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유능한 집단은 잡음이 없는 조직이 아니라 어떤 다툼이라도 잘 해결하는 조직이다.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는 자신들이 바라지 않는 주제가 나온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는데 그치면서 화를 불렀다.

 

지난 6일부터 시작된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 재부임 논란은 꺼질듯하다 다시 타올랐다. 14일 히딩크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럽 주재 한국 특파원과 만나 “6월에 비공식적으로 제의를 했다”고 밝히면서 접촉이 없다고 단언했던 협회와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히딩크는 ‘폭스TV’와 ‘2018 러시아 월드컵’ 해설위원 계약을 한 것을 언급하며 감독직에 관해서는 한 발 빼는 모습이었지만, 그 부분이 부각되지 않을 정도로 논란이 커졌다.

 

논란은 협회가 키웠다. 협회는 기본적인 부분도 챙기지 않았다. 지난 6일, 김호곤 협회 기술위원장 겸 부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불쾌함을 토로하기 전에 좀 더 숙고했어야 했다. 15일, 공식 해명한 것처럼 “당시 메시지 내용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감독 제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었기에 이 문자 메시지를 그 후로는 잊고 있었다”라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는 정확히 밝혔어야 했다.

 

김 기술위원장은 당시 "우리는 본선에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게 불쾌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라며 화를 냈다. 내용 자체가 적절하지 않고 공식적인 제안이 아니더라도 연락을 받았는지 여부는 확실히 확인했어야 했다. 김 기술위원장이 하는 말은 협회 공식입장이다. 공식입장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 확인도 하지 않았다. 당시에 제대로 팩트 체크를 했더라면 진실 공방도 없었을 것이다.

 

협회는 이후 공식 입장을 내 신태용 감독을 신임한다고 밝히는 것 이외에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 논란은 국민적인 관심사가 될 정도로 커졌는데 자신들의 입장과 당위성만을 일방적으로 밝히는데 그쳤다. 히딩크와 직접 연락을 해 대화로 입장 조율을 하거나 좋은 합의점을 찾으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분단돼 있는 남과 북 사이에도 ‘핫라인’이 존재한다. 싸우는 동안에도 대화와 조율은 계속해야 하는 게 외교나 대외업무의 기본이다. 협회는 이 기본을 잊었다.

 

현실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협회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0경기를 치르며 명예를 거의 잃었다. 적절한 시점에 감독을 교체하지 못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유명한 선수출신 코치를 선임하며 비판 받기도 했다. 협회가 지닌 원칙이나 철학이 더 이상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신뢰 받기 어려울 때는 원칙을 밝히는 게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협회는 외교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 입장을 발표하는데 그쳤다.

 

히딩크 바람이 부는 이유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히딩크는 협회와 대척점에 서 있는 상징이다. 협회가 하는 일이 염증을 느낀 이들은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협회는 이런 불신이 생긴 이유를 외부에서만 찾았다. 결과적으로 ‘히딩크 논란’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놓쳤다. 김 기술위원장이 “어려운 여건하에서 본인의 축구 인생을 걸고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신태용 감독에 대한 신뢰는 변함없다”고 밝히는 것 정도가 협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히딩크는 현실적으로 돕겠다며 감독보다는 다른 역할을 바란다는 사실을 은근히 밝혔다. 하지만, 감독을 교체하지 않는 게 신 감독을 지키는 방법은 아니다. 신 감독이 어려운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돕는 게 더 중요하다. 화를 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협회가 말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신 감독과 대표팀은 더 어려워졌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10월 유럽 원정 친선 2연전에서 실험을 하기도 어렵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더 큰 비난이 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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