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점점 더 깊고 복잡해지고 있다. 현상과 주제는 점점 늘어나는데, 그에 대한 정보는 충분하지 않다. '풋볼리스트'는 매달 뜨거운 주제를 잡아 자세한 설명을 담은 기사. 풋볼리스트M(montly)을 낸다. 2018년 1월 주제는 스포츠 과학이다. <편집자주>

 

“빅4 리그 한 팀 당 선수 부상으로 인한 평균 연봉 손실액이 1240만 달러(132억 원)에 달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팀에서 지급한 연봉 중 10~30% 정도가 손실된 셈이다.” (포브스, 2015년)

 

"EPL 20개 구단이 부상 선수에 준 급여는 3억 달러(약 3193억 원)이다." (키트맨랩스, 2015년)

 

선수는 물론 팀에 큰 영향을 주는 부상은 여전히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일까?

 

어쩔 수 있는 부상도 있지만, 예방할 수 있는 부상도 있다는 게 의학계의 대답이다. 부상 중 약 40%를 차지하는 근육 부상은 예방할 수 있다는 통계까지 나와 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을 역임했던 정태석 스피크 재활의학과/퍼포먼스센터 원장은 “예방할 수 있는 숫자가 그 정도 된다. 부상 중에 근육손실 비율이 37% 정도 된다. 실제로 예방 가능한 부상이 근육 부상이기 때문에 의학계에서는 예방 가능한 부상 비율을 40%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스포츠 의학을 넘어 스포츠 과학이라는 단어가 이미 많이 쓰이고 있다. 스포츠 과학은 다친 선수를 전문적으로 고치는데 그치지 않고 부상과 위험 가능성을 줄여 결과적으로는 팀에 도움을 주는 적극적인 학문이다.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는 2000년대 초반 샘 앨러다이스 감독이 볼턴원더러스를 이끌 때 이 스포츠 과학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많은 팀에서 스포츠 과학자를 고용해 부상을 방지하고 팀 전력을 높이고 있다.

 

스포츠 과학자는 한국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트레이너나 물리치료사(피지오)와는 조금 다른 의미다. 스포츠 과학자는 데이터를 이해하고 위험을 방지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다. 트레이너나 피지오 자격증이 없어도 스포츠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트레이너나 물리치료사도 관련 공부를 하면 스포츠 과학자가 될 수는 있다. 스포츠 과학자들은 선수가 훈련장에 나올 때부터 훈련을 마칠 때까지의 데이터를 수집해 피로도를 관리해 부상을 줄인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폴 발섬은 레스터시티와 스웨덴 대표팀에서 스포츠 과학자와 퍼포먼스 매니저로 일한다. 그는 2015/2016시즌에 레스터시티가 예상을 깨고 EPL 트로피를 차지했을 때도 함께 했다. 레스터시티에는 그를 비롯해 10명의 퍼포먼스팀이 선수를 돕는다. 이들은 평균 근속 연수가 3년을 넘다. 능력도 좋고 손발도 잘 맞는다. 당시 ‘더 피지오룸’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레스터시티는 누적 부상 인원이 18명으로 20개팀 가운데 가장 적어다. 선수 가동률은 96%에 달했다. 가장 부상자가 많았던 맨체스터시티는 69명이었다.

“맨체스터시티는 부상자가 많아도 괜찮다. 돈도 많고 선수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 부상자가 나오면 바로 성적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스포츠 과학이 중요하다. 큰 돈이 돌지 않는 K리그에도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발섬이 소개한 퍼포먼스팀 일과는 대략 이렇다. 선수가 훈련장에 도착하면 문진을 시작한다. 잠은 얼마나 잤는지, 수면의 질은 어땠는지, 큰 이상은 없었는지 등을 묻는다. 훈련 때는 GPS가 탑재된 조끼를 입혀 선수들이 얼마나 뛰었는지 확인한다. 이 데이터를 축적해 선수들의 대략적인 몸 상태와 훈련 때 뛴 거리를 합산한다. 발섬은 “훈련량이 너무 많아도 부상자가 늘고, 너무 적어도 부상자가 발생한다. 항상 적당한 훈련량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너무 많이 뛰면 햄스트링 부상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이미 나왔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과학자는 선수에게 지시하지 않는다. 이해시켜야 한다.”

 

물론 스포츠 과학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게 아니다. 선수단 체력과 컨디션을 관리하는 발섬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속적인 접촉과 의사소통을 꼽았다. 그는 감독과 코칭스태프뿐 아니라 선수와도 대화를 잘 해야 한다고 했다. “과학은 중요하지만, 축구를 구성하는 한 가지 부분일 뿐이다. 결정은 사람이 한다. 과학은 도울 뿐”이라고 강조했다. 발섬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레스터시티에 부임한 이후에도 수많은 소통을 통해 역할을 다잡았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도 양측이 서로 인정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스포츠 과학 불모지나 다름 없다. 선수가 뛴 거리를 측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장비인 GPS 장비를 구비한 팀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스포츠 과학의 필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정태석 스피크 재활의학과/퍼포먼스센터 원장은 “오래 전부터 그런 이슈에 대한 강의를 많이 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연봉 손실액 같은 수치가 국내에서는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유럽에서는 선수 부상을 손해로 생각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선수를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태석 원장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는 스포츠 과학이 투자라고 했다. “선수 연봉은 엄청나다. EPL 선수 4일치 급여면 스포츠 과학자를 1명 고용할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K리그도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 1달 월급이면 스포츠 과학자 1명을 쓸 수 있다. 그 정도 돈을 써서 전체 부상을 10% 이상 줄일 수 있다. 팀에 도움이 되는 일 아닌가? 모든 기업은 수익 중 일부를 연구와 개발에 쓴다. 축구단은 값비싼 자산을 쓰는 기업이다. 이런 자산을 관리하는 기술자가 필요하다.”

 

글= 류청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2편에서는 한국과 K리그 현실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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