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패션처럼 전술의 유행도 돌고 돈다. 한국은 11월 A매치를 통해 유행을 잘 따라가기 시작한 나라다. 한국이 도입한 4-4-2는 타국 사례를 볼 때 ‘언더독의 반란’에 맞는 전술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

 

세계적인 유행, 3-5-2 거쳐 4-4-2로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에서 각 국가대표팀이 쓰는 전술은 유럽 빅리그에서 유행하는 전술을 한 발 늦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에는 월드컵이 가장 세련된 전술을 과시하는 장이었지만, TV 중계가 보편화되고 축구 전술의 교류가 활발해진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프로 팀들이 먼저 전술 발전을 선도하고, 국가대표는 좋은 전술을 흡수해 적용하는 선에서 그치곤 한다. 때론 특정 프로팀의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 익숙한 전술을 반복하도록 시킴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는 대표팀도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스리백이 유행한 뒤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이 좋은 예다. 2014년 여름에도 여전히 세계 축구의 주류는 스리백 기반 전술이지만, 2011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3-5-2의 유행이 한국의 FC서울까지 전파된 시점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브라질월드컵 공식 기술 보고서는 ‘칠레, 네덜란드, 우루과이,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 스리백이 다시 득세했다’며 스리백의 부활에 주목했다. 또한 ‘가장 뛰어난 팀들은 수비라인 앞에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뒀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뒀던 것과 달랐다’고 정리했다. 스리백 앞에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두는 시스템은 곧 3-5-2를 의미한다.

최근 다시 주류로 올라서기 시작한 포메이션이 세련된 4-4-2다. 2000년대 이후 4-2-3-1, 4-3-3 등 원톱을 쓰는 포메이션에 밀려 4-4-2를 쓰는 팀은 줄어들고 있었다. 4-4-2는 현대 축구의 가장 기본적인 선수 배치 방식이지만 수비 라인의 숫자가 적다. 4-4-2 포메이션에서 필드 플레이어 10명은 총 3개의 라인으로 배치된다. 4-2-3-1이 4개의 라인, 4-3-3이 5개의 라인을 만들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라인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공수 간격을 매우 좁게 유지해야만 각 수비 라인 사이의 빈틈을 메울 수 있어 난이도가 높았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가 2013/2014시즌 스페인라리가 우승으로 정점을 찍으며 4-4-2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틀레티코는 강팀에 속하지만 당시 라리가를 양분하고 있던 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드에 비하면 도전자 입장이었다. 도전자라는 위치에 걸맞게 90분 내내 열심히 뛰는 선수들로 선발 라인업을 모두 채운 아틀레티코는 체력과 전술 소화 능력이 충분하다면 3열 수비로도 충분하다는 걸 보여줬다. 이후 2015/2016시즌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한 레스터시티가 세련된 4-4-2의 가능성을 다시 입증했다.

‘유로 2016’에서 4-4-2의 가능성은 다시 입증됐다. 대회 최고 돌풍의 팀이었던 아이슬란드가 고전적인 4-4-2를 구사했다. 중앙 미드필더가 2명뿐이라서 4-2-3-1이나 4-3-3을 쓰는 팀에 비해 미드필드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전체적인 조직력으로 극복했다.

포르투갈은 유로 2016을 독특한 4-4-2로 우승하며 다른 종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미드필더 네 명을 일자가 아닌 마름모꼴로 배치해 중앙에 몰아넣었고, 측면 공격은 미드필더가 아니라 투톱에게 맡겼다. 이를 위해 전형적인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윙어 출신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나니가 최전방을 맡았다. 포르투갈은 호날두의 국가대표 데뷔 13년 만에 역량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 선수가 “우리 아틀레티코처럼 플레이했다”고 말한 이유

신태용 감독은 10일 콜롬비아, 14일 세르비아를 상대하면서 두 경기 모두 4-4-2를 썼다. 선수 구성과 전술 운용 모두 아틀레티코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특정 팀을 참고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경기를 치른 뒤 일부 선수들은 “우리 오늘 아틀레티코마드리드 같지 않았냐”는 감상을 공유했다.

아틀레티코식 4-4-2는 잘 어울리는 선수 구성에서 출발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좌우 측면 미드필더에 전문 윙어를 기용하지 않았다. 공수를 겸비했고 측면과 중앙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코케, 사울 니게스, 라울 가르시아(현 아틀레틱빌바오), 아르다 투란(현 바르셀로나) 등이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됐다. 수비력이 좋은 미드필더 네 명이 좁은 폭을 유지하며 수비라인 앞을 철저히 지켰다.

한국이 두 경기 연속으로 측면에 배치한 이재성, 권창훈은 코케, 사울 니게스와 비유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중앙과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고 90분 내내 공수를 오갈 만한 체력을 지녔다. 권창훈에게 오른쪽을 맡긴 건 평범한 선택이었고, 이재성의 왼쪽 측면 기용이 절묘했다. 이재성도 오른쪽과 중앙을 오가며 뛰는 것이 익숙한 선수지만 왼쪽 미드필더 자리에서 윙백과 연계하며 공격을 전개할 때 더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 콜롬비아전 중앙 미드필더였던 고요한 역시 측면 미드필더를 겸할 수 있는 선수답게 순간적으로 사이드라인까지 나가 압박을 했다.

유로에서 포르투갈이 전개한 전술과 비슷한 면도 있었다. 신 감독은 콜롬비아전에서 손흥민과 이근호를, 세르비아전에서 손흥민과 구자철을 투톱으로 기용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스타일의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전문 윙어가 없는 약점은 투톱이 번갈아 측면으로 빠지며 보완했다.

포르투갈은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더 오랫동안 안고 있던 팀이다. 팀내 가장 득점력이 좋은 선수가 윙어인 반면, 위력적인 스트라이커가 부족하다는 고민이 비슷했다. 포르투갈은 한때 호날두를 원톱으로 기용한 적도 있었다. 최근 내놓은 해답은 호날두를 투톱으로 기용해 자유로운 동선을 보장하는 것이다. 호날두는 투톱 파트너 나니와 함께 중앙과 측면을 오갔다.

손흥민의 파트너로 이근호가 나왔을 때는 측면 공격의 속도가 크게 높아졌다. 이근호는 스트라이커와 오른쪽 윙어 역할을 능숙하게 겸했다. 구자철은 이론상 최전방에 배치돼 있으면서 볼 키핑, 패스워크에 기여하며 창의성을 높여줄 수 있는 선수였다. 구상대로 되진 않았지만 4-4-2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신 감독의 전술 구상이 반영된 선수 배치였다.

근본적으로 원톱보타 투톱을 쓰는 팀은 역습의 위력이 높다. 최전방 공격수 두 명이 절묘한 호흡을 맞추는 것만으로 상대 수비가 몇 명이든 돌파할 가능성이 생긴다. 아틀레티코와 포르투갈 등 최근 투톱을 쓰는 팀들은 전방 압박, 측면 공격 등 공격수에게 다양한 역할을 요구한다. 한국도 비슷하다. 공격수들은 한국이 수비할 때 열외되지 않았다. 수비할 때도 미드필더들이 미처 메우지 못한 공간을 찾아가거나 공을 가진 상대에게 돌진해 실수를 유발했다.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의 역할이 복잡해지는 대신, 중앙 수비수들의 할 일은 단순해진다. 스리백을 쓸 때처럼 복잡한 포지션 체인지를 통해 공격에 가담할 필요가 없다. 쉴 새 없이 수비 라인의 위치를 조정하고, 빠른 속도로 전진 패스를 보내면 된다. 권경원, 김영권, 장현수 등 센터백들은 스리백을 썼을 때 크고 작은 실수가 있었던 것과 달리 4-4-2에서 좋은 플레이를 했다. 수비 라인을 능동적으로 설정하고 상대 공격수를 위험 지역에서 밀어냈다.

 

한국과 잘 맞는 축구의 가능성

10년 넘게 현대 축구의 ‘표준 포메이션’이었던 4-2-3-1은 각 선수의 역할이 분업화되기 쉽다. 공격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등 각 포지션의 선수는 자기 몫만 해도 된다. 그러다 팀이 경직될 우려도 있다. 한국이 이 함정에 빠져 있었다.

반면 아틀레티코를 시작으로 유행해 각국 대표팀으로 퍼진 4-4-2는 더 유기적인 경기를 유도하는 포메이션이다. 공격수는 전방 압박과 측면 공격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미드필더들은 모두 수비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가 공을 잡으면 창의성을 발휘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많은 활동량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4-4-2는 조금 더 느린 템포 속에서 눈치 싸움을 벌이게 되는 전술에 비해 한국에 잘 맞는다. 신 감독이 부임 이후 줄곧 강조한 “상대보다 한 발 더 뛰는 축구”와 “투지 있는 축구”를 경기력으로 치환하기 좋은 경기 방식이다. 아이슬란드, 레스터시티가 이미 돌풍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4-4-2를 썼다. 한국이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이 되기 충분하다.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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