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상주] 김정용 기자= 상주상무가 사상 처음으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K리그 클래식에 잔류하는 팀이 됐다. 120분 동안 원하는 대로 경기를 풀지 못한 상주는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부산아이파크의 도전을 물리쳤다.

26일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한 상주시민운동장에서 ‘KEB 하나은행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017’ 2차전에서 상주가 부산에 0-1로 패배했다.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한 상주는 연장전을 거쳐 진행된 승부차기에서 5PK4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둬 잔류했다.

쓸 카드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인 혈전이었다. 부산은 중요한 공격 자원 고경민, 레오의 몸 상태가 나빠 벤치에 앉혀야 했다. 선수층이 더 한정된 상주는 지난 1차전 멤버 중 부상을 당한 진대성을 빼고, 선발 투입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김태환을 기용한 것이 변화의 전부였다. 주민규, 유준수 등 부상을 안고 뛰는 선수가 많았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데다 날이 추운 만큼 활기찬 경기도 쉽지 않았다. 눈이 즐거운 공방전보다 몸싸움이 끊이지 않는 난전에 가까웠다.

어려운 경기를 앞둔 두 감독의 대처법은 극과 극이었다. 이승엽 부산 감독은 경기 전날 도무지 잠이 안 와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를 두 경기나 시청했다고 했다. 상대 감독이 사실상 밤을 새우는 동안, 김태완 상주 감독은 평소보다 오히려 일찍 잠이 들었다.

 

부산, 16분 만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다

1차전에서 상주가 1-0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부산이 시작부터 불리한 상황이었다. 이승엽 감독은 골을 넣지 못하면 진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최대한 공격적인 라인업을 구성하려 했다. 미드필더 다섯 명을 모두 공격력을 갖춘 선수로 채웠다. 라이트백은 수비적인 정호정 대신 공격적인 김문환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부상 선수들 때문에 1차전과 비슷한 라인업을 쓴 상주보다 부산이 더 과감했다.

선제골을 이끌어낸 인물은 부산의 이정협이었다. 부산의 공격 축구는 뜻대로 작동하지 않았지만, 이정협 특유의 ‘열심히 뛰는’ 축구가 변수였다. 문전으로 투입되는 공을 잡기 위해 이정협이 다소 무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달려들었다. 이정협은 상주의 두 센터백 사이로 진입을 시도했고, 윤영선에게 밀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비디오 판독(VAR)을 거쳤지만 페널티킥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두 국가대표 선수의 경합에서 생긴 변수였다. 전반 16분 호물루가 페널티킥을 차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VAR, 두 팀에 모두 좌절을 안기다

경기가 점차 뜨거워지던 후반 초반, 올해 K리그의 화두이자 골칫거리였던 VAR이 경기를 크게 흔들었다. 두 차례 경기가 지연되며 경기 흐름이 요동쳤다.

먼저 VAR로 좌절을 맛본 쪽은 상주였다. 후반 16분 김태환이 절묘한 개인기에 이어 올린 크로스를 유준수가 받아 넣었다. 유준수는 분명 온사이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주심은 VAR이 필요하다고 선언한 뒤 헤드셋에 손을 대고 한참 동안 비디오 판독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파울로 인한 노골 선언이었다. 유준수보다 먼저 헤딩을 시도했던 여름이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다.

바로 이어진 부산의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비디오 판독이 벌어졌다. 임유환의 다이빙 헤딩 슛을 유상훈 골키퍼가 막았고, 이 공을 박준태가 잽싸게 밀어 넣었다. 이번에도 박준태는 반칙을 저지르지 않았다. 골로 보이는 상황에서 VAR로 인해 경기가 지연되자 술렁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VAR 결과는 노골이었다. 임유환의 오프사이드였다.

둘 다 VAR이 아니었다면 오심을 저지를 수 있었던, 기술이 적절하게 쓰인 상황이었다. 다만 경기가 연속으로 지연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두 팀 모두 수비보다 공격에 더 힘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정협의 하프발리슛이 유상훈의 품에 안긴 장면을 비롯, 두 팀 모두 결정적인 슛을 만들 능력이 부족했다. 스타 공격수 주민규와 이정협 모두 페널티 지역 안에서 존재감이 부족했다.

결국 득점 없이 후반전이 끝났다. 정규 시간 90분 동안 나온 모든 득점 상황에서 VAR이 쓰였고, 그중 두 개가 취소됐다. 오심은 없었지만 여러 차례 경기가 지연되고 ‘희망 고문’을 당하며 선수들은 점점 약이 올랐다.

쓸 카드가 고갈된 상태에서 맞은 연장전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정협이 연장 후반에 맞은 좋은 득점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전부였다. 무리한 공격을 하다 역습을 맞을 수도 있다는 두 팀의 두려움은 연장전 30분 동안 제대로 된 공격이 어렵게 만들었다. 그나마 교체 카드 세 장을 모두 쓰고 득점을 위해 노력한 부산의 공격이 더 과감했지만 결정적인 플레이는 부족했다. 결국 두 팀의 잔류와 승격은 ‘축구판 러시아 룰렛’ 승부차기로 결정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승부차기, 단 한 명 고경민만 실패했다

첫 번째 키커 호물로가 앞선 페널티킥 득점과 같은 방향으로 깔끔한 킥을 성공시키며 부산이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상주 주장 여름의 킥은 김형근 골키퍼의 손끝에 걸린 뒤 아슬아슬하게 골대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키커 순서가 매번 바뀌는 ABBA 방식에 따라 다음 키커는 상주의 신진호였다. 신진호는 골키퍼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냅다 차는 독특한 킥 타이밍으로 깔끔하게 골망을 갈랐다. 부산의 레오도 골망이 찢어져라 킥을 날려 성공시켰다. 부산의 3번 키커 이동준, 상주의 3번 키커 임채민도 실수 없이 킥을 마무리했다. 상주 4번 키커 김호남은 한참 공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구석으로 밀어넣는 패턴을 택해 성공했다.

승부는 부산의 4번 키커 고경민의 발에서 갈렸다. 올해 이정협 다음으로 많은 골(9골)을 넣은 부산 선수 고경민은 가벼운 사타구니 부상 때문에 후반 교체 멤버로 투입된 선수였다. 고경민의 킥이 크로스바를 넘어 관중석 쪽으로 향했다. 크게 환호하는 상주 관계자들과 고개를 떨군 고경민의 모습이 극심한 대비를 이뤘다. 센터서클로 돌아온 고경민에게 이정협이 손을 뻗어 위로했다.

부산 5번 키커 홍진기가 킥을 성공시킨 뒤, 마지막 키커는 주민규였다. 경기 내내 슛을 시도하지 못했던 주민규는 골대 구석으로 향하는 정확한 킥을 성공시킨 뒤 동료들을 향해 달려가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

 

‘승강 PO 가면 강등’ 법칙 깬 상주

역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는 모두 K리그 챌린지(2부)에서 올라온 도전자의 무대였다. 2013년 상주, 2014년 광주FC, 2015년 수원FC, 지난해 강원FC 모두 마찬가지였다. 특히 챌린지에서 4~5위에 그친 팀이 플레이오프 밑바닥부터 모든 계단을 타고 올라가 승격하는 것이 기존 양상이었다. 올해는 챌린지 2위팀 부산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기존 법칙이 깨졌고, 상주가 잔류에 성공하며 ‘클래식 팀은 승강 플레이오프로 떨어질 경우 강등된다’는 기존 법칙을 또 깼다.

상주는 K리그의 대표적인 ‘잠수함’이지만 두 시즌 연속 잔류로 팀 성격을 바꿔나가고 있다. 승강제 도입과 동시에 강제 강등됐던 상주는 2013년 승격, 이듬해 강등, 2015년 승격을 연달아 경험했다. 2016년 6강 돌풍을 일으켰고, 올해는 지난해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간신히 강등을 면하며 3시즌 연속으로 클래식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됐다.

패배한 부산은 이번 시즌 최대 목표였던 승격을 놓쳤다. 고 조진호 감독을 위해서라도 승격하겠다는 각오는 마지막 한 골 부족으로 좌절됐다. 대신 부산은 FA컵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 부산은 울산현대를 상대로 29일 홈에서 1차전을, 12월 3일 원정에서 2차전을 갖는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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