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축구의 승패가 선수단 능력치의 총합으로 이미 결정된다면, 리그 순위가 쓴 돈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면 스포츠는 존재할 가치를 잃어버린다. 늘 기대를 벗어나는 요소가 있기에 축구가 더 재미있다. 유럽 축구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세 팀을 풋볼리스트가 소개한다. 발렌시아, 라치오, 왓퍼드는 왜 잘 나가고 어떻게 잘 나가는가? 여기 간단한 설명이 있다.

프로 축구팀의 성적은 선수단 총연봉과 대체로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쉽게 말해서 돈 많이 쓰면 세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 파리생제르맹(PSG)이, 잉글랜드에서 맨체스터시티가, 스페인에서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보면 맞는 말 같다.

돈의 한계를 뛰어넘는 팀은 늘 흥미롭다. 라치오는 돈을 퍼붓지 않는 팀 중에서 최근 가장 돋보이는 팀이다. 라치오는 이탈리아세리에A 8라운드 현재 3위다. 위아래로 나폴리, 인테르밀란, 유벤투스, AS로마 등과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 PSG만큼은 아니지만 이탈리아에서 가장 돈을 많이 쓰는 팀들 사이에서 라치오는 외로운 싸움 중이다.

 

#유벤투스 격파, 유로파리그 전승 상승세

유럽 축구 초반 순위표를 볼 때 10라운드 정도까지는 현재 순위가 진짜 전력 순서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초반 대진운이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돌풍의 팀처럼 보였는데, 11~18라운드 동안 정상권 팀들을 연달아 만나 순위가 뚝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 잣대를 들이댄다면 라치오의 성적은 오히려 평가가 더 올라가야 한다. 라치오는 AC밀란, 나폴리, 유벤투스를 이미 상대했다. 전승 팀인 나폴리에 한 번 패배했을 뿐 밀란과 유벤투스는 꺾었다. 개막 직전 열린 수페르코파이탈리아나에서 유벤투스를 누르고 우승한 데 이어 세리에A 8라운드에서 또 유벤투스를 잡아내며 정상권 전력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라치오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에 참가 중인 48팀을 통틀어 가장 순항 중이다. 라치오는 K조에서 3전 전승으로 승점 9점을 확보했다. 같은 조 3~4위팀은 승점 1점에 그쳤다. 조 3위와 승점차를 8점으로 벌려놓은 팀은 라치오가 유일하다. 라치오는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거둬도 조별리그 통과를 자력으로 확정할 수 있다.

유로파리그 3승 중 두 경기가 원정 경기였다. 특히 조 1위를 놓고 싸우는 니스 원정 경기에서 3-1로 이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20일(한국시간) 니스 원정에서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라치오가 3골을 몰아치며 승부를 뒤집었다. 가장 어려운 경기에서 1.5군을 내보내고도 라치오는 승리했다.

 

#선수 기량 기막히게 살리는 ‘동생 인차기’ 지략

선수 시절엔 형이 더 뛰어났지만, 감독이 된 뒤엔 동생이 앞서가고 있다. 인차기 형제 중 선수로 대성한 건 형 필리포였다. 동생 시모네도 준수한 공격수였지만 형의 실력은 따라잡지 못했다.

시모네 인차기의 통찰력은 선수 시절 숨겨져 있다가 감독이 된 뒤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선수 시절 친정인 라치오에서 유소년 감독을 맡다가, 지난 2016년 감독 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은 뒤 빠르게 역량을 증명했다.

이번 시즌 인차기 감독의 리빌딩 능력은 라치오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난 시즌 주전이었던 케이타 발데, 루카스 비글리아, 베슬러이 후트가 이적했지만 전력은 오히려 강해졌다. 비글리아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는 루카스 레이바, 오른쪽 윙백 로테이션 멤버 아담 마루시치 외엔 주전급 멤버가 영입되지도 않았다. 이적 시장 막판 부랴부랴 임대 영입한 나니는 이제야 선발 출장을 시작했다. 라치오가 이번 시즌 선수 영입에 들인 돈을 모두 더해도 케이타 발데 한 명으로 번 액수보다 적다.

인차기 감독은 갖고 있는 카드가 뭔지 다른 감독들보다 철저하게 분석했다. 실패를 겪고 라치오로 흘러들어온 선수도, 이미 평가가 꺾인 유망주도 인차기 감독에 의해 잠재력을 개방했다. 리버풀의 실패한 윙어였던 루이스 알베로토는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특급 패서로 맹활약 중이다. 거대한 체격과 테크닉을 겸비한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는 지난 시즌보다 더 물이 올랐다. 인차기 감독은 두 선수를 절묘하게 활용한다. 최전방에 힘이 필요할 땐 밀린코비치사비치를 전진시키고 알베르토를 뒤에 배치한다. 전방에서 기민하게 돌아다닐 선수가 필요할 땐 반대로 알베르토가 앞에, 밀린코비치사비치가 뒤에 배치된다.

이들은 라치오를 지켜 온 주전 선수들과 화학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라치오 11년차 스테판 라두, 7년차 세나드 룰리치, 4년차인 마르코 파롤로, 스테판 더프라이, 두산 바스타는 모두 성실하고 믿음직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다. 이들이 채치수, 권준호처럼 라치오의 토대를 닦아 놨다. 여기에 더 번뜩이는 인재들이 합류해 올해 라치오를 만들었다.

인차기 감독과 가장 잘 맞는 선수가 치로 임모빌레다. 세리에A 득점왕 출신이지만 독일 무대에서 처참한 실패를 경험한 임모빌레는 지난 시즌 라치오에 합류해 23골을 몰아쳤다. 이번 시즌엔 8라운드까지 11골을 넣어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임모빌레는 상대 수비진의 빈 공간을 찾아다닐 때 장점이 발휘되는 선수다. 인차기 감독은 임모빌레가 비좁은 공간에서 낑낑대지 않아도 되도록 전술적으로 배려를 해 줬고, 배려는 성과로 돌아오고 있다.

라치오는 극적인 결승골에 의한 승리나 역전승도 많다. 인차기 감독의 교체 카드 운용이 절묘하다. 임모빌레 외에 믿을 만한 공격수가 부족하고 가장 드리블이 뛰어난 펠리페 안데르손은 부상으로 이탈한 상태지만, 인차기 감독은 경기 양상을 잘 관찰하고 교체로 이득을 본다. 공격력이 뛰어난 윙백 조르당 루카쿠, 마루시치를 투입해 측면 공격을 강화할 때도 있고, 거꾸로 미드필드를 보강하는 조치가 절묘하게 결승골을 만들기도 한다.

로테이션 시스템도 성공적으로 가동하는 중이다. 세리에A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한 임모빌레와 세나드 룰리치는 유로파리그에서 각각 0경기, 1경기 선발 출장에 그쳤다. 반대로 유로파리그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한 필리페 카이세도와 다비데 디젠나로는 세리에A에서 한 번도 선발로 뛰지 않았고, 알레산드로 무르지아와 루이스 필리페는 세리에A 1회 선발만 기록했다. 세리에A와 유로파리그를 병행하며 현재까지 선발 출장한 라치오 선수는 21명이다. 얇아 보이는 선수층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낸다.

 

#제한적인 득점 루트, 얇은 선수층은 문제

득점왕을 가졌다는 건 다른 포지션에서 그만큼 득점력이 떨어진다는 뜻일수도 있기에 늘 양날의 검이다. 라치오는 확실한 공격 루트가 있는 대신 임모빌레 외에 믿을만한 공격수가 부족하다. 이번 시즌 영입한 카이세도, 부상으로 이탈한 필립 조르제비치 중 한 명이 임모빌레를 위협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해 준다면 공격진 운용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어떻게든 로테이션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지만 세리에A 정상권에서 경쟁할 만한 선수의 숫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아직 젊은 펠리페, 무르지아, 루카쿠, 파트리치 등이 더 성장해 주전의 자리를 위협해줘야 한다. 선수단이 성장하기 전에 핵심 포지션에서 장기 부상자가 나온다면 다른 팀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말말말

“우리보다 훨씬 강한 팀을 만났을 때도, 중요한 건 다양한 요소를 경기장 위에서 펼쳐 보이는 것이다.” (시모네 인차기)

“우린 확실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어디서든 우리 스타일을 고수하며,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고, 어디서든 우리 팀의 가장 위험한 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 (루카스 레이바)

“유벤투스와 나폴리가 있기 때문에 2위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린 그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다.” (루이스 알베르토)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