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경기장은 그저 배경이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이자 역사다. ‘풋볼리스트’는 전세계 의미 있는 스타디움을 직접 답사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학부)와 글로벌스포츠산업학과(대학원) 학생과 연구원들의 칼럼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봄이 시작되는 3월, 축구팬들은 K리그 개막으로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특히 올해는 개막전에서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모두 최다관중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봄을 알렸다. 봄이 오는 3월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는 초록색 물결이 일어난다. 세인트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세인트 패트릭데이 근원지인 아일랜드에서는 이 날, 아일랜드의 전통 스포츠인 게일릭 풋볼의 결승전이 열린다. 결승전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위치한 크로크 파크(Croke Park)경기장에서 열리는데, 게일릭 풋볼뿐 아니라, 럭비와 축구 경기장으로도 종종 사용되어 바르셀로나 캄노우와 런던 웸블리구장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축구장 (수용인원 82,300명)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디움투어를 하러 크로크파크로 향했다. 더블린 드럼콘드라 역에서 걸어서 10분거리에 있는 크로크파크는 주택가 근처에 위치해 있다. 경기장을 처음 봤을 때, 드는 생각은 정말 크다는 것과, 경기장 옆에 흐르는 강과, 주변의 주택단지가 주는 한적하다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결승전이 열리는 날에는 82,300의 좌석모두 매진이 된다고 하니, 게일릭 풋볼의 인기의 높은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게일릭 풋볼은 아일랜드의 전통 스포츠로, 축구와 럭비가 합쳐진 형태의 게일릭 풋볼과 하키의 형태를 띤 헐링, 이렇게 두 종류의 게임이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이 전통스포츠가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축구와 럭비를 제치고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주목해 볼만한 점은 프로리그가 없고, 선수들이 소속된 지역구를 대표해서 뛰는 아마추어 리그라는 점이다. 아마추어리그 특성상 선수들이 돈을 받고 경기를 뛰지 않으며, 선수 이적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이 기존에 살던 지역구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구로 이사를 갈 때만 팀을 옮길 수 있다고 한다.

 

크로크파크는 1913년 게일릭 풋볼 선수협회(GAA)가 소유한 이래로, 계속 협회에서 경기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장에는 시합이 열리는 그라운드 이외에도, 게일릭 풋볼의 역사를 담은 GAA박물관, 역대 올림픽에서 아일랜드 선수들이 딴 메달을 모아 놓은 올림픽 박물관이 있다. 먼저 게일릭풋볼 경기영상으로 시작된 투어는 경기장과, 스카이박스, 기자회견장, 선수들의 라커룸을 둘러보았다. 경기장이 오래된 탓인지, 경기장에서는 특별하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인상깊었던 점은 프로그램을 진행해주는 경기장 내의 가이드였다. 여느 경기장과 비교해 별반 다른 점이 없었지만, 무척 자랑스러워 하면서 경기장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 팬들의 사랑이 만들어낸 지역 유산

스타디움 투어가 끝난 후, 구장 내의 게일릭풋볼 박물관과, 올림픽 박물관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1920년,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에서는 독립운동이 한창이었다. 11월 21일 일요일,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세력은 더블린에서 활동하고 있던 영국의 비밀요원들을 급습했다. 이에, 영국은 그날 오후 크로크파크에서 열리는 게일릭 풋볼경기를 습격해 14명의 사상자와 60명의 부상자를 내는 사건이 있었다.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로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아일랜드 대내외에서 영국을 비판하며, 아일랜드 독립에 힘을 싣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1921년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자치를 인정받았다. 독립으로 이끌어주는 중요한 사건이 바로 크로크파크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크로크파크는 아일랜드사람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켜주는 영혼이 깃든 장소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메달을 딴 선수들과 당시 입었던 유니폼을 전시한 올림픽박물관도 그곳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더블린의 크로크파크에서 타이틀방어전을 치른다면 정말 환상적일 것이다.” 아일랜드 출신 UFC파이터 코너 맥그리거가 페더급 챔피언이 된 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맥그리거의 경기는 흥행의 문제로 크로크파크가 아닌 다른곳에서 벌어지지만, 그는 꾸준히 더블린에서 경기를 갖고 싶어한다. 독립운동이 펼쳐진 홈그라운드의 역사적인 곳에서, 애국심과 자긍심이 한껏 달아오른 홈팬을 등에 업고 펼치는 경기는 맥그리거에게 승리를 위한 최적의 장소도 될 수 있겠지만, 크로크파크가 아일랜드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계속되는 Pride

아일랜드 제 1의 스포츠이지만, 게일릭 풋볼선수들은 일체의 돈을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일릭 풋볼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협회나 각 팀 별로 선수들에게 지역 커뮤니티내의 일자리를 주선 해주기 때문이다. 평판이 취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일랜드에서 팀이나 협회의 추천을 받으면, 보다 손쉽게 구직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듯 협회는 리그는 물론, 선수 개개인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마추어 특성상 선수들의 안정된 삶은 리그의 발전을 위해서 필수적이었겠지만, 협회가 개개인까지 챙기는 모습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협회의 이런 노력으로 사람들이 게일릭 풋볼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고, 국기(國技)로서의 입지가 확고해 지지 않았나 싶다.

 

크로크파크는 2009년부터 커뮤니티 펀드를 조성해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사업을 한다. 지금까지 75만유로 가량의 지원을 했는데, 이는 한화로 9억 원이 조금 넘는다. 지원사업의 주요 내용으로는 지역 내 문화유산 보존사업, 환경보호사업, 시설확충사업, 교육지원사업 등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경기장으로부터 1.5km반경 내의 지역에만 지원을 한다고 한다. 주변 동네에 크로크파크가 있다는 사실이 자부심으로 느껴질 만했다.

      

#긍지를 주는 경기장

홈경기에서 승률이 좋을 때, 경기장을 찾는 관중이 많고 소속된 팀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팬들에게만 해당될 뿐, 새로운 팬의 유입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따라서 새로운 팬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경기외적으로 팀과 연계된 지역사회에 자긍심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모기업의 홍보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 스포츠산업에서는 팀을 강조하는게 아니라 팀의 터전인 경기장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지역사회와 연계된 자긍심을 불러오기에 효과적이지 않나 싶다. 크로크파크는 100여년이상 사용 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4번의 증축과 보수공사를 거쳤다고 한다. 이렇듯 오랜 기간 자연스레 지역사회에 동고동락을 함께하며,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경기장이 생길 때, 슈퍼매치뿐 아니라 지방팀의 경기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연고제가 실현되지 않을까. 

 

글/사진= 이태권(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4학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