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최강희 감독과 함께 전북현대의 ‘닥치고 공격’도 떠났다. 조세 모라이스 신임 감독은 10년 동안 뿌리내린 팀 컬러를 지우고, 생각하는 공격을 심으려 한다.

1일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한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19’ 공식 개막전이 열렸다. 지난해 K리그1 챔피언 전북현대가 FA컵 챔피언 대구FC와 1-1 무승부를 거뒀다. 전반 22분 대구의 에드가가 선제골을 넣었고, 전반 28분 전북의 임선영이 동점골을 터뜨렸다.

전북이 개막전 승리를 놓친 건 8년 만이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으로 개막전은 꼬박꼬박 승리를 챙겼다. 승리가 익숙하던 팀이 이기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은 퍼진다. 전북 경기를 종종 찾는다는 한 택시 기사는 “전북하면 닥공, 무조건 공격이다. 그걸 보러 다른 지역에서 온 팬들을 많이 태웠다. 소심한 축구 하다가 자꾸 비기면 어쩌나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빌드업 축구?’ 전북의 플랜A는 큰 변화 없었다

전북 선수들은 훈련에서 “모라이스 감독이 빌드업과 세밀한 플레이를 중시한다”라고 말한 반면, 모라이스 감독은 “최 감독 시절의 팀 컬러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실제 경기 내용은 최 감독 시절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모라이스 감독은 기존의 전술인 4-2-3-1을 그대로 유지했다. 김신욱 아래를 로페즈, 임선영, 한교원이 받치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신형민, 손준호가 배치된 조합 역시 익숙했다. 새로 영입된 선수 중 선발로 뛴 건 수비수 김민혁뿐이었다. 김민재가 이적하고 최보경이 경미한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에 김민혁은 꼭 투입돼야 했다. 모라이스 감독이 크게 바꾼 건 하나도 없었다.

전북은 최 감독 시절에도 후방에서 차근차근 빌드업하는 경기가 잦았다. ‘전북 천하’가 길어질수록 상대팀이 더 수비에 집중했기 때문에 전북이 공을 오래 쥐게 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전북의 전반전 플레이에 결정적인 변화는 없었다.

문제는 수비 방식에서 일어났다. 최 감독 시절 전북은 포백이 일자 라인을 거의 유지하지 않고, 포백 중 누군가가 수시로 뛰쳐나가 상대 공격수를 압박하는 식으로 수비했다. 반면 모라이스 감독은 좀 더 정석적인 일자 수비에 비중을 뒀다. 그러나 전북 수비수들은 일자 수비를 하라는 지시를 어겨야 하는 타이밍을 종종 놓쳤다. 포백 앞에서 저지선 역할을 하는 미드필더가 없어 생긴 현상이기도 했다.

모라이스 감독은 경기 도중 신형민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리고 4-1-4-1에 가까운 선수 배치로 전환했다. 신형민에게 본격적인 포백 보호를 전담시켜 수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모라이스 감독은 이 조치 이후 수비가 한층 개선됐다고 자평했다.

 

최강희와 모라이스의 결정적 차이, 후반전 공격수 투입 여부

모라이스 감독이 바꾼 건 초반이 아니라 막판 전술 운용이었다. 모라이스 감독은 후반 17분 김신욱을 이동국으로 교체했다. 이때 이미 투톱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었다. 후반 23분 공격형 미드필더 임선영을 한승규로, 후반 30분 윙어 한교원을 문선민으로 대체했다. 모두 같은 포지션에서 일어난 교체였다.

최 감독 시절의 ‘닥공’과는 성격이 다른 교체 방식이다. 전북에 닥공이라는 브랜드가 생긴 건 2011년부터다. 이 수식어는 단지 공격력이 강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최 감독 특유의 교체 전략에서 비롯됐다. 이동국을 원톱으로 세워 4-2-3-1로 경기를 진행하다가, 후반전에는 최전방 공격수를 추가 투입하는 것이 당시 전북의 상징적인 전략이었다. 정성훈, 김동찬 등이 후반에 투입돼 이동국과 투톱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전북은 지고 있든, 이기고 있든 늘 공격수를 늘렸다. 경기 상황을 따져가며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공격에 치중한다고 해서 ‘닥치고’ 공격이었다. 무식해 보이지만 절묘한 전략이었다. 두 팀 모두 집중력이 떨어지는 후반 25분경 공격수를 늘리고 롱 패스 위주의 선 굵은 축구로 전환하면 득점 기회가 많이 생겼다. 전북이 앞서고 있을 경우, ‘닥공’은 상대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면서 오히려 수비를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팀이었다.

 

이동국 “신욱이와 투톱으로 뛰곤 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최 감독은 공격수 추가 투입을 ‘필살기’로 썼다. 특히 홈에서는 “홈 팬들 앞에서 화끈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을 주문처럼 매 경기 반복했다. 2016년 장신 공격수 ‘끝판왕’ 김신욱이 영입된 뒤 최 감독의 선굵은 축구는 한결 수월해졌다. 누가 선발로 나오든 경기가 끝날 때는 이동국과 김신욱이 동시에 경기장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동국도 투톱에 맞춰 경기 스타일을 바꿨다. 김신욱 영입 이후에는 노장 이동국이 조커로 투입되는 경기가 많았다. 이동국은 전문 골잡이가 아니라 섀도 스트라이커에 가깝게 뛰며 경기 운영을 맡는 등 김신욱과 유연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투톱을 염두에 둔 방식이었다.

이동국은 “반드시 골이 필요한 경기에서 신욱이와 제가 투톱으로 나온 적이 많았다. 오늘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기존 틀을 유지하려고 했다. 감독님 생각이 있는 거다. 천천히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모라이스 감독의 축구를 잘 따르고는 있지만, ‘전주성’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투톱으로 전환했던 것과 이날은 완전히 다른 경기였다.

 

“공격수 늘리지 않았지만, 공격 강화였다” 모라이스의 이론적 접근

모라이스 감독은 공격수를 늘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상대가 스리백을 썼고 제공권이 좋았기 때문에 그보다는 빠른 선수들을 넣어 플레이하는 게, 돌파를 해서 좋은 장면을 만드는 게 낫다고 봤다. 그래서 그런 교체를 한 것이다.”

이날 대구는 3-5-2 포메이션으로 경기했다. 일반적으로 스리백은 투톱을 상대할 때 강하다. 중앙 수비수 세 명이 상대 공격수 두 명을 상대로 수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전북이 4-1-4-1 등 원톱 위주 포메이션으로 공격할 경우 윙어와 풀백의 콤비네이션을 통해 대구의 윙백 한 명이 지키는 측면을 공략하기 용이하다. 대구 스리백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스리백과 떨어진 2선에서부터 수비를 흔드는 것이 정석이다. 모라이스 감독은 전술의 정석대로 했다.

“이동국, 한승규, 문선민을 투입하면서 경기 템포와 세밀함에 변화를 주려 했다. 템포는 높였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

한승규는 자신이 투입되는 시점부터 전북의 포메이션이 더 본격적인 4-1-4-1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신형민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남겨놓고 한승규, 손준호를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려보냈다. 전북의 풀백들이 오버래핑해 대구 윙백을 묶어 놓으면, 대구 미드필더 3명을 전북의 공격형 미드필더 4명이 수적 우위 상태에서 공략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균열을 만들겠다는 전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라이스 감독의 전략은 실패했다. 대구의 수비 조직력이 전북 공격진의 호흡보다 더 강했다. 한승규, 문선민 등이 한두 차례 대구 페널티 지역 안에서 득점 기회를 만들었으나 결정적인 슛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공격 전술에서 이동국은 고립됐다.

복잡한 계산보다 기세로 승부했던 ‘닥치고’ 공격에서, 상대 포메이션을 고려해 승부하는 ‘생각하는 공격’으로 전환됐다. 선수들도 최 감독 시절보다 더 머리를 쓰라는 주문을 받는다. 최 감독 시절 자기 스타일대로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모라이스 감독 아래서는 감독의 주문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과도기는 예고된 바

과도기는 예고된 대로다. 이동국은 앞선 전지훈련 인터뷰에서 “시즌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구전이 끝난 뒤에도 “확 달라졌다기보다는 감독님이 세밀한 축구를 원하신다. 기존 장점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절충안을 찾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했다.

전북은 6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베이징궈안과 홈 경기를 갖는다. 모라이스 감독은 대구전에서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은 세밀한 플레이를 실현하기 위해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북 관계자는 “최 감독님 때와 많은 게 달라졌지만, 현장 스태프들이 확실하게 말하는 것 한 가지는 ‘훈련에 체계적인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훈련을 통해 단계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다. 그 과정을 밟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축구 관계자는 “모라이스 감독은 한 경기로 흔들리거나 부정적인 전망을 갖지 않을 것이다. 경기력은 곧 나아질 거라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과도기를 심하지 않게, 길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전북의 과제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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