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포지션을 바꿔 성공한 선수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만화 주인공이 필살기를 장착한 뒤 더 강력한 캐릭터로 거듭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안드레아 피를로가 오히려 후방으로 내려간 뒤에 공격력을 더 발휘했다는 역설을 보면 축구가 어떤 종목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시즌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막스 마이어, 파비오 보리니, 파비안 델프를 통해 최근 유행하는 포지션 변환의 양상을 정리했다.

테크니션은 플레이메이커로 뛰어야 하고, 그의 자리는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생각하는 것이 축구계의 통념이다. 그러나 현대 축구의 플레이메이커는 뛰어난 기술 외에도 다양한 덕목을 필요로 한다. 상대 압박을 버틸 만한 힘을 겸비하지 못했다면 공격수 같은 득점력, 윙어 같은 돌파력, 수비형 미드필더 같은 전방 압박 능력 등 ‘1인 2역’이 되는 선수여야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될 수 있다. 지금 가장 각광받는 레알마드리드의 이스코가 좋은 예다. 이스코는 테크닉뿐 아니라 수비 가담 측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이스코의 수비 위치 선정 능력이 없다면 레알은 투톱 아래 이스코를 배치할 수 없다.

독일의 막스 마이어는 어려서부터 천재 플레이메이커였다.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 정확한 패스, 능수능란한 경기 운영 등을 고루 갖췄다. 2013/2014시즌 맹활약으로 성인들의 축구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러나 다음 시즌부터 마이어에게 2년차 징크스가 찾아왔다. 173cm에 불과한 신장과 왜소한 체구 때문에 압박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의 강한 견제에 쉽게 굴복했다. 동료 테크니션 레온 고레츠카와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것도 과제였다. 마이어는 측면으로 위치를 바꿔 봤지만 역시 신통치 않았다. 설상가상 2016/2017시즌부터 샬케가 공격형 미드필더 없는 스리백 전술을 쓰면서 마이어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올해 부임한 젊은 전술가 도메니코 테데스코 감독은 마이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실험을 했고, 이 카드는 대성공을 거뒀다. 고레츠카, 웨스턴 맥케니 등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들이 상대와 1차 힘 싸움을 하면 마이어가 뒤에서 공간을 점유하는 역할을 맡는다. 체구가 작은 마이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다.

마이어의 전술 지능은 뛰어난 가로채기 능력에서 드러난다. 몸싸움 없이 준수한 수비를 하는 법을 아는 선수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활동량이 많고 늘 영리한 위치를 선점한다. 여기에 안정적으로 패스를 공급하며 샬케 공격의 시발점 역할까지 한다. 샬케는 마이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한 뒤 5경기를 치르며 4승 1무를 거뒀다.

마이어와 비슷한 길을 가는 독일 대표팀 선배로는 토니 크로스가 있다. 크로스 역시 탁월한 테크니션으로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드리블 돌파, 과감한 중거리 슛 등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내는 플레이도 많이 시도했다. 그러나 크로스에겐 묘하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크로스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윙어 등 여러 포지션을 오가며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레알 이적 후 크로스는 더 본격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드필드 후방에서 세계 최고가 됐다. 상대 공을 직접 따오는 선수는 아니지만 90분 내내 성실한 움직임으로 공간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한다. 양발 가리지 않고 정확히 뻗어 나가는 장거리 패스, 상대 예측보다 빠른 타이밍에 공격 방향을 바꾸는 판단력이 빛난다. 특히 2014/2015시즌 원래 공격형으로 알려져 있던 크로스와 루카 모드리치만으로 중원을 꾸린 레알은 기대 이상의 중원 장악력을 보여주며 승승장구했다. 이듬 시즌부터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카세미루와 함께 뛰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해 더 안정적인 장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분야의 ‘레전드’는 역시 피를로다. 피를로는 청소년 대표 시절 공격형 미드필더 유망주였다. 그러나 피를로는 볼 키핑에 기복이 있고,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다. 피를로의 패스는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를 수 있었지만 공격수가 받기 좋은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피를로는 브레시아에서 처음 익힌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2001/2002시즌 AC밀란에서 본격적으로 맡기 시작했다. 이후 이 위치에서 세계 최고로 10년 넘게 군림했다.

테크닉이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해 자리 잡으려면 조건이 있다. 이 선수는 후방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옆에 보디가드가 필요하다. 마이어 앞에는 맥케니 등 더 전투적인 선수들이 있다. 크로스에겐 카세미루가 있다. 피를로는 AC밀란 시절 젠나로 가투소, 유벤투스 시절 아르투로 비달 등 전투적인 동료의 도움을 받았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팀 전술에 따라 오히려 가장 덜 전투적인 선수가 맡아도 되는 포지션이다. 피를로와 마이어 등 성공적으로 포지션을 바꾼 선수들이 알려주는 축구의 상식이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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