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천안] 한준 기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적막감이 맴돌았다. 취재석에서 기사를 마감하던 한 기자는 “끝난 것 맞지?”라고 물었다. 이상헌이 후반 36분 추격골을 터트리며 천안종합경기장을 떠나려면 일부 팬들의 발길을 붙잡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3분 간 주어진 추가 시간은 불붙지 못했다.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을 개최한 한국은 30일 포르투갈과 16강전에서 1-3으로 패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시작부터 어려운 경기였다. 전반 10분 브루누 샤다스에게 선제골을 내줬고, 전반 27분에 브루누 코스타가 한 골을 더 보탰다. 두 골 모두 측면이 무너진 뒤 배후에서 나온 중거리슈팅이라는 비슷한 패턴으로 허용했다. 조별리그 세 경기 내내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응원을 보여준 개최국 팬들을 얼어붙게 만든 ‘돌역습’이었다.

두 골을 내줬지만 선수들은 따라붙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공격 의지를 불태웠다. 후반전에는 북쪽 골대 뒤에 자리잡은 서포터즈 붉은악마의 응원 소리만 울렸다. 후반 14분 샤다스에게 한 골을 더 내준 뒤에는 몇몇 팬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헌의 추격골을 경기의 마지막 10분을 달아오르게 했다. 

이상헌의 골 이후 함성은 경기장을 흔들리게 했다. 파도타기 응원이 관중석에서 자체적으로 시작될 정도로 흥이 올랐다.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은 장신 수비수 정태욱을 공격 원톱으로 올리는 등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기 위한 모든 수를 썼다. 에밀리우 페이시 포르투갈 감독은 “경기장 분위기가 대단했다”는 말을 경기 후 회견에서 여러번 했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 적막감이 돌았다. 2만 5천여 좌석이 매진됐지만, 주저 앉은 선수들을 둘러싼 꽉찬 관중석에 배경음이 들리지 않았다. 이내 응원의 소리가 울렸다. “괜찮아! 힘내라!”는 격려가 날아들었다. 탈락에 대한 분노나 폭력 등 소요 사태는 없었다. 승리한 포르투갈을 향해서도 야유나 욕설 없이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 사이의 감정 다툼도 없었다. 서로를 격려하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페이시 감독은 이런 장면이 연출된 것에 대해 감동 받은 모습이었다. “한국의 서포터는 환상적이었다. 대단한 응원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한국의 어린 선수들도 잘했다. 우리가 이긴 것도 기쁘지만 마지막에 양 팀 선수들이 화합하던 모습, 그 행동이 더 좋았다. 한국 선수들과 관중, 서포터 모두가 환상적이었다.”

이긴 페이시 감독에겐 모든 상황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진 한국의 입장에선 축제가 될 수 없었다. 선수들은 평소보다 일찍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풀 죽은 채 지나갔고, 목소리도 작았다. 차분히 소감을 말하며, 대회를 통해 얻은 소득을 말했지만 탈락이라는 아쉬움을 지우기 어려웠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훨씬 늦게 믹스트존에 나타났다. 한국 선수들이 모두 떠나고오 5분여 이상 기다려야 만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포르투갈 선수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라커룸 안에서 8강 진출을 자축하는 파티를 벌이고 나선 듯했다. ‘픗볼리스트’는 두 골을 넣은 브루누 샤다스와 주장 후벤 지아스와 인터뷰를 했다. 다른 선수들이 두 선수가 인터뷰하는 주변을 서성이며 장난을 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였다.

주장 지아스의 겨드랑이에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었다. “아주 강한 음악을 들었다”며 웃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지아스는 포르투갈어만 가능한 동료 샤다스를 위해 영어 통역을 자청하기도 했다. 승리의 기쁨이 크기에 즐겁게 인터뷰에 임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한국 선수들이 모두 다 잘했고, 경기장 분위기와 팬들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축구의 본 고장은 유럽이고,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등 두 유럽팀에 패하며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한국이 상대한 두 유럽 팀이 모두 한국의 축구 문화와 분위기에 엄지 손가락을 들었다. 아픈 탈락이지만, 한국 축구는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분노는 없고 존중이 있었다. 희망도 봤고 숙제도 찾았다. 한국 축구는 담담하게 패배를 받아들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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