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오반석은 스포트라이트 바로 옆에 있는 선수였다. K리그 정상권 팀이 된 제주유나이티드의 주장이자 주전 수비수지만 눈에 띄지 못했다. 연령별 대표 선발 경험도, K리그 최고 수비수로 선정된 적도 없다. 

올해 한층 강해진 제주와 함께 오반석도 성장했다. 오반석을 지난 4월과 10월 두 차례 만나 인터뷰했다. 오반석은 어린 시절부터 “최고가 아니라 최고를 따라가는 위치”에서 성장해 왔다고 했다. 주인공이 된 적은 없지만 괜찮았다. 넘어야 할 벽이 있기에 더 노력할 수 있었다.

오반석의 과거, 머릿속에 담긴 생각, 선수로서 갖고 있는 특징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을 한데 모았다. 그러고 보면 외모도 잘 생긴 편이지만 미남 선수 순위를 매길 때조차 오반석은 잘 거론되지 않는 편이다.

 

최고였던 적이 없었고, 그래서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고향은 경기도 과천이다. 1988년생이고 김신욱 선수와 동기다. 중학교 때 호주 유학을 갔는데 (기)성용이, (김)주영이처럼 좋은 선수가 많았다. 그래서 난 소속팀에서 최고였던 적이 없다. 최근 (조성환) 감독님이 함께 밥 먹던 선수들에게 '넌 친구들 중에 축구 제일 잘 했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다들 예스라고 하던데 나는 노라고 했다. 프로에 온 뒤로도 신인 때는 (홍)정호를 넘어야 했고, 그 뒤로는 계속 호주에서 온 중앙 수비수들과 경쟁해야 했다. 내겐 좋은 환경이었다. 나를 더 치열하게 만들고, 안주할 수 없게 만드니까. 맨 위에 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거다.

호주 얘기를 잠깐 하자면, 호주에서 3년 유학을 했다. 그때 배운 영어가 호주 수비수들과 의사소통할 때 많이 도움 됐다. 학창 시절에 집안 돈은 까먹었지만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게 어딘가. 특히 처음 기회를 잡기 시작할 때 파트너가 마다스치였는데 말이 잘 통해서 좋았다. 요즘은 알렉스와 서로 의지하는 사이다. 우리 팀 애들이 웃긴 게 알렉스에게 가서 ‘영어로 XX가 뭐야’라고 자주 물어본다. 그런데 알렉스는 한국어로 대충 대답하지, 영어로 말해주는 법이 없다. 장난 잘 치는 성격이다.

지금도 1988년생 친구들을 운동장에서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우리 팀에 있다가 나간 박기동(수원삼성) 같은 선수는 친구 사이라서 감정을 절제하고 막아야 한다. 그래도 내가 아는 사람들을 계속 그라운드에서 마주치면 경쟁력도 살고 좋다.“

 

생존을 위해 연마한 왼발

“나도 주발(주로 쓰는 발을 뜻하는 은어)은 오른발이다. 그런데 선수로서 강점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왼쪽을 담당해 왔다. 팬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오른발잡이 두 명이 센터백을 맡으면 왼쪽에 있는 선수가 더 불편하다. 오른쪽만 보던 선수가 갑자기 왼쪽에 서면 수비 스텝이 달라져서 상대 공격수를 놓치기도 한다. 이제까지 우리 팀에서 왼발을 자연스럽게 쓰는 수비수는 몇 명 못 봤다. 마다스치 정도?

난 오른발잡이가 왼쪽도 잘 소화한다는 걸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패스를 많이 돌리는 제주에 적응하기 위해 발밑 기술을 많이 연마했다. 훈련할 때 왼발을 많이 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 왔다. 요즘엔 스리백 중 왼쪽을 붙박이로 맡고 있다.“

 

수비수로 살다보니, 이젠 게임도 수비 캐릭터만 한다

“마른 체격이다. 운동신경이 좋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태생적으로 수비수인 인간이다. 재미있는 건 뭘 해도 수비적으로 한다는 거다. 클럽 하우스에서 탁구를 종종 치는데 나는 받는 걸 잘 하고 스매시를 못 한다. 위닝을 해도 공격보다 수비를 잘 한다. 성격 자체가 수비수에 맞나 보다. 

요즘은 어린 애들과 소통하겠답시고 ‘롤’ 같은 게임을 한다. 그래야 일년 내내 몇 마디 못 나누는 애들과 말이 트이니까. 롤 할 때도 내 포지션은 탱커다. 탱커가 뭐냐면, 우리 동료들이 상대팀을 때릴 여유를 벌어주기 위해 내가 대신 맞아주는 역할이다. 거기서도 수비수 버릇이 나온다.

우리 팀 롤 1위는 이찬동이다. 제주도에 살다보면 취미가 하나씩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얼굴에서 느껴지다시피 피로에 약한 체질이라 가만히 쉬어야 한다. 그래서 취미가 없다. 한편으로 축구에 미친 애들도 있다. 이창민, 류승우 같은 애들이 그렇다. 취미와 축구 사이에서 자신만의 생활법을 잘 찾을 필요가 있다. 애들이 롤에 너무 빠질까봐 조금 걱정이다.“

 

수비수는 태클 하나, 크로스 하나에 희열을 느낀다

“무실점이 좋고, 유효슈팅을 적게 내주는 경기가 좋다. 공격수는 골이라는 수치가 있지만 수비수에겐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매 장면이 중요하다. 전북같은 강팀을 만났을 때 유효슈팅을 많이 안 내주면 좋아라 하면서 숙소에 온다. 로페즈나 (최)철순이 형 같은 선수가 계속 내 쪽으로 달려오면, 물론 힘들긴 하지만 막아냈을 때 기쁨이 있다.

아까 왼발 이야기를 했는데 패스는 왼발로 할 수 있지만 크로스는 안 된다. 난 (김)원일이 형처럼 전진해서 크로스를 올리는 센터백은 아니다. 대신 오른발 아웃프런트로 가끔 크로스를 올린다. 오른발로 올린 크로스, 마그노가 뛰어 들어갈 때 오른발로 감아서 준 스루 패스 같은 플레이는 머릿속에 꼼꼼하게 저장돼 있다. 수비수들에게 그런 장면은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다 저장된다. 사실 그런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

주장은 51% 선수 편을 들어야 한다

“3년째 주장이다.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이라 어색했다. 해가 지나면서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전히 말수를 늘려나가는 중이다. 우리 팀은 나이별 주장단이 3명 있다. 그들의 의견을 모아서 내가 감독님께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우리 팀에서 가장 오래된 선수기도 하고. 난 코칭 스태프 입장을 49, 선수 입장을 51 정도 반영하면서 이야기한다.

예를 들자면 선수 입장에선 운동이 적을수록 편하지 않겠나. 감독님 선수 시절 명성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운동량이지만 종종 버거울 때가 있다. 진짜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피로가 심해질 수 있으니 운동량을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리기도 한다. 감독님은 꽉 막힌 분이 아니기 때문에 선수 의견을 존중해주시는 편이다.“

 

제주는 7년 전보다 강한 팀이 됐다

“제주 선수단 분위기가 많이 유해졌다. 박경훈 감독님 시절에도 자율적인 분위기였지만 형, 동생 사이에 격이 있었다. 지금은 조금 더 허물없는 관계가 됐다. 형식적인 자리가 없어졌고, 후배들이 서슴없이 선배들과 어울려 외식을 하게 됐다. 내가 (김)은중이 형, (마)철준이 형을 어려워했던 것에 비하면 나이 차이가 비슷한 후배들이 날 더 편하게 대한다. 조성환 감독님이 많이 노력하셨다.

좋은 분위기가 성적으로 나타나지 않나. 감독님 3년차인데 성적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창민이, (진)성욱이, (이)창근이 처럼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경기를 잘 뛰는 선수들은 컨디션 관리도 알아서 잘 한다.“

 

전북과 해외에서 보인 관심, 그러나 제주에 남았다

“둘 다 작년이었다. 전북은 겨울 이적시장 끝나기 일주일 전에, 카타르의 한 구단에서는 여름에 이적 제안이 왔다. 사실 제주는 선수가 잘 떠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물론 산토스, 로페즈 같은 외국인 친구들은 ‘혜자’ 영입으로 잘 활용했지만 지금은 다른 팀에서 상대편으로 뛰고 있다. 국내 선수들 역시 제안이 오면 잘 떠나는 팀이었다. 명문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게 제안이 오니까 구단이 남길 원하더라. 구체적인 상황을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나도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남는 데 동의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감독님과의 의리였고. 작년에 남은 뒤 3위를 했다. 올해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처음부터 목표였다.”

 

스리백이 더 힘들다

“제주는 아시다시피 스리백을 쓴다. 중앙 수비가 세 명이니까 포백보다 덜 힘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더 스프린트 횟수가 많고, 체력 소모가 심하다. 만족한다. 매번 하던 포백만 하는 것보다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스리백은 공도 잘 차야 되고, 세 명이 잘 어울려야 되고, 조직력도 맞아야 한다. 중앙 수비지만 빌드업도 잘 해야 한다. 틀에 박히지 않고 공격적인 축구를 하기 때문에 팬들이 보기에도 더 재미있으실 거라고 기대한다.

요즘 잔디 상태가 약간 아쉽긴 하지만, 가능하면 공을 매끄럽게 돌리고 점유율에서 우위를 갖고 싶다. 그래야 관중들도 축구를 즐길 수 있다. 관중들이 더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어쩌면 제주가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즐길 수 있는 축구다. 우승팀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모든 팀은 컬러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제주만의 컬러가 있고, 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왔을 때에 비하면 관중이 많이 늘어나셨고 축구를 더 즐겨주시는 게 느껴진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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