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독특한 유니폼과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는 최순호식 패스 플레이가 포항스틸러스를 대표하는 이미지다. 포항은 스타일리시한 팀이지만, 저력이 강한 쪽은 전북현대다. 전북이 포항의 추격을 뿌리치고 선두를 지켰다.

23일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전주 종합경기장에서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7라운드를 치른 전북이 포항에 2-0으로 승리했다. 전북은 5승 2무로 무패 행진을 유지했다. 패배한 포항은 4승 1무 2패가 되어 6라운드보다 한 계단 내려간 3위가 됐다.

‘레트로 매치’의 콘셉트 원안을 제공한 쪽도, 경기 전 여유가 넘친 쪽도 포항이었다. 포항이 이번 시즌을 앞두고 먼저 내놓은 복고풍 원정 유니폼을 보고 전북도 비슷한 제품을 구상했다. 포항전은 전북의 레트로 유니폼이 첫선을 보이는 날이자 두 팀의 과거 유니폼이 만나 제대로 복고풍 분위기를 내는 날이었다. 마침 경기장도 월드컵경기장 건설 전에 사용하던 종합경기장이었다. 유니폼부터 경기장까지, 18년 전 1999년 느낌을 내기 좋은 날이었다.

경기 전 만난 최순호 포항 감독도 추억을 보탰다. 최 감독은 1999년 당시 포항 코치였다. 최 감독은 이번 유니폼을 계기로 다시 화제를 모은 ‘파워 디지털 017’ 스폰서에 대한 기억이 있다며 “포스코가 신세계 통신 사업을 할 때의 스폰서 마킹이다. 내가 제안해서 국민은행 스폰서를 달고 뛴 적이 있다. 포스코의 지원을 받는 구단이지만 꼭 포스코만 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했다. 꽤 큰 액수의 스폰서였는데 결국 포스코로 돌아왔다”며 자신의 20여년 전 선견지명을 은근히 자랑했다.

최순호 감독이 여유를 부릴 만한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우승후보로 지목된 전북과 달리, 포항은 두 달 전만 해도 위기설의 대상이었다. 팬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최 감독도 포함돼 있었다. 최 감독은 세간의 불안감과 달리 ‘포지션 플레이’를 강조하는 축구로 6라운드까지 2위를 달리고 있었다. 경기 전 최 감독은 “남들은 닥공이다, 막공이다 하는데 우린 정공이다. 정석적으로 공격한다”며 자기 축구의 브랜드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정혁

포항의 자신감과 달리 경기는 시작하자마자 전북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전반 2분, 경기 첫 세트피스에서 골이 터졌다. 좋은 위치에서 정혁이 올린 프리킥을 에델이 쇄도하며 마무리하려 했다. 에델가 이승희가 뒤엉킨 문전을 스쳐 지나간 공은 노동건 골키퍼가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아슬아슬하게 골문으로 들어갔다. 공식 기록은 정혁의 골이었다.

선제골로 여유를 찾은 전북은 K리그 최강인 개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두 팀의 시스템은 비슷했다. 전북의 압박이 더 강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최 감독이 추구하는 포지션 플레이는 전북에 비해 선수들의 활동반경이 좁다는 단점을 노출했다. 전북 선수들이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며 공을 받고, 포항의 패스 경로를 미리 끊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특히 공수를 마음껏 오가야 하는 중앙 미드필더 정혁의 플레이는 전북의 경기 장악에 큰 도움을 줬다. 정혁은 중앙뿐 아니라 좌우 측면을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며 드리블, 패스, 슛 등 모든 능력을 발휘해 보였다. 수비라인 바로 앞에는 신형민이 자리를 잡고 정혁이 마음껏 올라가도록 뒤를 봐 줬다. 레프트백 김진수와 윙어 에델까지 조합을 이룬 왼쪽 공격이 특히 위력적이었다.

포항은 전반 초반에 어느 정도 짜임새 있는 공격 전개를 하며 저항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북의 경기 지배가 확고해졌다. 포항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레프트백 박선용을 빼고 장철용을 투입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여전히 전북이 강했다.

 

끈적하게 막고 빠르게 역습하는 전북

후반 시작과 동시에 문전을 공략당한 쪽도 포항이었다. 후반 11분, 김보경이 자주 가세하며 눈에 뜨게 살아난 오른쪽 측면에서 추가골이 나왔다. 김보경이 재치 있는 움직임과 2대 1 패스로 공간을 만든 뒤 중앙으로 잠깐 드리블한 뒤 문전으로 패스를 보냈다. 고무열은 마무리에 실패했지만 김신욱이 골을 기록했다. 김신욱이 요즘 ‘밀고’ 있는 레오나르도 흉내 세리머니가 이어졌다.

후반전 역시 일찌감치 득점한 전북은 뒤로 갈수록 더욱 거세지는 포항의 반격을 잘 막아내는 한편 역습으로 추가골까지 노렸다. 후반 23분 룰리냐, 심동운, 권완규, 양동현, 손준호로 이어지는 패스워크는 최근 포항이 보여주는 조직력이 잘 발휘된 장면이었지만 마무리 슛이 수비의 육탄 방어에 막혔다. 후반 39분, 노동건이 앞선 슛을 막아내느라 비운 골문에 김진수가 공을 밀어넣으려 할 때 노동건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다시 선방을 해내며 대패를 막았다. 포항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플레이스타일을 유지하며 짜임새 좋은 공격을 전개했지만 손준호의 마무리 슛은 골대를 빗나갔다.

경기 전 최강희 전북 감독의 이야기대로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은 전북이 포항의 결정적인 플레이를 성공 직전 끊어낸 것이 승부를 가른 요인이었다. 최 감독은 “포항처럼 안정된 상대와 갖는 경기는 경기 외적인 요인, 정신적인 면, 실수, 기 싸움, 압박과 밸런스 등에서 지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전북은 경기를 끈적하게 만들며 포항의 플레이를 어느 정도 원천 봉쇄했고, 포항식 플레이가 골까지 이어지려 하면 육탄 방어로 막아냈다. 반면 포항은 전북 공격을 더 적극적으로 막아내지 못했다.

 

“전북이 강하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전북은 포항의 스타일을 방해하는데 중점을 뒀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최순호 감독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인 경기가 우리 의도처럼 빠른 템포로 진행되지 않았다.”

여기엔 약간의 불만도 섞여 있었다. “전북이 우리를 조금 더 압박해주면 경기 템포가 더 빨랐을 텐데, 전북이 강팀의 면모를 보이려면 그런 모습도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다.

최강희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미드필드에서 강하게 싸우고, 포항 양쪽 윙백의 오버래핑을 대비했다. 일부러 루즈하게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강한 집중력으로 결과를 낸 거다.”

전력 손실에 대처하는 두 팀의 모습을 보면 1군 경기력 아래 숨은 전력차에서 승패가 갈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포항은 강현무 골키퍼와 레프트백 강상우가 부상으로 빠졌다. 강상우 대신 기용된 박선용은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교체됐다. 어느 정도 전력 손실이 있었다. 최순호 감독은 “우리 팀 선수단 상황에서 두 개 대회는 소화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히려 부상자가 더 많은 쪽은 전북이었다. 전북은 이승기, 이재성, 장윤호, 로페즈 등 K리그 최고 수준 선수들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해 경기장 밖에서 사인회를 가졌다. 줄부상 당한 미드필더들 대신 정혁이 두 경기 연속 선발 출장했고, 미드필드 싸움에서 완승을 거둔 가장 큰 공로자가 정혁이었다. 정혁은 “전북이란 팀에서 뛰려면 늘 겪어야 하는 게 주전 경쟁이다. 절대 쉴 수 없다. 늘 자신을 어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의 전술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자세와 저력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전북이 강하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최순호 감독의 말이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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