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한국 축구가 위기다. 누군가는 (이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가장 처음 한 말이다.

 

김 위원장 말에 동의한다. 한국 축구 위기는 눈에 보인다. 성인 대표팀을 비롯해 각급 대표팀이 거의 모두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뿐 아니라 축구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도 낙관하지 못한다. 대한축구협회가 늦었지만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한 이유다.

 

위기 의식에는 동의하지만 진단과 처방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위기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감독을 경질한 후에는 한국 축구가 큰 위기에 처했고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왜 위기가 왔는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진단을 아예 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 이야기도 협회가 지금껏 보인 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팀이 겪는 위기에 관한 진단은 없고 처방만 있다. "그 동안 거뒀던 성적, 경험 그리고 전술 능력이 중요하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처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 구성에는 문제가 없으니 소통을 강화해 사기를 끌어올리겠다는 이야기다.

 

대표팀 성적은 열매다. 대한축구협회가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표팀을 운영하고 지원했는지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위기 때마다 성찰 없이 여론을 의식해 코칭스태프를 선임했다. 경험이 일천한 차두리 전 전력분석관과 설기현 코치 선임이 대표적인 예다. 부랴부랴 정해성 수석코치를 초빙한 효과도 크지 않았다.

 

구조를 보완해야 할 때 인물에 집착했다. 냉철한 판단과 장기적인 관점은 없었다. 여론 전환과 대표팀 성적 개선에 집중하며 빠른 수습만 바랐다. 아무런 메시지도 주지 못했다. 팬들은 차두리와 설기현이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한 게 아니다. 팬들은 대한축구협회가 왜 이들을 선임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번 대표팀 감독 선임은 전과 달라야 한다. 위기 극복, 수습에 방점을 찍으면 같은 상황을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종예선 9.10차전을 잘 치러 월드컵 본선에 가더라도 그 이후에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 한국 축구 산업 위기는 어느 정도 끝나지만, 한국 축구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월드컵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시스템은 그대로다.

 

대표팀 감독은 대한축구협회가 임명할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새로운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외를 둬야 할 때도 있다는 핑계로 넘어가면 한국 축구는 다시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온다. 한국 축구계가 '긴급상황'이라 말하며 만들었던 수많은 예외가 한국 축구에 어떤 울림을 남겼는지 돌아볼 때다. 지금 효과를 낼 수 있는 예외는 위기 관리 능력이 뛰어난 감독에게 최종예선만 맡기는 방법 정도다. 

 

슈틸리케도 한때 인기 있었다. 이정협 같은 무명 선수를 선발해 성과를 냈다. ‘누구라도 잘하면 대표팀에 들어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줬다. 짧은 열광 뒤에 이 메시지는 희미해졌다. 자신이 선발한 선수와 이름 있는 선수에 집착하며 대표팀 분위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경쟁은 가고 불신이 왔다. 메시지는 무형이지만 성적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표팀 성적만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다. 한국 축구 전체를 책임진다. 대표팀 감독 선임은 대표팀 성적뿐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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