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한 가지 능력만 발달한 ‘크랙’보다는 팀 플레이에 무리 없이 녹아들 수 있는 지능적인 선수를 선호한다. 파울루 벤투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의 ‘2019 아랍에미리트아시안컵’ 본선 명단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된 취향이다.

벤투 감독은 20일 아시안컵 본선 명단 23명과 현지까지 동행할 예비 명단 2명을 발표했다. 김진수, 이청용, 지동원 등 유럽파이거나 유럽 경험이 있는 대표팀 기존 멤버들의 복귀가 눈에 띈다. 신예급 선수 중에서는 지난 11월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나상호가 아시안컵 본선 참가 기회를 잡았다. 손흥민, 기성용, 황희찬, 황의조, 김영권, 조현우 등 대표팀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포함됐다.

최종 명단을 보면, 벤투 감독은 기동력과 전술 지능을 겸비한 선수들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벤투 감독은 팀원 모두가 조직적으로 위치를 바꿔가며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그러면서도 늘 대형을 갖추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이 사전에 지시한 위치를 선수가 경기 중에 잘 찾아갈 수 있는 전술 지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 플레이를 타이밍 맞춰 하기 위해서는 기동력이, 경기 내내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력도 필요하다.

어느 선수가 들어가더라도 팀 플레이를 깨지 않고 공격 전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팀 구성의 기본 조건이다. 기동력과 전술 지능이 갖춰져 있다면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약점이 없는 선수, 소위 ‘육각형(축구 게임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모든 능력이 고루 갖춰진 축구선수를 지칭)’선수가 될 수 있다.

 

장단점 확실한 문선민보다 팀에 잘 녹아드는 나상호 선택

벤투 감독의 취향은 문선민이 아니라 나상호를 선발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문선민은 K리그1에서 14골 6도움을 기록했고, 벤투 감독 부임 이후 A매치에서 골도 넣었다. 기록 측면에서는 K리그2 16골 1도움을 기록했고 A매치 데뷔골이 아직 없는 나상호보다 문선민이 확실히 앞섰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지난 11월 우즈베키스탄전 경기력 등을 보고 나상호를 택했다. 그 이유도 분명히 밝혔다.

“문선민의 포지션인 윙어를 선발할 때 다른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지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또 좁은 공간에서 압박을 뚫고 해결할 수 있는지를 고려했다.”

문선민은 마무리의 스페셜리스트다. 팀 플레이에 관여하는 능력은 특별하지 않지만, 동료가 만들어 준 기회를 골이나 도움으로 마무리하는 능력이 정상급 스트라이커처럼 빛나는 선수다. 이 능력을 바탕으로 올해 K리그1 국내 선수 최다골을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감독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위치를 오가며 때로는 상대 선수를 받쳐줘야 하는 벤투식 전술에서는 불협화음을 낼 가능성이 있다.

나상호를 프로 초창기에 지도했던 남기일 성남FC 감독은 나상호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벤투 감독과 마찬가지로 공간에 주목했다. “나상호는 원래 공간 활용 능력이 아주 좋은 선수였다. 상대 배후 공간이 열리면 득점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간이 줄어들더라도 자기 장점을 발휘하더라. 그런 걸 보면 성숙해가는 것 같다. 공간 활용 능력은 경기 상황을 읽는 능력에서 온다. 그건 타고나는 것이다.” 즉 나상호의 가장 큰 재능은 경기 상황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위치와 질주 방향을 결정하는 ‘움직임’이라고 본 것이다.

나상호는 실제로 A매치 선발 데뷔전에서 우즈벡을 상대로 상대 진영 곳곳을 침투했다가 다시 배후로 후퇴하는 등 다양한 동선으로 공격 전개에 기여했다. 좁은 공간이 열렸을 때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움직임이었다. 스스로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팀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잘 해냈다. 벤투 감독이 선호하는 공격 보조 요원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 선발에도 벤투의 성향 반영

왼쪽 풀백으로 김진수가 발탁된 점 역시 설명됐다. 기존 자원 홍철, 박주호가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에 장기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은 김진수가 경쟁하기 힘들다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김진수를 선발했다. 김진수가 공격적인 선수로 인식돼 온 것과 달리, 벤투 감독은 김진수의 수비력을 거론했다.

“홍철은 예전부터 함께 해 온 왼쪽의 1번 옵션이다. 김진수는 홍철과 비교할 때 수비력에서 다른 유형이다.”

홍철은 기동력, 박주호는 전술 수행 능력에서 강점이 두드러지는 선수들이다. 이들과 달리 김진수는 두 가지 능력 모두 중간 이상으로 갖추고 있다. 홍철이 수비 위치 선정에서 종종 약점을 드러내더라도 탁월한 기동력으로 이를 무마하는 스타일이라면, 김진수는 유럽 경험을 통해 더 다양한 전술을 익혔고 공수 양면에서 조직적인 플레이에 좀 더 강점이 있다.

홍철은 가벼운 부상을 안고 있다. 벤투 감독은 홍철이 아시안컵 본선 첫 경기인 내년 1월 7일(한국시간)까지 완벽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봤지만, 회복속도에 따라 대회 초반에는 김진수가 선발로 나서야 할 수도 있다. 단순한 백업 멤버 이상의 의미다.

또한 중앙 미드필더 선발 과정을 봐도 기동력과 전술 수행 능력을 중시하는 감독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 최종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남태희가 부상당한 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진현, 김준형, 장윤호가 선발돼 그중 이진현, 김준형이 예비 명단에 들었다. 이들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나 측면 미드필더 등 공격적인 위치를 맡을 수 있으면서, 소속팀에서는 좀 더 수비적인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어 왔다. 몸싸움과 슬라이딩 태클 등 전통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능력과는 거리가 멀지만, 비교적 작은 체구로도 적절한 위치선정과 기동력을 살려 공수 양면에서 전술에 맞는 플레이를 한다. 최종 명단에서는 황인범, 이재성, 구자철 등이 이런 스타일의 미드필더라고 볼 수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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