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마렉 함식은 누가 봐도 좋은 선수지만 위대한 선수라고 하기엔 약간 부족하다. 그러나 이탈리아 남부 해안 도시 나폴리에서만큼은 디에고 마라도나 못지않은 전설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나폴리는 23일(한국시간) 홈 구장 산 파올로에서 열린 ‘2017/2018 이탈리아세리에A’ 18라운드에서 삼프도리아를 3-2로 꺾었다. 2위 유벤투스와 승점 1점차를 유지하고 선두를 지켰다. 쉽지 않은 역전승이었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삼프도리아가 가스톤 라미레스의 예술적인 프리킥으로 앞서나가며 난타전이 시작됐다. 로렌초 인시녜에게서 시작되는 나폴리 특유의 공격은 알고도 막을 수 없었다. 인시녜의 얼리 크로스를 받은 호세 카예혼의 발리 슛은 선방에 막혔으나, 뒤따라 쇄도한 알란이 공을 밀어 넣으며 동점을 만들었다. 삼프도리아가 파비오 콸리아렐라의 페널티킥골로 다시 앞서가자, 나폴리는 인시녜의 문전 침투에 이은 재치 있는 슛으로 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난타전 끝에 나폴리의 역전을 이끈 선수가 함식이었다. 전반 39분 알란이 삼프도리아 문전에서 수비 3명 사이로 공을 쳐 놓고 과감한 돌파를 시도했다. 멀리 흐르는 공을 재빨리 잡아낸 드리스 메르텐스가 문전으로 패스를 보냈다. 노마크 상태로 대기하고 있던 함식이 골키퍼를 피해 골을 마무리했다. 나폴리는 후반전에 마리우 후이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는 악재를 겪었으나 끝내 승리를 지켰다.

 

나폴리의 부활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남자

함식과 나폴리의 역사적인 날이었다. 함식은 이 골로 나폴리 사상 최다골 기록을 경신했다. 기존 기록은 나폴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가 남긴 115골이다. 함식은 116골에 도달했다. 2007/2008시즌 나폴리에 합류한 뒤 세리에A의 대표적인 ‘미들라이커’로 활약하며 11번째 시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함식이 나폴리에서 남긴 발자취도 마라도나에게 버금간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의 두 번뿐인 세리에A 우승을 모두 이끈 전설적 인물이다. 빅 클럽이 못 되는 나폴리에서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가 전성기를 보냈다는 점만으로도 다른 인물이 넘을 수 없는 아우라를 형성했다.

함식은 나폴리의 최근 10년 부활의 역사를 온 몸으로 함께했다는 점에서 마라도나와 다른 종류의 각별함이 있다. 나폴리는 2001년 세리에B로 강등됐고 2004년 파산 사태를 겪으며 세리에C1(현 레가프로프리마디비시오네, 3부 리그)까지 떨어졌다. 현 구단주 아우렐리오 데라우렌티스가 팀을 인수한 뒤 빠르게 팀을 추스르고 2007년 다시 세리에A로 복귀시켰다.

세리에A로 돌아왔을 때 재건 프로젝트의 중심으로 550만 유로(약 70억 원)에 영입된 선수가 20세였던 함식이었다. 세리에B 브레시아에서 갓 두각을 나타낸 미드피더 유망주였다. 함식은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며 세리에A 9골을 터뜨렸다. 2008년 세리에A ‘올해의 영플레이어’로 선정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때부터 나폴리가 세리에A 팀으로 자리잡고 상위권까지 도약하는 과정에서 함식의 득점력은 늘 큰 비중을 차지했다. 승격 첫 시즌 8위에 오른 나폴리는 2010/2011시즌 3위까지 빠르게 순위를 상승시키며 우승 경쟁이 가능한 팀으로 성장했다. 90분 내내 성실하게 경기장을 누비는 자세와 준수한 테크닉, 뛰어난 득점력을 겸비한 함식은 미드필드에서 다양한 위치를 맡으며 여러 감독의 전술을 두루 소화했다.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도, 4-3-3의 공격적인 중앙 미드필더도 문제없었다. 파벨 네드베트가 자신의 후계자로 거론할 만한 활약이었다.

지난 시즌부터 함식과 나폴리는 새로운 차원의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은 나폴리를 어느 때보다 우승에 가까운 팀으로 성장시켰다. 함식을 비롯한 나폴리 선수들은 지긋지긋한 준우승 말고 우승을 한 번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뭉쳤다. 지난 시즌 리그 12골로 개인 최다 득점 타이 기록을 세운 함식은 전성기 기량으로 도전에 나섰다.

함식의 득점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마라도나를 큰 차이로 따돌린다면 ‘누적 점수’를 쌓아 비슷한 반열의 전설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 물론 나폴리 한정이다.

 

부진은 끝나지 않았지만, 골은 넣을 수 있다

함식 개인은 이번 시즌 영향력이 다소 감소한 상태다. 유럽대항전에서 자주 빠지고 리그에서도 후반에 교체돼 가며 체력 안배를 받았지만, 폭발력이 감소했다. 특히 득점이 11월까지 단 1골에 불과했다. 나폴리는 무게중심을 로렌초 인시녜 쪽으로 옮기고 승승장구했지만 함식의 부진은 불안요소였다. 나폴리를 견제하기 시작한 상대팀이 함식을 먼저 압박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더 버거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여전히 함식의 경기력은 개선이 필요하다. 삼프도리아전에서 공격진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한 미드필더는 함식이 아니라 알란이었다. 알란은 함식보다 조금 더 수비적인 태도로 경기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다. 이날은 브라질 선수다운 기술과 저돌성을 조합해 과감하게 삼프도리아 수비를 부쉈다. 함식은 알란이 만들어 준 득점 기회를 받아 넣은 것에 가까웠다.

함식의 부활은 ‘미들라이커’답게 득점에서 먼저 시작됐다. 16라운드 토리노전에서 오랜만에 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각종 대회 1무 2패의 부진에서 탈출한 경기였기에 의미가 컸다. 함식은 일주일 만에 열린 18라운드에서 또 골을 넣으며 마라도나의 기록을 깨는 동시에 나폴리를 다시 상승세로 돌려놓을 준비를 했다.

함식은 삼프도리아를 꺾은 뒤 “인테르밀란이 사수올로에 졌기 때문에 우리 승리는 승점 6점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우승만을 바라보는 태도다. 함식은 이미 친구들로부터 기록 경신에 대한 축하 선물을 받았다고 밝혔다. “친구들이 벌써 116이 새겨진 정강이 보호대를 선물해 줬다. 그러나 내 관심사는 오로지 승리였다.”

사리 감독은 “함식이 서너 경기 동안 골을 못 넣었다고 해서 실력을 의심할 수는 없다. 언제나 우리에게 있어 특별한 선수다. 우린 눈 앞의 경기만 생각하지만, 함식의 기록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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