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깊다. 격렬함 속에는 치열한 고뇌가 숨어 있다. 보이지 않는 축구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풋볼리스트’가 축구에 지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축구를 둘러싼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한다. <편집자주>

“내 색깔을 입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포르투갈은 4년째 같은 감독이다. 이 사람의 작전은 포르투 선수 둘, 벤피카 선수 둘 등 소속팀이 같은 선수들의 콤비를 만들어 놨다. 포르투갈은 여러 팀에서 선수를 뽑아올 필요가 없다. 큰 팀에서 엑기스만 뽑아놓은 것이다. 잉글랜드도 에버턴 유스를 뽑아서 조합했다.”

신태용 감독은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대회를 복기하며 축구 강국이 보였던 특징을 설명했다. 한국이 경기력에서 열세를 보인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포르투갈 등 남미와 유럽의 강국은 자국 빅클럽의 주요 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선수들을 요소요소에 여럿 배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르핸티나의 경우 빌드업 미드필더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 센터백 후안 포이트가 에스투디안테스 소속 선수로 후방 빌드업 과정에서 안정된 조합 플레이를 했다. 우승을 차지한 잉글랜드는 측면 공격수 아데몰라 루크먼을 비롯해 도미닉 칼버트르윈, 키어런 도월, 존조 케니, 칼럼 코널리 등 측면에 포진한 핵심 선수들이 모두 에버턴 소속이었다. 

포르투갈은 신 감독이 말한 것처럼 벤피카(8명)와 포르투(4명), 스포르팅리스본(4명) 등 리그 내 3대 명문팀 선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에서 비슷한 전술적 역할을 익숙한 동료 선수들과 수행했다. 연령을 막론하고 국가 대표팀은 매일 훈련하는 클럽팀에 비해 훈련 시간이 적다. 가끔 모여 단 기가 호흡을 맞춘 뒤 경기한다. 대회에 참가해야 2주 가량 훈련할 여유가 주어지지만, 전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최진철 전 U-17 대표팀 감독이나 안익수 전 U-20 대표팀 감독 모두 청소년 대표팀을 지휘하면서 겪는 고충은 비슷했다. 훈련 소집 기간에 어느 정도 잘 만들어져도 각자 소속팀에 다녀오면 다시 본래 스타일로 돌아가 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경기 스타일로 돌아가 있어 색깔을 입히고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팀은 클럽팀처럼 하나의 팀으로 뭉쳐서 만들기가 쉽지 않다. 홍명보 감독은 U-20 대표팀, 아시안 게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을 거치며 중심축이 되는 선수들을 유지하고, 각 연령별 팀에 맞춰 해당 나이 최고의 선수를 추가 조합해 성과를 냈다.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단단한 조직력을 만들었다. 대표팀이 갖는 한계를 오랜 시간 연속성을 가진 운영을 통해 풀었다. 

클럽 축구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유럽의 경우 해결책을 찾는 게 더 쉽다. 리그를 대표하는 빅클럽이 유소년 시스템 단계에서 최고의 재능을 한데 모아 비슷한 전술로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수 많은 재능있는 선수를 배출한 스페인의 경우 나라 전체를 관통하는 패스 중심의 축구 철학이 균일한데, 1990년대부터 각 지역별 축구협회에 일관된 훈련 프로그램을 배급해 최고 유망주들에게 유사한 훈련을 시켜 성과를 냈다. 대한축구협회가 실시하고 있는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이 모델로 삼은 방식이다.

하지만 각 지역별 대표팀 소집 및 훈련도 소집 시간은 제한적이다. 결국 선수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전술적, 기술적 담금질을 갖고 조직력을 높이는 것은 클럽팀이다. 공격, 미드필더, 수비 조합을 같은 팀에서 좋은 호흡을 보이는 선수들로 구성하는 것은 대표팀이 빠른 시간에 조직력을 만들기 위한 합리적인 방식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우승한 스페인은 2008/2009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FC바르셀로나의 구조를 빌려왔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차비 에르난데스, 페드로 로드리게스와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고, 센터백은 제라르드 피케와 카를라스 푸욜이 이뤘다. 무려 6명의 FC바르셀로나 선수가 선발에 포진했다. 수비진에는 고맄퍼 이케르 카시야스와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 미드필더 사비 알론소가 레알마드리드 소속으로 구심점 역할을 했다. 바르사와 레알의 연합군으로 구성되서 서로가 서로를 이미 잘 알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도 토마스 뮐러, 토니 크로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필리프 람, 제롬 보아텡, 마누엘 노이어 등이 바이에른뮌헨 소속 선수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의 조합 플레이가 비슷했다. 독일은 언제나 바이에른 선수들을 중용했는데, 당시 요하임 뢰브 감독은 주제프 과르디올라 바이에른 당시 감독과 오랜 시간 전술적 면담을 갖는 등 대표팀 운영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러시아 2017’에 참가 중인 독일의 기조는 지금도 비슷하다. 지금은 PSG 소속이지만 한때 샬케04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가까운 율리안 드락슬러와 레온 고레츠카를 중앙 지역에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로 배치한 전술 실험을 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독일은 스리백과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를 둔 전술을 시도하고 있는데, 과감한 시도의 바탕에도 소속팀이 같은 선수들이 있다. 빌드업 미드필더 제바스티안 루디와 공격수 산드로 바그너, 미드필더 케렘 데림바이 등은 2016/2017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호펜하임의 돌풍을 이끈 선수들이다. 

칠레의 경우에도 2016/2017시즌 셅비고에서 좋은 조합을 이뤘던 미드필더 파블로 에르난데스와 마르셀로 디아스를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며 허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성인 대표팀보 스포르팅리스본, 벤피카, 포르투 선수들이 많은데, 현 소속이 아니라도 유소년 시기를 이 팀들에서 보내며 서로 잘 아는 선수들이 주를 이룬다. 

대표팀 역시 지휘봉을 잡은 감독의 철학과 스타일이 드러난다. 하지만 결국 대표팀은 그 나라 축구의 문화와 시스템을 기반으로 엑기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백지에서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영역의 팀이 아니다. 그 나라 최고 선수들이 가진 개성을 살리며, 자국 리그를 선도하는 전술을 대입해 빠르게 전술 완성도와 조직력을 높여 결과를 내야 한다. 

클럽팀에서도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 자신이 직전에 이끈 팀에서 페르소나에 해당하는 선수를 영입하는 경우가 흔하다. 자신의 축구 색깔을 빠르게 입히기 위해서다. 대표팀 역시 이미 구축되 패턴 플레이를 활용하는 것이 빠르게 결과를 낼 수 있는 길이다. 

한국 대표팀이 과거 PSV에인트호번 콤비 박지성-이영표를 중심으로 운영하거나, FC서울 콤비 기성용-이청용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아 활약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 단기 감독으로 부임해 전북현대 선수들을 중심으로 조직력을 빠르게 끌어올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것도 예시 중 하나다.

한국 대표팀 역시 올시즌 리그를 선도하는 전북현대와 제주유나이티드 선수들을 해외파 틈바구니 사이에 소집했다. 문제는 이 선수들이 서로 조합과 패턴을 구사할 수 있는 형태로 기용되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 U-20 대표팀의 경우 소속팀이 같고, 그 안에서 서로 자주 호흡을 맞추며 경기한 선수가 많이 않은 점이 아쉬웠다. 한국 성인 대표팀은 카타르 원정에서 패했고, U-20 대표팀도 16강 탈락으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K리그는 아직 전술적으로 강한 리그가 아니지만, 매번 A매치 데이가 찾아올 때마다 훈련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부족한 훈련 시간 안에도 최상의 조직력을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클럽팀의 구조를 빌려오는 것은 괜찮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각자 소속팀에서 호흡이 좋은 공격수와 윙어, 미드필더와 미드필더, 미드필더와 풀백, 센터백과 센터백, 골키퍼와 센터백 등 전술적 유기성이 중요한 선수들의 조합을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 가능한 일이다. 

특정팀의 선수와 전술에 치중하라는 것은 아니다. 특정팀 선수들이 대표팀을 지배하는 현상은 몇몇 빅클럽이 리그를 확실하게 주도하는 흐름이 아닌 한국에선 또다른 분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미 선수들이 익숙한 구조를 빌려와, 그에 어울리는 선수,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선수를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팀의 성공은 클럽팀의 구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장기 합숙 없이 속성으로 조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글=한준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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