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풋볼리스트] 선수는 성장하고 진화한다. 한결 같은 패턴으로 경기하는 이도 있지만, 주어진 상황이나 포지션에 따라 경기 방식을 바꾸는 이도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프란체스코 토티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풋볼리스트'는 진화하고 변화한 선수 이야기를 모았다.
아직 유망주이던 시절, 웨인 루니는 당대 어느 공격수보다도 다양한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능의 크기는 리오넬 메시가 더 컸겠지만 재능의 종류로 따지면 루니가 한 수 위였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루니의 온갖 재능을 돌아가며 활용했고, 루니는 그때마다 만족스럽게 임무를 수행했지만 때론 어정쩡한 선수로 정체되기도 했다.
자기 관리에 실패한 지금, 32세 루니는 예상보다 빠르게 전성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루니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보낸 열세 시즌은 영국 축구사에 남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루니가 맨유와 잉글랜드 대표팀의 역대 최다골을 달성하기까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플레이 스타일과 전술적 관점에서 정리했다.
1기: 순수한 재능의 결정체, 천방지축 공격수(2002~2006)
2002년 10월, 아스널을 상대로 넣은 루니의 데뷔골은 충격적이었다. 교체 투입된 루니는 절묘한 퍼스트 터치로 아스널 수비수 솔 캠벨, 로렌과의 거리를 벌린 다음, 골대 구석을 향해 휘어지는 절묘한 중거리 슛을 날렸다. 아스널의 30경기 무패 행진을 깨는 동시에 루니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골이었다. 당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최연소 득점이기도 했다.
루니의 데뷔 시즌은 교체 투입 위주로 흘러가다가, 막판 8경기 연속 선발 출장으로 마무리됐다. 루니는 이 8경기에서 3골을 터뜨렸다. 주전 공격수 케빈 캠벨의 파트너였다. 캠벨 역시 이 기간에 3골을 터뜨리며 훌륭한 득점력을 보였다. 자신과 파트너의 능력을 모두 살리는 루니의 재능이 이때부터 발휘되기 시작했다. 2003/2004시즌 루니는 한층 늘어난 출장 시간을 살려 9골을 득점했다. 이때 파트너는 캐나다 출신 공격수 토마시 라친스키였다. 루니는 종종 측면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배치되며 다재다능한 면모를 알렸다.
2004년 여름 맨유로 이적하면서 루니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루니는 19세에 불과했지만 이미 완성된 선수였다. 첫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였던 페네르바체전에서 왼발슛, 오른발 중거리슛, 오른발 프리킥으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다양한 무기를 한 번에 소개했다. 2004/2005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루니의 파트너는 뤼트 판니스텔로이였다. 그러나 판니스텔로이가 부상으로 많이 쉬었기 때문에, 맨유에 오자마자 시즌 최다득점은 11골을 넣은 루니가 차지했다. 이어진 2005/2006시즌은 두 선수의 폭발력이 극대화됐다. EPL에서 판니스텔로이 21골, 루니 16골을 터뜨렸다.
10대 루니는 야성이 살아있는 순수한 재능의 결정체였다. 축구선수치고 육중해 보이는 몸으로도 놀라운 순발력과 지구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아직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발력이 엄청났다. 맨유 문전부터 상대 문전까지 단숨에 질주하며 상대 수비 서너 명을 넘어뜨리는 돌파를 매주 보여줄 수 있는 선수였다. 루니가 더 특별했던 건 킥, 퍼스트 터치 등 기술뿐 아니라 시야와 순간적인 판단력에서도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루니는 천방지축으로 뛰며 공격을 주도해야 최상의 기량이 나는 선수였다. 판니스텔로이와 동선이 겹치는 경기도 많았다. 좀 더 눈치가 빠르고, 루니에게 철저히 맞춰줄 수 있는 공격수가 더 좋은 파트너였다. '유로 2004'에 참가한 루니는 부상당하기 전까지 잉글랜드 공격을 혼자 이끌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마이클 오언이 루니에게 맞춰 움직여 준 덕분이기도 했다. 루니는 나중에 호흡을 맞출 올레구나 솔샤르, 헨리크 라르손 등 노련한 선수들이 기를 살려 줄 때도 마음껏 날뛰었다.

2기: 맨유식 가짜 9번(2006~2009)
맨유는 루니가 합류한 뒤 두 시즌 동안 과도기를 겪다가 2006/2007시즌부터 EPL 3연속 우승을 달성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빼빼 마른 윙어에서 벗어나 득점 기계로 거듭난 시점부터였다. 이때부터 루니는 직접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뿐 아니라 측면이나 후방으로 빠지며 호날두의 득점을 이끌어내는 플레이가 늘었다.
원톱 판니스텔로이가 빠진 뒤 오히려 시작된 전성기였다. 루니는 처음에 루이 사하와 함께 뛰다가 솔샤르, 라르손을 거쳐 2007년부터 카를로스 테베스와 호흡을 맞췄다. 루니는 최전방에서 경기를 시작하지만, 주로 왼쪽으로 이동하며 문전을 비워뒀다. 그 자리로 호날두가 침투하거나 중거리슛을 날려 골을 몰아쳤다. 2006/2007시즌 루니가 14골, 호날두가 17골을 기록했다. 2007/2008시즌엔 루니가 12골, 테베스가 14골, 호날두가 무려 31골이나 터뜨렸다. 당시 루니의 플레이는 일종의 ‘가짜 9번’이었다. 2008년 5월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도 우승했다. 이때 역시 루니는 팀 플레이를 하고, 호날두가 팀의 유일한 골을 넣었다.
맨유는 2008/2009시즌 당시 호날두 중심의 득점루트를 유지하면서 장신 공격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영입해 공격 루트를 다변화했다. 루니가 12골, 호날두가 18골을 넣은 시즌이다. 맨유는 여전히 승승장구했지만 2년 연속 진출한 UCL 결승에서 바르셀로나라는 벽에 부딪쳤다. 맨유는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몸싸움과 활동량이 좋은 루니를 아예 왼쪽 윙어로 보내고, 호날두를 최전방에 세워 역습을 노렸다. 그러나 맨유의 맞춤 전술보다 바르셀로나의 완성형 전술이 더 강했고, 맨유는 0-2로 패배했다.
3기: 득점에 집중하면 얼마나 잘 하는지 보여줘?(2009/2010)
호날두가 세계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레알마드리드로 떠나자, 맨유는 루니를 중심으로 팀을 다시 짰다. 루니는 베르바토프와 짝을 이뤄 4-4-2의 최전방 공격수로 뛰기 시작했다. 이제 루니가 희생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루니의 득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동안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던 루니는 최전방에서 골에 집중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루니가 섀도 스트라이커, 베르바토프가 최전방 공격수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루니가 더 앞에서 뛰는 경우가 많았다. 두 선수 모두 득점과 연계 플레이를 겸비했기 때문에, 투톱 조합은 ‘창조자 루니와 응징자 베르바토프’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앞뒤를 바꾸는 빅 앤드 스몰 투톱으로 작동했다. 루니는 안토니오 발렌시아, 대런 플레처, 루이스 나니 등의 어시스트를 날름날름 받아먹었다. 26골로 EPL 득점 2위를 차지했고, 그중 5골이 헤딩골이었다. 루니가 마치 마이클 오언이나 앨런 시어러처럼 득점에만 집중하는 플레이를 하는 건 오히려 신선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아껴뒀던 골 감각이 마음껏 발휘된 시즌이다.
맨유는 리그 준우승, UCL 8강에 그치는 대신 리그컵에서 우승했다. 루니는 리그컵 2차전에서 거둔 역전승, 결승전에서 각각 득점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UCL에선 5골을 모두 토너먼트에서 넣으며 제몫을 했다.

4기: 섀도 스트라이커의 정석도 보여줘? (2010~2012)
맨유는 2010/2011시즌도 루니와 베르바토프의 투톱으로 시작했다. 베르바토프가 리그 20골로 최다 득점을 올렸고, 루니는 11골로 뒷받침을 하며 지난 시즌과는 반대 구도가 됐다. 그러나 베르바토프는 UCL에서 경쟁력이 부족했다. 대회 내내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을 정도였다.
막판으로 가면서 퍼거슨 감독은 공격 조합을 바꿨다. 이해 합류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일명 치차리토가 변화의 중심이었다. 에르난데스는 작고 빠르면서 늘 상대 오프사이드를 벗기려고 혈안이 된 선수다. 루니가 섀도 스트라이커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미드필드와 공격 사이를 잇고, 에르난데스가 최전방에서 뛰었다. 당시 맨유 포진은 4-4-1-1에 가까웠다. 루니 혼자 책임져야 할 공간이 넓었다.
루니는 이번 전술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에르난데스가 최대한 전방으로 전진하며 상대 수비를 벌려주면 루니에겐 넓은 2선 공간이 주어졌다. 루니는 이 공간을 활용해 에르난데스에게 스루 패스를 찔러주기도 하고, 직접 공을 몰고 올라가며 마무리하기도 했다. 에르난데스는 비교적 짧은 출장 시간으로도 13골을 넣으며 훌륭한 득점원 노릇을 했다. UCL에서는 루니와 에르난데스가 각각 4골로 최다득점자였다.
맨유는 UCL 결승에서 또 바르셀로나를 만났다. 이번엔 루니와 에르난데스를 제외한 네 명이 ‘두 줄 수비’로 바르셀로나를 막고, 역습으로 득점한다는 단순한 전략이 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공격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리오넬 메시, 다비드 비야, 페드로 로드리게스 스리톱이 한 골씩 터뜨리며 퍼거슨 감독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다. 결승전에서 유일하게 빛난 맨유 선수는 루니였다. 루니는 경기장 중앙부터 동료들과 연속 2대 1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해 특유의 감아차기로 골을 터뜨렸다. 맨유가 유일하게 우승 희망을 본 장면이었다. 루니가 UCL 결승에서 기록한 유일한 골이기도 하다.
2011/2012시즌은 루니가 다시 한 번 해결사 역할을 맡은 시기다. 맨유 전술은 비슷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신예 대니 웰벡이 루니와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루니는 여전히 섀도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다양한 파트너와 함께 공격을 전개했다. 루니는 리그 27골로 또 득점 2위를 차지했다. 에르난데스가 10골, 웰벡이 9골을 터뜨리며 루니의 파트너 자리를 번갈아 맡았다. 루니의 득점은 직접 프리킥, 동료의 프리킥 받아먹기, 문전 침투 후 마무리, 중거리 슛, 페널티킥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루니는 아직 역동적이었다. 페널티 지역 가장자리에서 수비 한 명을 제치고 육중한 킥을 날리는 특유의 득점 루트가 살아 있었다.
2011년 10월, 루니는 UCL에서 오체룰갈라치를 상대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다. 그 전에도 임시방편으로 중앙 미드필더를 본 적은 있었지만 아예 수비진 앞에 자리잡고 롱패스를 뿌린 건 처음이었다. 폴 스콜스, 마이클 캐릭과 같은 역할이었다. 루니는 한 인터뷰에서 스콜스를 본받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설픈 스콜스 흉내는 나중에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

5기: 점점 미드필더로, 점점 느린 선수로(2012~ )
2012/2013시즌 맨유는 로빈 판페르시라는 ‘원 포인트 영입’을 통해 또 EPL 정상에 올랐다. 이때 맨유의 축구는 판페르시에게 모든 득점 루트를 몰아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루니는 선발로 단 22경기만 뛰면서도 12골을 터뜨리며 보조 득점원 노릇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때부터 루니가 미드필더로 전환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격의 중심은 판페르시였고, 루니는 전술 변화에 따라 조연 역할에 충실했다. 판페르시와 에르난데스가 동시에 투입되고 루니가 후방에 배치되는 경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 교체에 따라 루니가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등 다양한 위치로 이동했다.
퍼거슨 감독이 떠난 2013년 여름부터 맨유는 부진에 빠진다. 루니는 이때부터 두 시즌간 팀내 최다골을 넣었다. 2013/2014시즌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아래서 17골을 넣으며 맨유를 지탱했다. 주로 2선에서 후안 마타, 가가와 신지, 아드낭 야누자이 등 후배 선수들과 공존하는 역할이었다. 팀 사정에 따라 최전방도 자주 맡았다.
루이스 판할 감독이 부임한 뒤, 맨유는 괴상한 실험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결국 전반기의 전술 실험이 실패하면, 후반기는 네덜란드 감독다운 4-1-4-1 포진으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루니가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됐다. 루니가 더 본격적으로 미드필더를 맡게 되는 시기다. 2014/2015시즌엔 루니가 팀내 최다골인 12골을 넣었다. 맨유가 스리백을 쓸 땐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되기도 했다. 2015/2016시즌엔 최전방과 중앙 미드필더를 오갔다.
루니는 '유로 2016'에서 아예 중앙 미드필더로 대회 전체를 소화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16강 아이슬란드전에서 잉글랜드는 1-2로 패배하며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루니 한 명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루니가 팀을 구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루니가 20대 초반의 운동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더 좋은 미드필더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자기 관리를 등한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루니는 타고난 신체 능력이 하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20대 초반 호날두를 압도하는 힘의 소유자였지만, 지금 호날두와 루니의 몸을 비교하는 건 호날두에 대한 실례가 됐다.
미드필더로 단련되지 않은 루니는 중원에서 어떻게 위치선정을 하고 상대 공격을 지연해야 하는지 체득하지 못했다. 여기에 운동능력까지 떨어지자 수비적인 기여도가 너무 낮았다. 스콜스는 수비진 앞을 절묘하게 보호하는 한편 최대한의 노련미를 발휘해 종종 공격에도 가담했지만 루니는 둘 다 힘든 선수였다. 스콜스 못지않은 정확도의 롱 패스가 있긴 했지만 코스 선택이 단조로웠다. 무엇보다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한 선수를 기막히게 활용하는 퍼거슨 감독이 더이상 없었다. 루니는 스스로 완전한 선수가 되어야 했고,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였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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