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유럽축구연맹(UEFA) 리그 랭킹 1위.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초호화 군단의 리그. 가장 화려한 축구를 구사하는 리그. 현대 축구의 발전상을 따라가려면 스페인라리가를 놓쳐선 안 된다. ‘Football1st’는 세계 축구의 1번가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축구 소식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토마스 페르말런은 한동안 불운과 실수의 아이콘이었다. 이젠 무실점의 아이콘이다. ‘엘 클라시코’ 데뷔에 3년이나 걸렸지만, 첫 기회에 무실점 대승에 기여했다.

23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017/2018 스페인라리가’ 17라운드가 열렸다. 토마스 페르말런이 수비를 지킨 바르셀로나가 레알마드리드에 3-0으로 완승하며 선두를 지켰다. 바르셀로나와 4위 레알의 승점차는 14점으로 벌어졌다.

페르말런은 오랜만에 주목 받았다. 그동안 가장 친한 친구는 부상이었다. 2009년 아스널로 이적해 첫 시즌 7골을 터뜨리며 순식간에 스타가 됐으나 곧 불운이 시작됐다. 2010/2011시즌을 통째로 날리게 만든 아킬레스건 부상, 2014/2015시즌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자마자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햄스트링 부상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부상에 무수히 시달렸다. 부상에서 돌아온 뒤엔 기량 하락이 문제였다. 2013년 여름부터 지난 시즌까지 5년 동안 리그 선발 출장이 18회에 불과했다.

페르말런은 지난 시즌 AS로마로 임대돼 4경기 선발 출장, 21경기 벤치 대기를 하며 부상을 거의 털어낸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그 짧은 기간 동안 보여준 경기력이었다. 상징적인 경기가 시즌 초 열린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본선행 플레이오프 1차전이다. 로마가 앞선 상황에서 페르말런이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해 수적 열세에 몰렸고 결국 포르투에 동점골을 내줬다. 2차전에서 대체 센터백으로 나온 다니엘레 데로시까지 퇴장당하며 로마는 결국 탈락했다. 지난 시즌 UCL에 발만 담그고 나와야 했다. 페르말런이 결정적으로 신뢰를 잃은 계기였다. 그 뒤로도 수비 불안의 원흉 취급을 받곤 했다.

전례가 있으니 바르셀로나 수비진의 불안요소 취급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달 초 사뮈엘 윔티티가 햄스트링 이상으로 빠졌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까지 부상에서 회복 중인 상태였다. 4순위 센터백 페르말런이 제라르 피케와 함께 중앙 수비를 이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르셀로나 지역지 ‘스포르트’는 2군 센터백 다비드 코스타스를 1군으로 올려야 하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불안감은 실전을 통해 서서히 불식됐고, 엘 클라시코를 통해 말끔히 해소됐다. 페르말런은 12월 6일 스포르팅CP와 치른 UCL 경기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1.5군으로 나온 바르셀로나는 스포르팅을 2-0으로 깔끔하게 꺾었다. 센터백 파트너 피케가 경기 중 교체되는 와중에 페르말런은 수비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후 치른 라리가 세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모두 무실점 수비를 했다. 그중 백미가 레알 공격진을 상대한 경기였다. 수비의 리더는 어디까지나 피케였다. 그러나 페르말런은 ‘실점의 빌미를 자주 제공한다’는 악평과 달리 무난하게 경기에 녹아드는데 성공했다. 패스 성공률 90.7%로 팀 스타일에 맞는 빌드업 능력도 보여줬다.

레알을 상대로 페르말런은 길목을 지키는 수비를 주로 했다. 경기 초반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패스가 카림 벤제마에게 가지 못하도록 패스 경로를 선점했다. 후반전에는 마르코 아센시오 등의 패스가 호날두에게 향하는 걸 방해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끈질기게 공격수의 슈팅을 방해했다. 전반 18분 루카 모드리치가 역습을 시도하자 골대와 먼 곳에서 경고를 받고 끊어냈다.

페르말런은 마스체라노를 벤치로 밀어냈다. 마스체라노는 시즌 초반부터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찾겠다며 1월에 이적할 뜻을 밝히곤 했다. 윔티티의 부상을 계기로 마스체라노가 꾸준히 주전으로 뛴다면 잔류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러나 윔티티의 대체자는 페르말런이었다. 마스체라노는 3순위 자리까지 페르말런에게 빼앗겼다.

주전으로 등극한 뒤 4경기 연속 무실점 수비를 이끌어낸 페르말런은 ‘실수의 대명사’라는 타이틀을 내다 버렸다. 아스널에서 갓 주목 받았던 8년 전처럼 화려한 오버래핑을 하는 대신, 32세가 돼 한층 성숙한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딱히 상대 선수의 공을 빼앗아오거나 눈에 띄는 수비를 하지 않아도 수비 안정에 기여한다는 걸 무실점 기록이 보여준다.

이제야 호평이 나온다.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감독은 페르말런을 엘 클라시코에 내보내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부터 약간의 논란을 감수해야 했다. 경기 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 발베르데 감독은 “페르말런은 터프하고 강하고 빠르다. 좋은 말밖에 할 게 없다. 훌륭한 선수다”라고 단언했다. 스페인 일간지 ‘마르카’는 페르말런이 바르셀로나 이적 후 라리가에서 단 16경기를 뛰었을 뿐이지만, 그중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페르말런은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 3년 만에 첫 엘 클라시코를 치렀다. 그 전에는 벤치에만 두 번 앉아봤을 뿐이었다. 무실점 수비를 이끌어낸 페르말런은 여전히 쓸 만 한 수비 옵션이라는 점을 매 경기 증명해나가고 있다.

‘터미네이터’의 부활은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벨기에 대표팀에도 좋은 소식이다. 페르말런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벨기에 대표로 선발돼 왔다. 벨기에는 최근 스리백을 도입하며 중앙 수비가 많이 필요해졌다. 노장 페르말런은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베이럴트 등 후배들과 함께 뛰며 올해 A매치 5경기에서 선발로 활약했다. 현재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내년 러시아에서도 뛸 가능성이 높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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