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에두는 은퇴가 다가온다는 생각에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보인 선수다. 그러나 며칠 뒤 만난 에두는 아직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22일 에두와 가족이 머물고 있는 서울의 한 호텔을 찾았다. 에두네 강아지를 잘 돌봐줘 단골이 된 호텔이다. 두 아들이 정신없이 뛰어노는 호텔 한 켠에서, 에두는 자꾸 은퇴를 번복했다. 그렇다고 해서 딱 잘라 더 뛰겠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은퇴인지 아닌지 어떻게든 확실한 답을 받아내려는 질문공세를 모두 받아넘겼다. 에두는 생각보다 몸이 너무 좋고, 더 뛰고 싶다고 했다. 한 번 뱉은 은퇴선언을 반복하기도 어렵고, 축구화를 일찍 벗는 건 너무 아쉽다는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같았다. 다만 선수 생활을 지속하더라도 그 곳이 한국은 아닐 거라는 강한 예감을 품고 있었다.

 

#은퇴 생각에 울었지만, 가족의 만류에 흔들린다

 

- K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골을 넣고 눈물을 흘렸다.

연초부터 은퇴 이야기를 해 왔다. 아직 오퍼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은퇴하게 될 거다. 그 골을 넣는 순간 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아내와 아이가 경기장에서 날 보는 마지막 순간이다. 내가 넣는 마지막 골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감정이 복받쳤다.

- 방금 은퇴에 대해 애매하게 말했다. 적당한 오퍼가 있으면 더 뛸 수가 있다는 건가.

올해가 시작될 때부터 은퇴할 마음은 갖고 있었다. 은퇴를 계속 준비해 왔고, 현재로선 전북과 계약이 끝난 상황이다. 내게 계약을 제시하는 구단이 없다. 이런 상황이면 연초부터 준비한 대로 은퇴를 할 거다. 그런데 가족이 편안히 생활할 만한 도시에서 연락이 오고 선수생활을 연장할 기회가 생긴다면 가족과 상의해서 갈 수도 있다. 백수가 된 날 헷갈리게 하는 건 아내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다. 축구를 더 해도 되는데 왜 은퇴하냐고 묻는다. 내가 뛰는 모습을 가족들이 조금 더 보고 싶어 한다. 자꾸 그러니까 은퇴하면 안 되는 건가 싶다.

올해 초엔 축구를 오래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몸 상태가 더 좋졌다는 게 고민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은퇴할 생각이다. 다른 구단에서도 은퇴할 거냐고 물어보더라. 아직 ‘우리 팀으로 와서 1년 더 하자’라고 한 팀은 없다.

- 최소한 K리그에서는 올해가 마지막인가?

그런 것 같다.

- K리그와 작별 인사를 세 번째 한다. 앞선 두 번과 어떻게 다른가?

처음엔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남기고 유럽의 큰 무대로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여기서 은퇴하려고 생각했는데 중국에서 좋은 기회를 줘서 갑자기 떠나게 됐다. 그땐 한국으로 못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운이 좋아서 한국에 세 번째 왔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 될 거다. 한국에서 좋은 기억이 정말 많았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축구 인생을 마치고 싶었는데, 일단 현재로선 내 바람을 이루게 됐다.

(에두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수원삼성에서 뛴 뒤 독일분데스리가로 돌아갔다. 샬케04, 베식타슈 등을 거쳐 2015년 전북현대에 입단했다. 반년 뒤 중국의 허베이화샤로 이적했다가 반년 동안 소속팀 없이 쉬며 ‘가계약 논란’를 겪은 뒤 지난해 여름 전북에 재입단했다.)

#이동국보다 내가 더 뛰어난 선수냐고? 어찌 그런 말을

 

- 올해 초 은퇴를 생각했던 건 그만큼 체력과 경기 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마음이 흔들리는 건 거꾸로 기대 이상의 경기력 때문인 것 같다. 어떻게 살아났나?

중국을 떠난 뒤 10개월 동안 한 경기도 안 뛰었다. 전북으로 돌아왔을 때 경기력을 되찾는 게 쉽지 않았다. 몸도 힘들었지만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다. 내 컨디션이 안 좋은 걸 알면서 벤치에 앉아있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했다. 올해는 은퇴를 결심한 뒤 마지막 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훈련했다. 여태까지 프로 생활 하면서 올해처럼 훈련에 시간을 쏟아 부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많이 좋아졌고, 주위에서도 은퇴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 전북엔 나이 많은 선수를 관리하는 노하우가 있나? 전북엔 당신보다 두 살 더 많은 이동국도 있다.

일단 파비오 피지컬 코치가 훌륭하다. 최강희 감독도 선수들의 나이를 잘 인지하고 있다. 나이 든 선수는 따로 모아서 별도 훈련을 시킬 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내 나이를 감안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늘 의식하되, 구단 훈련은 다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전지훈련때 힘들어서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이동국과 본인의 몸 상태를 비교한다면?

내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스타일이 다르다. 그 나이에 그렇게 잘 관리하는 건 어렵다. 골 결정력, 위치 선정이 원체 좋은 선수다. 내가 더 낫다는 말 같은 건 어렵다. 진짜 좋은 선수라고만 하고 싶다.

- 최강희 감독이 에두, 이동국, 김신욱의 출전시간 배분에 대한 고충을 여러 번 밝혔다. 본인이 느끼기엔 어땠나?

감독이 공격수 셋을 불러놓고 “서로 양보해야 한다”고 말해줬을 정도였다. AFC 챔피언스리그나 이런 대회가 더 있었으면 로테이션이 더 수월했을 텐데 K리그만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찌됐건 결과는 좋았다. 그런데 어느 선수나 경기를 다 뛰고 싶어 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건 당연한 거다. 그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거지.

- 올해 최고, 최악의 순간은?

최고는 여름에 4경기 연속 골 넣었을 때. 최악은 굉장히 여러 번이다. 경기 당일 아침 미팅룸에 갔는데 선발 멤버에 내 이름이 없을 때다. 아, 그렇다고 감독에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선수라면 누구나 벤치에 앉는 걸 싫어한다. 불만을 드러낸 선수는 없었다.

(에두는 6월 하반기에 전남드래곤즈전을 시작으로 4경기에 출장해 매 경기 골을 넣었다. 이때 전북은 3승 1무를 기록했다. 에두의 시즌 기록은 13골 2도움이다.)

 

#배기종과 잘 맞았고, 임중용에게 침 뱉은 것 후회한다

 

-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한국이란 나라, 한국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나?

한국 문화에 대해 깊이 이해한다기보다, 익숙해지고 적응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알던 문화에선 남자들끼리 인사를 하면 함께 온 여자들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한국에선 여자들이 쭈뼛거리거나 뒤로 피하더라. 처음엔 이해를 못 했다. 날 보고 왜 저러지 싶었다. 나중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 한국 축구는 어떤 축구인가.

투쟁적이다. 투쟁적인 자세, 힘, 체력이 준비 돼 있어야 한다. 되게 다이나믹하고 파워가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강팀과 약팀이 경기를 한다고 해도 항상 강팀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체력전이나 힘싸움에 대한 능력은 약팀이라고 해서 딱히 떨어지지 않으니까. 기술이 월등한 팀이 그날은 질 수도 있다. 그런 변수가 큰 것 같다.

- 한국에서 만난 선수 통틀어 가장 까다로웠던 수비수는?

조성환. 제일 까다롭고 성가셨다. 가만히 있어도 툭툭 치면서 귀찮게 한다.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다. 귀 옆에다 소리를 막 질러대지 않나. 인간적으로는 좋아한다. 실력도 인정하고.

(조성환은 2007, 2008년 포항스틸러스 소속으로 에두를 상대했다. 에두가 전북에 입단한 뒤로는 팀 동료로서 자체 연습 경기 때마다 대결을 벌였다.)

-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동료는?

배기종이다. 서로 이해를 잘 했던 것 같다. 내가 사이드로 나가면 배기종이 안으로 들어오고, 거꾸로 내가 중앙으로 파고들면 배기종이 사이드에서 지원해 줬다. 그런 호흡이 잘 맞았다.

(현재 경남FC 소속인 배기종은 에두가 수원에서 뛰던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동료로 활약했다.)

- 선수 생활 중 후회되는 행동이 있는지?

인천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침 뱉은 것. 지금 생각하면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다. 순간 기분이 욱해서 나쁜 행동을 했다. 후회한다.

(에두는 2007년 인천 수비수 임중용과 서로 침을 뱉었다. 이 행동으로 두 경기 출장 정지와 200만 원 벌금이 부과됐다.)

- 한국은 에두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제2의 고향이다. 여기서 5년 정도 있었는데 가족들도 너무 좋아한다. 존경하는 나라다. 은퇴한 뒤엔 축구계를 떠날 생각이 있기 때문에 업무상 돌아올 계획은 없다. 친구들, 내가 있던 팀을 만나러 돌아오게 될 것 같다.

(막힘없이 말하던 에두는 이 질문을 받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 잠시 머뭇거렸다.)

에두가 직접 적은 '나의 동료 베스트 일레븐'과 포메이션. 22와 16은 각각 김진수와 조성환의 현 전북 등번호다.

#나와 함께 뛴 최고의 동료? 노이어, 라울, 그리고 조성환

에두는 함께 뛴 동료들로 베스트일레븐을 짜 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진지한 축구 평론가로 변신해 고심을 거듭했다. 에두는 12팀에서 뛰었다. 그중엔 독일분데스리가의 마인츠05와 샬케04, 터키 명문 베식타슈도 있다. 유럽의 유명한 선수들이 대부분의 위치를 차지하는 가운데 한국 선수 세 명이 수비진을 지켰다.

마누엘 노이어(골키퍼, 현 바이에른뮌헨, 2009~2011 샬케 동료). 왜 노이어를 골랐는지 설명을 하라고?

차두리(라이트백, 현 한국 대표팀 코치, 2006/2007 마인츠 동료)는 참 괜찮은데 수비는 도움이 안 되는 선수였다. 하하. 그땐 마인츠 자체가 안 좋았던 시절이다.

마르셀루 보르돈(센터백, 2009/2010 샬케 동료)은 강력한 힘, 절묘한 수비 타이밍, 정교한 킥을 가진 선수였다.

조성환(센터백, 2015 및 2016~2017 전북 동료)은 아까 말했다시피 공격수를 성가시게 하는 좋은 수비수다.

김진수(레프트백, 2017년 전북 동료)는 크로스가 좋고 달리기가 빠르다. 아직 어리다. 좋은 자질을 가졌고,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흐메트 아우렐리우(수비형 미드필더, 2011/2012 베식타슈 동료)는 원래 마르코 아우렐리우라고 한다. 터키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브라질 태생이다. 미드필더로서 기술이 엄청나게 좋은 선수였다.

호세 마리아 구티(중앙 미드필더, 2011/2012 베식타슈 동료)는 은퇴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함께 있던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그러나 경기 보는 지능이 엄청났다는 걸 느꼈다.

마누엘 페르난데스(중앙 미드필더, 2011/2012 베식타슈 동료). 이 친구도 기술이 누구 못지 않게 좋은 미드필더였다.

라울(공격수, 2010/2011 샬케 동료). 왜 라울을 넣었냐고? 라울이라는 이름을 봐라. 굳이 설명을 한다면 기술과 지적인 면모를 겸비한 선수였다. 누구보다 뛰어난 건 생각의 속도였다. 판단이 정말 빠르다.

헤페르손 파르판(윙어, 2010/2011 샬케 동료)은 아주 빠르고 기술이 좋았다. 파르판 역시 판단 속도가 빠른 편이다.

히카르두 콰레스마(윙어, 2011/2012 베식타슈 동료), 드리블.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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