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 주>
‘저평가 우량주’를 알아보는 건 어렵다. 재테크를 할 때나 축구팀이 선수를 영입할 때나 마찬가지다. AS로마는 ‘거상’이 되고 싶지만 지난 반년은 오히려 손해만 봤다.
로마는 2017/2018시즌을 앞두고 몬치 단장을 선임했다. 라몬 로드리게스 베르데호라는 본명보다 몬치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스타 경영자다. 몬치는 약 17년 동안 세비야에서 선수단 구성에 관여하며 팀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유소년 출신 세르히오 라모스, 헤수스 나바스와 값싸게 영입한 다니 아우베스, 이반 라키티치 등 수많은 성공작을 만들어내며 유망주 발굴에 남다른 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3월 몬치가 세비야를 떠나자 레알마드리드 등 여러 팀이 선임을 검토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로마가 몬치와 손을 잡았다는 건 ‘저비용 고효율’ 영입을 노리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로마는 북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3강 유벤투스, AC밀란, 인테르밀란에 비해 전통적으로 자금력이 뒤쳐지는 팀이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25년 만에 은퇴했기 때문에 빈자리를 메우려면 더 성공적인 이적 시장이 필요했다. 성장 동력을 몬치에게서 찾으려했다.
그러나 영원한 거상은 없다.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20년 전 유럽 최고 ‘거상’이었지만 지금은 비싸고 효율 낮은 영입으로 비판을 받는다. 몬치와 세비야가 화제를 일으킨 지도 어느덧 10여년이 지났다. 몬치식 영입 전략이 이제는 안 통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시간이다.

몬치와 로마의 만남, 첫 이적시장은 불운의 연속
지난해 여름, 로마는 예고된 대로 저비용 고효율 영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모하메드 살라(리버풀), 안토니오 뤼디거(첼시), 레안드로 파레데스(제니트상트페테르부르크) 세 명을 팔아 약 1억 유로(약 1,328억 원, 보너스 조항 제외)를 벌어들인 뒤 이 돈으로 12명을 샀다. 그중 이미 로마 선수단에 합류해 있던 선수들을 제외하면 8명이 새 전력으로 영입됐다.
영입은 크게 세 방향으로 진행됐다. 릭 카르스도프, 쳉기스 윈데르, 파트리크 쉬크 등은 미래에 가치가 뛸 것으로 기대되는 유망주다. 동시에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막심 고날롱, 엑토르 모레노 등 각국 대표를 역임한 베테랑들을 저렴한 몸값에 영입했다. 에우세비오 디프란체스코 감독이 사수올로에서 지도한 로렌초 펠레그리니, 그레고아 데프렐을 데려와 실패할 확률을 낮추려 했다.
그러나 세 가지 영입 전략 모두 생각만큼 잘 이뤄지지 않았다. 불운과 부진이 겹쳤다. 풀백 릭 카르스도프, 공격수 파트리크 쉬크와 그레고리오 데프렐은 부상 때문에 제때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카르스도프는 시즌 초 당한 십자인대 부상으로 이번 시즌에는 제대로 뛰기 힘들다. 고날롱과 펠레그리니는 아직 주전이 될 만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원래 로마의 특기였던 수비수 영입까지 삐걱거렸다는 점은 타격이 컸다. 로마는 수비수 영입과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팀이었다. 마르퀴뇨스(파리생제르맹), 메흐디 베나티아(유벤투스), 알레시오 로마뇰리(AC밀란), 뤼디거 등 주전급 선수들이 계속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코스타스 마놀라스, 페데리코 파시오 등 뛰어난 센터백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여름 로마가 유일하게 영입한 센터백 모레노는 사실상 실패한 영입에 가깝다. 로마에서 겨우 317분만 뛰고 반년 만에 레알소시에다드로 임대됐다. 이적료는 고스란히 회수할 수 있을 전망이지만 중앙수비진이 얇아졌다. 기존 경영진의 장점마저 잃어버리면서 몬치의 첫 반년은 의문부호가 찍혔다. 이래저래 로마 선수단은 전보다 얇아진 상태다. 현재 로마에서 주전급 출장이 가능한 선수는 19명(가벼운 부상 포함)에 불과하다.
성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까지 3무 4패로 심한 부진에 빠지자 위기설도 나왔다. 로마는 흔들리는 와중에 레프트백 에메르손과 공격수 에딘 제코가 첼시로 떠난다는 이적설까지 나왔다. 결국 제코는 이적하지 않았지만 에메르손은 2,000만 유로(약 266억 원)를 로마에 안겨주고 첼시로 이적했다. 로마가 급히 데려온 대체 선수는 스포르팅CP에서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던 레프트백 조나탄 실바로, 아직은 포지션을 채우기 위한 영입에 불과하다.
몬치 합류 이후 로마가 겪는 한 가지 부작용이라면 ‘셀링 클럽’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거상은 언젠가 핵심 선수를 팔아치우는 팀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적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시대지만 로마는 적당한 가격이 맞으면 선수를 보내줄 거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리버풀로 보낸 살라가 이적료를 훨씬 상회하는 맹활약을 하면서 ‘너무 저렴하게 판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나왔다. 로마의 주전 골키퍼 알리손도 여러 빅 클럽의 영입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터키의 디발라’ 윈데르가 보여준 희망
로마는 1월 이적시장이 끝나자마자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엘라스베로나, 베네벤토, 우디네세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상대가 주로 약체였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연패를 끊었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었다.
더 중요한 건 3연승을 이끈 윈데르의 급부상이다. 윈데르는 지난 4일(한국시간) 베로나를 상대로 선제결승골을 넣어 1-0 승리를 이끌었다. 12일에는 베네벤토를 상대로 2골 1도움을 올려 5-2 대승을 주도했다. 17일 만난 우디네세는 한결 어려운 상대였지만, 이번에도 윈데르의 선제골이 로마에 2-0 승리를 안겼다.
살라가 떠난 뒤 공격 무기가 빈약한 것이 로마의 약점이었다. 스테판 엘샤라위와 디에고 페로티는 이번 시즌 기복을 겪고 있는데다 애초에 살라만큼 앞장서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로마가 자랑하는 미드필더들도 중원 장악에 비해 창의성이 높은 선수들은 아니기 때문에 공격 지원 능력이 더 떨어졌다. 드리블 능력이 부족한 장신 공격수 에딘 제코에게 좋은 패스를 넣어줄 찬스메이커가 없었다.
윈데르는 과감한 드리블로 수비를 헤집은 뒤 강력한 왼발 슛을 날린다는 점에서 살라의 역할을 고스란히 대체하고 있다. 3경기 연속으로 왼발 중거리 슛을 넣으며 감각이 절정에 달했다. 왼발잡이지만 과감한 측면 돌파 후 제코에게 올려주는 오른발 크로스 역시 정확하다.
‘터키의 디발라’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윈데르는 앞선 세 시즌 동안 터키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특급 유망주로 발돋움했다. 토트넘홋스퍼, 맨체스터유나이티드도 윈데르를 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로마가 1,340만 유로(약 178억 원)를 투자해 재빨리 윈데르를 확보했다. 로마로선 과감한 투자였다. 전반기에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던 윈데르는 2월부터 갑자기 맹활약을 시작했다. 데뷔골을 넣기 전에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고, 디프란체스코 감독에게 꾸준히 기회를 부여받은 결과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서 온 윈데르가 ‘원조 로마’에서 핵심 선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1세 윈데르는 로마의 유망주 정책이 결국 성공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선수다. 로마 1군에는 로테이션 멤버로 뛰는 미드필더 제르손(21), 펠레그리니(22) 등 젊은 선수들이 수급된 상태다. 여전히 스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쉬크(22)와 카르스도프(23)까지 기대에 부응한다면 몬치 단장의 역량은 다시 한 번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베네벤토전은 데프렐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앞선 13경기 동안 한 골도 넣지 못한 데프렐은 경기 막판 나온 페널티킥을 통해 마침내 로마 데뷔골을 넣었다. 제코가 아무런 미련 없이 데프렐에게 킥을 양보했다. 데프렐은 최전방에도, 측면에도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던 중이었다.
로마는 마침 중요한 경기들을 연달아 앞두고 있다. 22일 샤흐타르도네츠크를 상대로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원정 경기를 치른다. 26일에는 최근 상승세인 AC밀란과 세리에A 경기를 갖는다. 3월 4일에는 현재 세리에A 1위인 나폴리와 ‘남부의 왕’이 누군지 다툰다. 한결 어려운 일정까지 성공적으로 넘긴다면 윈데르와 함께할 로마의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이다. 몬치는 늘 관중석에서 토티 디렉터와 함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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