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프란체스코 토티는 유럽 정상에 가 보는 게 은퇴 전 마지막 목표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결국 4강에 올라보지 못한 채 은퇴했다. 그의 선후배들이 감독과 주장으로서 AS로마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

11일(한국시간) 이탈리아의 로마에 위치한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2017/2017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 2차전을 가진 AS로마가 바르셀로나에 3-0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진출했다. 로마는 앞선 1차전 원정 경기에서 1-4로 대패했기 때문에 홈에서 3-0으로 이겨야 역전이 가능했다.

로마가 34년 만에 오른 4강이다. UCL에서 거둔 기존 최고 성적은 2006/2007, 2007/2008시즌의 8강 진출이었다. 토티가 현역이던 때의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이 대회의 전신인 유로피언컵까지 따지면 1983/1984시즌의 준우승이 역대 최고 성적이다. 당시 로마는 리버풀에 패배했다.

로마의 승리를 이끈 선수는 공격수 에딘 제코와 미드필더 다니엘레 데로시였다. 데로시는 1골 1도움을 기록했고, 제코는 1골과 함께 데로시의 페널티킥 골로 이어진 반칙을 얻어냈다. 두 선수는 득점 상황 외에도 경기 기여도가 가장 높았다.

특히 데로시는 지긋지긋한 큰 경기 부진을 마침내 떨쳐냈다. 로마 선수들은 은퇴한 토티를 비롯해 큰 경기에서 퇴장이나 부진으로 자멸하는 나쁜 전통이 있었다. 데로시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2006 독일월드컵 당시 당한 퇴장으로 우승의 걸림돌이 될 뻔했다. 로마에서도 꾸준히 큰 경기마다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 2016/2017시즌 UCL 플레이오프에서 퇴장당하며 토티가 마지막 시즌에 UCL을 밟아보지도 못하게 하는 원흉이 됐다.

데로시는 지난 1차전까지만 해도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될 분위기였다. 캄노우 원정에서 첫 실점을 자책골로 내주며 대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 외의 경기력도 기대 이하라는 평을 받았다.

데로시는 2차전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3-5-2 포메이션에서 미드필드의 중심을 잡고 동료 라자 나잉골란, 케빈 스트로트만이 자유롭게 상대를 압박할 수 있도록 후방 지원을 했다. 데로시는 로마 선수들 중 가장 오래 공을 잡고 있었다. 개인 점유율이 6.7%나 됐다. 성공시킨 패스의 횟수가 46개로 로마 동료들보다 훨씬 많았다. 동료의 슛을 이끌어낸 패스가 2회로 경기 최고 기록을 남겼다. 오버래핑하는 좌우 윙백에게 내주는 롱 패스, 배후 침투하는 공격수에게 주는 스루 패스 등 다양한 패스가 모두 뛰어났다.

데로시는 오랫동안 토티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2001년부터 로마에서만 뛴 ‘충신’이지만 늘 토티에 이어 두 번째로 로마를 상징하는 선수였다.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데로시는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로마의 기적적인 역전승을 이끄는 든든한 플레이를 했다. 스스로 무너지는 버릇은 나타나지 않았다.

과감한 압박 축구로 바르셀로나를 잡아낸 에우세비오 디프란체스코 감독도 현역 시절 토티의 동료였던 선배 선수다. 토티가 처음 세리에A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2001시즌 세리에A 우승 시즌까지 동료로서 활약했다. 감독으로 돌아온 디프란체스코는 이번 시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경기 스타일 때문에 딱히 주목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를 대파하는 과감한 전략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데로시와 함께 승리를 이끈 제코는 토티의 포지션상 후계자라고 볼 수 있는 선수다. 제코는 지난 2015/2016시즌 “토티와 함께 뛰면 더 편하지만 벤치에 머무르고 싶진 않다”며 선배에 대한 존중과 함께 주전 경쟁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토티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뒤를 이어 최전방을 맡은 제코의 맹활약이 로마를 4강까지 올렸다. 로마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토티는 지난 시즌까지 동료였던 선수들의 맹활약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옆자리에는 한때 로마 선수였던 안토니오 카사노가 앉아 있었다.

지난 1차전에서 데로시에 이어 자책골을 넣었던 센터백 코스타스 마놀라스가 마지막 골을 터뜨리며 드라마를 완성했다. 로마 선수들은 꼭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4강에 올랐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잘 준비돼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로마는 거칠고 격렬한 경기 분위기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팀이었다. 이날은 자멸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거칠게 다루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부상을 입힐 정도로 동업자 의식이 없는 플레이나, 퇴장을 당할 정도의 플레이는 하지 않았다. 한결 강해진 정신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