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레알마드리드의 패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엄연한 아약스의 승리였다. 아약스는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돌아가도 될 정도로 화려한 유망주 라인업을 통해 레알마드리드를 꺾었다. 곧 뿔뿔이 흩어질 멤버들이라 이 순간이 더 값지다.

6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16강 2차전을 가진 아약스가 레알을 4-1로 대파했다. 1차전 1-2 패배를 뒤집은 아약스가 합계 전적 5-3으로 8강에 진출했다. 레알의 부진이 주로 조명 받은 경기지만 아약스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면 대역전극은 어려웠다.

네덜란드식 ‘토털 풋볼’의 총본산인 아약스는 1970년대 요한 크루이프(작고) 시절부터 세계 최고 유망주 양성소로 인정받아 왔다. 2010년 이후 네덜란드 축구계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아약스의 명성에도 금이 가는 듯 했지만, 2016/2017시즌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아약스의 20세 안팎 유망주들은 네덜란드 대표팀에도 일찍 불려가면서 빠르게 경험을 쌓았다.

레알을 격파한 선수단 중 ‘척추’를 이룬 이들은 유망주였다. 공격형 미드필더 도니 판더비크와 수비형 미드필더 프렝키 더용 22세, 센터백 마티스 더리흐트 20세, 골키퍼 안드레 오나나 23세 등 자체 육성한 유망주 네 명이 중심을 잡았다. 더 경험 많은 두산 타디치(1골 2도움), 하킴 지예흐(1골), 다비드 네레스(1골) 등이 최전방과 중앙에서 공격을 맡았다. 보통 팀의 중심을 잡는 게 고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약스식 축구를 구현하려면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고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유망주들이 중심을 잡아야 했다.

아약스는 UCL에서 16강에 진출한 것이 2005/2006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2006년 당시 멤버는 네덜란드 대표팀 세대교체의 중심으로 주목 받았던 베슬러이 스네이더르, 어르비 에마뉘엘손, 클라스얀 훈텔라르, 마르턴 스테켈렌부르크, 라이언 바벨 등이었다. 8강 이상 올라간 기록을 찾으려면 진짜 황금세대의 끝자락이었던 1996/1997시즌(4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황금세대가 될 수 있는 멤버들이지만, 지금 멤버는 곧 해체될 전망이다. 아약스 선수들을 주목하는 팀이 많다. 이미 지난해 여름 유스틴 클루이베르트(AS로마)가 떠났고, 지난 1월 막시밀리안 뵈버(세비야)도 이적했다. 더용은 오는 여름 바르셀로나 이적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아약스와 고별 시즌을 치르고 있다. 더리흐트, 판더비크 역시 이적 시장에서 인기가 높기 때문에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자주 거론된다.

UCL에서 성과를 낸 뒤 멤버들이 유럽 곳곳으로 흩어지는 건 아약스 역사에서 계속 반복되 온 일이다. 1970년대에는 비교적 선수 이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유로피언컵(UCL의 전신)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1973년 세 번째로 우승한 뒤 요한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자 이듬해 요한 네스켄스 등 다른 선수들도 연달아 팀을 떠나면서 한 세대가 흩어졌고, 이후 네 시즌 동안 유러피언컵 8강 이상에 오르지 못했다.

아약스의 두 번째 전성기였던 1995년 UCL 우승 멤버 중 클라렌스 세이도르프를 비롯한 2명이 우승 직후 이탈했다. 이듬해 준우승을 차지한 뒤에는 에드하르 다비즈, 미하엘 라이지허 등 5명이 떠났다. 1997년 마르크 오베르마스,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 등까지 떠나자 이후 5시즌 동안 UCL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다음 시즌부터는 유럽 곳곳의 구단으로 흩어져 UCL에서 상대팀으로 만나야 하는 것이 아약스 유망주들의 미래다. 아약스가 모처럼 무더기로 배출한 천재 선수들은 함께할 수 있는 시간 동안 화려한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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