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재성은 주인공이 아닌 ‘특급 조연’으로 살아 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얼마든지 주연을 맡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재성은 전북현대의 완전한 에이스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전북현대로 이적한 손준호는 9일 전지훈련 출발을 앞두고 ‘풋볼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재성과 맞출 호흡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두 선수는 중학교 때부터 각급 대회에서 승부를 벌였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함께 따내며 친분이 깊어졌다.

손준호는 “이번엔 같이 경기장에서 시원하게 뛰어다니며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재성이는 볼 관리가 좋고, 활동량이 많고, 공격 쪽에서 위협적인 선수다. 나는 활동량이 좋다는 건 같지만 수비적으로 공을 많이 빼앗아서 앞에 있는 재성이나 (김)신욱이 형에게 연결하는 임무를 맡기 때문에 재성이와 역할이 다르다. 미드필드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전방으로 공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성에 대한 묘사가 과거와 달라진 걸 볼 수 있다. 한때 이재성은 동료들을 받치며 희생하는 역할을 맡는 선수였다. 지난해 이재성은 플레이스타일을 조금 바꿨다.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명품 조연으로 시작한 이재성, ‘김보경 도우미’ 시절

이재성은 프로에서 데뷔한 2014년부터 감독의 전술을 철저하게 따르는 ‘부품’으로서 주목 받았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이재성처럼 전술적으로 가르칠 것이 없는 선수는 처음 봤다”고 누차 말했다. 이재성은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상대의 공을 빼앗고, 동료 공격진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철저한 조연이었다.

특급 조연으로서 이재성은 전북을 보이지 않는 곳부터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그 능력이 극대화된 시기가 2016년이다. 전북은 이재성과 김보경을 동시에 기용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에 공을 오래 쥐고 상대를 흔드는 건 김보경의 역할이었다. 이재성은 김보경을 보좌했다. 패스 경로를 열어주고 수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이재성의 역할이었다.

2016년 당시 김보경은 이재성이 수비적으로 기여도가 높다고 언급했다. “재성이가 나보다 활동량이 많다. 수비할 때 인터셉트를 많이 하고 좋은 위치에서 흐름을 끊기도 한다. 나는 경기 운영 측면에서 재성이를 도와주고, 재성이가 압박 많이 당할 때 내가 옆에 있으면 한결 편하다. 상대 입장에선 비슷한 선수 두 명이면 편할 텐데 재성이와 나는 각자 다른 스타일이다.”

 

원래 스타일을 지키며 주인공이 되는 데 성공하다

지난해 여름 김보경이 가시와레이솔로 떠나자 이재성의 역할이 달라졌다. 이재성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해야 했다. 또 한 명의 테크니션 이승기는 주로 윙어로 기용되는 중이었다. 이재성은 보좌 역할에 자신을 한정짓던 과거에서 벗어나 전북의 경기 운영을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이재성은 주연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공을 오래 쥐고 볼 키핑, 드리블로 상대를 흔드는 플레이를 의식적으로 시도했다. 그러나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플레이는 ‘김보경 흉내’에 그쳤다. 당시 이재성은 “훈련장에서도 경기장에서도, 보경이 형 역할을 하려고 시도해 봤다. 잘 안 되더라”라고 말했다.

이재성의 원래 플레이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팀의 주연이 되어야 했다. 이재성은 빠른 패스 타이밍과 간결한 플레이에서 해법을 찾았다. 전북의 중심에서 공을 순환시키는 선수지만 공을 오래 키핑하기보다 원래 성향대로 빠르게 돌리며 ‘패스 앤드 무브’로 상대를 흔들었다. 이재성은 “원래 스타일로 플레이하는게 팀에 더 보탬이 된다는 걸 알았다. 감독님도 더 빠른 템포로 패스해주길 바라시더라. 미드필드 지역이나 후방에서 쓸데없이 오래 공을 잡고 있는 성향은 줄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9월 17일 포항스틸러스 원정 경기가 전환점이었다. 이날 2골을 터뜨리며 4-0 대승을 이끈 이재성은 막판 9경기 동안 4골 6도움을 올리며 폭발적인 득점 생산 능력을 보여줬다. 경기당 공격 포인트가 1.11개나 됐다. 앞선 17경기 동안 4골 4도움을 올리며 경기당 0.47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에 비해 경기 영향력이 크게 올라갔다. 스플릿 시스템에 따라 막판에 강팀을 연달아 상대했지만 오히려 기록이 향상했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이재성은 지난 시즌 막판에 공격의 중심으로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막판 활약을 통해 개인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MVP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제 손준호가 이재성을 받친다

공을 잡았을 때 현란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만 좋은 플레이메이커인 것은 아니다. 이재성은 팀 플레이 능력과 지능을 활용해 간결한 오픈 패스, 깔끔한 문전 침투와 원터치 플레이로 공격을 이끌었다. 자신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팀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재성의 성장은 지난 시즌 막판 전북이 거둔 큰 소득이었다.

이재성은 국가대표팀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신태용 감독 선임 이후 비중이 늘어난 이재성은 지난 11월 A매치 2연전에서 왼쪽 미드필더로 배치돼 조연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당시 미드필더 중 가장 공격 가담이 많은 선수는 오른쪽 미드필더인 권창훈이었다. 그러다가 12월 열린 E-1 챔피언십에서는 이재성이 오른쪽 미드필더를 맡아 공격을 주도했다. 이재성은 대표팀에서도 특유의 빠른 패스 타이밍, 시의적절한 침투를 통해 공격을 풀어나갔다. 전북에서 반년이 걸린 ‘조연 → 주연’ 성장을 대표팀에서 단 두 차례 소집 동안 압축해서 겪었다.

손준호의 말처럼, 이재성은 올해 전북에서 공격적인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손준호는 이재성보다 더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수 있는 선수다. 지난해 K리그 도움왕이기도 하다. 손준호가 조금 더 아래쪽에서 경기를 조율하면, 이재성이 분주히 움직이며 특유의 효율적인 공격을 주도할 수 있다.

운동 선수는 외부 자극에 의해 성장할 수도,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다. 이재성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맞추려는 노력을 통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마침 파트너가 반년 전의 김보경에서 손준호로 바뀌었다. 올해는 완전히 주인공이 된 이재성을 볼 수 있는 첫 해다.

사진= 풋볼리스트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