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성남] 김정용 기자= 남기일 성남FC 감독은 상대팀에 앞서 가난과 싸우는 데 이골이 났다.

남 감독은 올해 성남 감독으로 부임했다. 계약할 때만 해도 성남은 빈궁한 팀이 아니었다. K리그 챌린지 최고 수준의 선수 구성을 통해 승격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계약했다. 남 감독의 지인들은 광주FC 시절(2013~2017)보다 좋은 지원을 받으며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도 성남시 시의회에서 성남FC의 예산을 70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대폭 삭감하면서 구단 사정이 어려워졌다.

남 감독은 한정된 예산 속에서 성적을 내는 노하우를 발휘해야 한다. 남 감독은 “기존에 있던 광주도 어려운 상황을 겪으며 이끌었다. 구단과 잘 소통한다면 이겨낼 수 있는, 한 번 겪고 지나갈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탄천 종합운동장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남 감독과 한 인터뷰 전문. 

- 지난해 8월 광주에서 물러나고 12월 성남에 부임했다. 푹 쉬고, 아이디어를 충전할 기회였나?

감독을 하는 동안 매 경기가 크나큰 스트레스였다. 광주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팀이었으니까. 어느 순간 내 얼굴을 봤는데 너무 지쳐 있더라. 물러난 뒤엔 축구를 좀 잊고 지냈다.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다. 국내로도 가고, 일본으로도 가고. 다음 팀을 맡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일본 여행 중에는 경기를 보러 갔다. 여러 사람을 만나 축구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일자리도 알아봤고.

 

- 성남은 최근 예산 삭감이 화제다. 감독으로서 무엇보다 아쉬운 상황일텐데.

처음 부임하기로 했을 땐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이재명 시장이 ‘남기일 감독 같은 사람이 우리 팀에 와주면 좋겠다’고 전부터 이야기하셨다는 걸 전해 들었다. 구단 대표이사와 면담하면서 ‘성남만의 컬러를 만들자’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다. 어려움이 닥쳤지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감독, 선수단, 구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잘 융화된 상태로 나간다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 나도 어려운 팀을 이끈 경험이 있고.

 

- 맡은 팀의 예산이 줄어드는 경험을 해 봤다.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경험도 해 봤다. 일종의 노하우가 있을 것 같은데.

당시 광주는, 그냥 가진 게 없었다. 없는 구단에서 오래 지내 보니까 내성이 생긴 것 같다. 감독으로서 잊지 못할 경험을 많이 했다. 성남도 지금은 돈이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데려와서 성남의 팀 색깔을 빨리 입히는 게 중요하다. 팀을 만드는 게 성적보다 중요한 시기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선수 개개인을 만드는 게 먼저다. 각 선수가 발전하면 당연히 팀도 발전하니까.

 

- 이적 자금이 있는 팀, 이를테면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 같은 상황이 그리 부럽진 않다는 말인가?

사실 그다지 부럽지 않다. 다른 팀과 내 처지를 비교하다보면 초라한 기분이 들고, 동떨어진 기분이 들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그저 우리 팀 안에서 선수들과 뭔가를 만들어가는데 집중한다. 거기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선수들과 함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때 기쁘다. 좋은 선수만 가지고 우승한다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일 터다. 그걸 위해서 최소한의 환경만 주어지면 좋겠다. 선수들 월급 밀리지 않을 정도로만 시 예산이 나왔으면 한다. 

 

- 올해 성남 예산은 얼마나 줄어드나.

기존에는 챌린지에서 톱이었다. 지금은 중간 정도다. 최하위는 아니고 중간 정도로 줄어든다. 다만 나이 든 선수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인데, 대체 선수를 영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 젊은 선수 위주로 리빌딩을 하는 건 당신의 생각인가, 구단의 생각인가?

젊은 선수 위주로 구성하되 노장 한두 명 정도는 영입할 거다. 미래를 보고 명문 구단을 지향한다면 젊은 선수들이 필요하다. 목표는 승격이지 않다. 1부에 올라가도 통할 선수단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선수단뿐 아니라 팬과도 소통하며 1부를 준비할 거다. 팀의 문화까지 개선하면서 승격을 준비하고 싶다.

 

- 김두현, 장학영은 이미 팀과 결별했고 그 외에도 30대 FA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는 중이다. 혹시 남기고 싶은 선수가 있었나?

원래 김두현을 남기기 위해 면담을 했다. 김두현은 성남에서 오래 선수 생활을 했고, 나와 선수로 호흡을 맞춰보기도 했다. 애착이 가는 선수다. 강등의 아픔을 겪고 떠나는 것보다 승격까지 함께 한 뒤 박수 받으며 떠나는 게 좋지 않나. 팬들에게 박수 받으며 은퇴식을 갖도록 해 주겠다고 했다. 김두현은 외국에서 생활할 계획을 오래 전부터 세워 놓았더라. 명확한 계획이 있는 선수라 자기 길을 가게 됐다.

 

- 성남일화 선수 출신이다. 한때는 명문구단이었던 팀을 성남FC가 계승했다. 선수 시절 느꼈던 과거의 유산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일화 시절의 영광은 가슴 속에 묻어야 한다. 일화 시절에는 눈앞의 90분에만 급급했다. 팬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과 함께 응원가를 부른다든지, 팀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구단의 좋은 사례가 되고 싶다. 팬뿐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경기장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면 그건 선수의 마음에도 10년 넘게 간직될 거다. 팀 문화가 잘 만들어진다면 1부로 올라가는데도 도움이 된다.

 

- 스스로 정의하는 ‘남기일표 축구’의 핵심은 뭔가?

한 마디로 정리하고 싶은데 축구가 간단하지 않다. 나는 큰 틀보다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거다. 찬스를 많이 만드는 축구, 팬들이 골을 계속 갈망하게 하는 축구를 하고 싶다. 공이 계속 상대 진영에서 놀게 만드는 방법이라면 뭐든 동원하고 싶다. 한 골 넣고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준비한 대로 앞에서부터 찬스를 만들어 나갈 거다. 동계훈련 동안 내가 준비해야 하는 축구다.

 

-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나?

하아, 글쎄. 설명을 드리기가 참. 몇 가지 있긴 한데. 나는 디테일을 강조할 거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각 상황마다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다. 경기장에서 당황스런 일도 생긴다. 그럴 때 유연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싶다. 그러면 전체 경기가 자연스럽게 우리 뜻대로 흘러가게 된다. 승패보다 중요한 게 ‘우리 경기’를 하는 거다. 아까 말했듯 선수 개개인을 발전시켜야 한다. 선수 한 명에게 부족한 점이 3개가 있다 치자. 그중 하나를 내가 줄여준다면, 10명이 모였을 때 단점이 30개나 개선된 셈이다.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 디테일을 위해 광주 시절 함께 했던 코치진을 대부분 영입한 건가?

난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가서 해야 하는 역할을 확실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려면 코치 역할이 중요하다. 선수 한두 명이 아니라 너댓 명을 각자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스태프들이 없는 살림에서 잘 해온 건 코치들이 역할을 잘 해줬기 덕분이다. 선수에게 가르쳐야 하는 게 뭔지 코치들과 의견을 교환해 정할 때도 많다. 그래서 이번에도 함께 하게 된 거고, 어느 팀을 가든 같이 갔을 거다.

 

- 팀에 세부적인 변화를 줬더니 큰 변화가 야기됐던 예를 들어줄 수 있나?

광주를 처음 맡았을 때부터 키 큰 센터백이 아니라 공을 잘 다루는 선수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풀백 보던 선수를 중앙에 뒀다. 축구를 유심히 보면, 센터백이 공을 잡는 횟수가 굉장히 많다. 현대축구는 센터백이 풀어야 한다. 센터백을 바꿈으로써 팀플레이가 많이 바뀌더라. 이 선수의 조그만 변화가 앞으로 전달되면서 문전까지 바뀌었다. 그런 부분들에 신경을 더 쓸 거다. 광주에서는 매년 선수가 바뀌다보니 내 기조를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성남에서 처음부터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구성하는 것도 그래서다. 해가 갈수록 더 좋아지는 팀을 만들기 위해.

 

- 광주에서 잘 키웠다고 자부하는 선수가 있나?

내가 키웠다고 말하면 어폐가 좀 있는 것 같다. 선수들도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해 줬으니 같이 해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거다. 정조국, 김호남, 여름, 이찬동과 같은 선수들은 마음이 잘 맞아서 팀에 좋은 걸 주고 자신도 좋은 팀으로 갔다.

 

- 각 선수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광주에서 간판 스타를 대거 다른 팀으로 보내고 오히려 승격을 달성했던 경험 때문인가.

광주를 승격시켰던 2014년에도 나는 많이 졌다. 역전패도 당했다. 욕을 많이 먹었다. 그래도 우리 팀만의 무언가를 만들려 했다. 지금 성남에 없는 부분이다. 광주 시절, 처음엔 이름이 알려진 선수를 많이 데려왔다. 그런데 자기주장이 강하다보니 팀이 하나로 뭉치지 않더라. 중간에 과감하게 선수들을 정리했다. 그냥 내버려두면 승격할 수 없다는 게 자명하니까. 비판을 받으면서도 과감하게 정리를 했다. 그 다음부터 젊고, 간절하고, 경기에 꼭 나가고 싶고, 상대를 꼭 이기고 싶은 선수들과 함께 1부로 올라갔다. 지금 성남도 비슷한 상황이다.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들 가운데 기대만큼 역할을 못 한 선수가 있었다. 리빌딩이 필요하다는 걸 구단이 알고 있었다.

 

- 에델과 계약했다. 외국인 선수 구성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광주에서 큰 재미를 못 본 부분이기도 하다.

전원 교체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선수를 오래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챌린지는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굉장히 크다. 단 한 명이 팀 전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에델은 실력이 검증됐고, 동료 선수들과 잘 지내며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다. 지난해 같은 클래식에 있으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능력을 충분히 인정 받은 선수다. 우리 팀에 적합한 선수를 차근차근 찾고 있다. 4명을 다 채우긴 힘들 것 같다. 한국에서 뛴 선수를 한 명 더 영입할 거고, 총 3명이 될 것 같다. 포지션은 미드필더 한 명, 스트라이커 한 명을 추가할 것 같다.

 

- 시즌 목표는? 대중은 성남에 대한 기대를 낮춰 잡는 것 같은데.

일단 선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팀 컬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팬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한 발씩 전진해야 1부 승격이 가까워진다. 빨리 해내겠다. 나는 올라가 봤고, 잔류도 해 봤고, 작년에는 중간에 그만뒀지만 강등 시즌도 겪어 봤다. 올라가서 살아남는다는 게 쉽지 않다. 오래 살아남을 준비를 하고 올라가야지.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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