가장 큰 무기가 실력이라는 것을 잘 보여줬다.

사진= 풋볼리스트, 톈진췐젠 관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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