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리버풀(영국)] 김정용 기자= 리버풀의 홈 구장에서 원정 응원을 한다는 건 악과 깡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5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에서 열린 ‘2017/2018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26라운드가 그랬다. 이날 리버풀과 토트넘홋스퍼는 2-2로 비겼다. 극적인 승부였다. 리버풀이 전반 3분 모하메드 살라의 득점으로 앞선 뒤 후반 막판까지 리드를 유지했다. 그러나 후반 35분 빅터 완야마의 동점골, 후반 추가시간 살라의 추가골, 그리고 해리 케인의 재동점골까지 터지며 결국 무승부가 됐다. 케인의 페널티킥은 에릭 라멜라가 시뮬레이션 행위로 얻어낸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메인 스탠드 가장자리, 앞에서 열 번째 줄의 좋은 자리에 앉았다. 일반 관중으로서 경기를 관전했다. 통로를 하나 건너면 안필드 로드 스탠드에 배치된 토트넘 원정팬을 위한 블록이 있다. 토트넘 팬들과 리버풀 팬들이 정면으로 기 싸움을 벌이는 자리에서 양쪽의 욕설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경험을 했다. 역동적이고 극적인 위치다.

수적으로 절대 열세에 처한 토트넘 팬들은 악을 바락바락 쓰지 않으면 5만여 리버풀 팬들의 기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경기 전 유명한 ‘유 윌 네버 워크 얼론(You will never walk alone)’ 응원가를 관중들이 합창할 때도 토트넘 팬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방해했다. 서포팅 문화가 없는 잉글랜드 구장은 경기 중 응원가가 좀처럼 들리지 않지만, 토트넘 팬들은 어떻게든 홈팀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경기 내내 노래를 불러댔다. 그중엔 열성팬 유망주인 어린이도 여럿 있었다. 어린이들은 현란한 손동작, 때로는 욕설을 의미하는 동작을 해 가며 리버풀을 모욕했다.

가까이에 앉은 리버풀 팬 중 인상적인 사람은 그 흔한 응원용 머플러 하나 없이 말쑥한 차림으로 앉아 있던 신사였다. 신사는 토트넘 팬들을 향해 우아한 동작으로 무시하는 시늉을 했다. 입모양, 표정, 손을 흔드는 각도를 볼 때 토트넘을 깔보는 것이 확실했다.

토트넘 팬들은 사방에서 포위당해 있었다. 머리 위조차 마찬가지였다. 토트넘 팬들의 머리 위 2층에 앉은 리버풀 팬이 간판을 손으로 두들겨 꽝꽝 소리를 냈다. 토트넘 팬들이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자, 리버풀 팬이 손가락 두 개를 펴 영국식 욕을 해 줬다.

경기 초반, 몸을 풀러 나온 선수 중에는 알렉스옥슬레이드 체임벌린이 있었다. 토트넘 팬들은 라이벌 아스널 출신 ‘적군’에게 열심히 야유를 보냈다. 체임벌린은 씩 웃으며 손 키스를 날렸는데, 자극을 받은 토트넘 팬들은 더 열심히 체임벌린에게 야유와 욕설을 제공했다.

원정팬들이 좀 즐겁게 응원하려면 경기력이 뒷받침돼야 했지만 전반전에는 그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토트넘은 전반전에 안필드 로드 스탠드 쪽으로 공격을 했다. 토트넘 선수가 골을 넣는다면 팬들 앞으로 달려와 골 세리머니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토트넘은 골은커녕 제대로 된 공격도 몇 번 하지 못했다. 토트넘 팬들은 사랑하는 선수들이 막히는 모습만 보다가 전반전을 마쳤다. 몇몇 팬들은 리버풀 팬들을 향해 ‘이리로 넘어와서 한 판 붙자 이 녀석아’라는 듯한 손짓을 보냈다.

후반 막판, 상황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비록 저 멀리긴 했지만 교체 투입된 빅터 완야마의 중거리슛이 들어가자 토트넘 팬들은 벌떡 일어나 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오오 빅터 완야마” 응원가를 들으면 방금 장면을 놓친 관중들도 득점자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골이 들어갔는데 기뻐하지 않고 리버풀 응원석을 향해 화를 내는 관중들이 많았다. 이들은 리버풀 측을 향해 주먹, 중지, 검지와 중지를 번갈아 흔들며 다양한 제스처로 욕설을 해 보였다.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으면 더 열심히 욕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후반 막판 해리 케인이 페널티킥 키커로 나섰으나 득점에 실패했다. 두 서포터의 표정은 극적으로 교차했다. 페널티킥이 선언되는 순간 토트넘 팬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을 했고, 리버풀 팬들은 다이빙이라는 손동작과 함께 심판에게 욕을 퍼부었다. 잠시 후 케인의 킥이 막히자 리버풀 팬들은 “응, 앉아”라는 듯 손동작으로 그만 흥분하고 앉으라는 제스처를 보내줬다.

후반 추가시간 살라의 골이 터지자 리버풀 팬들의 사기는 극에 달했다. 토트넘 응원석을 향해 손 키스를 보내며 약을 올렸고, “바이 바이”라고 소리지르며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나 잠시 후 페널티킥이 또 선언되고 케인이 기어코 성공시키자 관중석의 전세도 역전됐다. 이미 일부 토트넘 팬은 빠져나갔지만 상관없었다. 토트넘 팬들은 전보다 더 심한 욕설을 리버풀 팬들에게 마구 퍼부었다. 이번에도 자기 팀이 골을 넣었는데 상대 서포터에게 화를 내는 건 마찬가지였다.

토트넘 서포터들은 종료 휘슬이 울리자 개운한 표정으로 마지막 욕설을 리버풀 응원석에 건넸다. 두 팀 팬들이 감정 싸움을 벌인 경기장 모서리는 가운데 손가락이 유독 칼바람을 맞는 곳이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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