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승리하지 못했을 때도 영웅이 나타난다. 김민재는 한국 대표팀이 두 경기 연속 0-0 무승부로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을 때 대중 앞에 나타났다. 감독이 프로에 데뷔한지 반년에 불과한 선수를 중요한 경기에서 기용한다는 건 모험이었지만 김민재는 실력으로 그 자격을 증명해 냈다.

국가대표 데뷔를 통해 큰 주목을 받은 김민재는 소속팀 전북현대로 돌아가 K리그를 소화하고 있다. 태극마크에 대한 인터뷰는 ‘풋볼리스트’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김민재를 다시 만난 ‘풋볼리스트’는 대표팀 바깥, 축구 바깥의 김민재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축구 이야기는 마지막에 살짝 붙어 있다.

 

#삼촌, 어린 김민재를 축구로 이끌어 준 존재

김민재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한 명이 삼촌이다. 나이차가 14세에 불과한 삼촌은 선수 출신의 축구 코치였다. 어린 김민재는 고향 통영에서 삼촌을 따라다니며 조기 축구회, ‘형아’들의 축구 강습 등 공이 있는 곳을 자연스럽게 찾아다녔다. 자주 만날 때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삼촌과 동행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삼촌이 던져준 공으로 볼 리프팅 등 축구 기술을 연습했다. 그런 경험이 5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

중학교 시절엔 김민재가 다니던 학교로 삼촌이 부임하면서 은사와 제자 사이가 됐다. 아직 구타가 남아있던 시절이었고, 조카만 특별 대우하기 힘들었던 삼촌은 김민재를 오히려 더 엄하게 대했다. 김민재는 “힘들긴 했지만 그때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조카라고 안 때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만큼 자극을 많이 주셨어요. 넌 아직 멀었다는 말씀도 많이 해 주셨는데 실제로 그땐 제가 축구를 못했거든요.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삼촌과 사제 관계를 맺고 나자 전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기 힘들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삼촌과 거리감이 생겼다. 그 거리가 확 좁아진 계기가 프로 데뷔였다. “이젠 저도 프로 선수니까 삼촌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그래서 데뷔 이후 많이 친근해졌어요. 통화도 자주 하고요. 어제도 했어요. 예전엔 구박만 하셨는데 이젠 칭찬을 많이 해 주세요. 어제도 삼촌에게 말했어요. ‘삼촌에게 칭찬 들으니까 어색하다. 욕을 좀 들어야 익숙한데’라고요.”

삼촌은 김민재를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 중 하나다. 국가대표 데뷔전이었던 이란전(8월 31일)을 보기 위해 통영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 자랑스런 조카를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까지 대동했다. 조카의 ‘선수 입장’을 보며 삼촌이 유독 자랑스러워했다고, 김민재는 나중에 전해 들었다.

#형, 가장 친한 축구 선수

김민재는 “형보다 더 친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잘라 말한다. 둘 사이에는 어떤 비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살 터울인 형은 명지대 주전 골키퍼 김경민이다. 나이는 김민재가 어리지만 축구를 시작한 것도, 프로에 올라온 것도 김민재가 더 빨랐다.

어린 시절 성격은 반대였다. 김민재는 말썽을 많이 피우고, 친구들과 주먹다짐도 많이 하는 초등학생이었다. 태권도는 노란띠에서 멈췄고, 유도는 선수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조금 배운 것이 전부였다. 김민재의 무기이자 문제점은 일단 덤비고 보는 성미였다.

반면 형의 성격은, 김민재의 말에 따르면 “괴롭힘을 당해도 갚아줄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순한” 편이었다. “형이 맞고 올 때가 있어요. 그럼 제가 가서 뚜까 팼어요. 한 학년 위 교실에 올라가서 형을 괴롭힌 사람을 찾으면 일단 때리고 나서 말을 걸었어요. 형 때문에 더 많이 싸웠죠.”

김민재는 받아쓰기도 20점을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소년이었다. 대신 밖에서 뛰어노는 게 좋았다. 축구 선수가 될 기회가 보이자 냉큼 잡은 것도 그래서였다. 반면 형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차분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선수 생활을 시작하자 형도 몇 년 후 자연스럽게 축구화를 신기 시작했다. 김민재가 형의 진로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김민재가 프로 선수로 입단하게 됐을 때 누구보다 기뻐해 준 존재도 형이었다. 이젠 김민재가 형을 응원한다. “프로에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프로에서 뛰는 형을 보고 싶어요.”

#별명, 당황스런 우량아 수식어

김민재가 프로에 와서 받은 별명은 크게 두 개다. 첫 번째는 ‘괴물’이다. 두 번째는 ‘우량아’, 또는 ‘자이언트 베이비’다. 주로 두 번째 별명이 더 많이 쓰인다. 얼굴은 동안인데 체격은 거대하다는 점에 착안한 팬들이 붙여줬다. 주로 김민재를 귀여워할 때 쓰인다.

김민재는 “별명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건 없어요. 다 좋은 뜻이니까”라면서도 우량아라는 말은 좀 당황스럽다고 했다. “제가 동안이라는 거잖아요. 사실 저조차 제가 어리게 생겼다는 건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인데, 한술 더 떠서 아기 같다고 하시면 당황스러워요. 처음 들었을 땐 적응하기 힘들었죠. 실제 만나서 그렇게 부르시는 분은 없어요. 그 말을 육성으로 듣게 된다면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별명과 달리 김민재는 축구 인생의 유아기를 이미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최 감독의 지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최 감독은 유럽에 비해 한국 선수들의 프로 데뷔가 늦은 편이며, 프로가 된 뒤에도 스스로 유망주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민재 역시 최 감독의 말대로 온전한 성인 선수로서 뛰고 싶다.

김민재는 지난 2월 K리그 데뷔를 앞두고 있을 때 ‘목표는 내년에 열리는 아시안게임 대표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땐 프로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던 때였다. 반년이 지난 지금 목표는 상향조정됐다. 김민재는 내년 여름 월드컵 본선 참가 가능성이 높은 수비수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가 월드컵인데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어요. 월드컵이 열릴 때까지 이제 놓치고 싶지 않아요. 성인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으니, 월드컵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아시안게임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두 대회에 다 나가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그래서 본선 일정도 체크해 봤어요. 둘 다 여름에 열리지만 한 달 간격이 있더라고요. 아직은 얼떨떨하지만 계속 좋은 플레이 하면서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모두 참가하고 싶어요.”

사진= 김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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