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1부 리그를 '4대 빅리그'라고 부른다. 2018년부터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4팀이 직행하는 4개 리그 중 이탈리아 세리에A만 국내 중계가 없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주목도는 떨어진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지난 시즌 세리에A에서 주전이나 로테이션 멤버 정도의 위상으로 활약한 20세 이하 이탈리아 선수는 채 10명도 안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잔루이지 돈나룸마(AC밀란)는 이미 A대표팀에서 잔루이지 부폰에 이은 2순위 골키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U-20 월드컵에 참가할 위상을 뛰어넘었다. 마누엘 로카텔리(AC밀란)와 페데리코 키에사(피오렌티나)는 각각 미드필드와 공격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지만 모두 6월 열리는 U-21 유로에 차출됐다.

이번 대표팀에 선발된 세리에A 선수는 니콜로 바렐라(칼리아리), 페데리코 디마르코(인테르밀란에서 엠폴리로 임대), 쥐세페 페첼라(팔레르모) 정도가 눈에 띄지만 이들 중 제대로 활약한 건 페첼라뿐이었다. 미드필드의 핵심 선수였던 바렐라는 조별리그 남아공전에서 부상을 당해 일찍 돌아갔다. 막대한 타격이었다. 디마르코는 엠폴리의 강등 위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소속팀 일정을 마치고 뒤늦게 합류했다.

지난해 유럽 U-19 대회 준우승 멤버였던 골키퍼 알렉스 메레트도 기대를 모은 선수였다. 지난 시즌 세리에B 우승팀 SPAL로 임대돼 맹활약하며 주목 받았고, 최근 A대표팀에 뽑혔다. 그러나 메레트는 부상으로 인해 U-20과 U-21 대표팀 합류가 모두 무산됐다.

기대 이하의 선수단에 조별리그 부진이 겹치며 이탈리아는 우승후보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대회가 진행되며 점차 평가가 올라갔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우루과이에 패배하며 1승 1무 1패로 간신히 16강에 진출한 이탈리아는 우승후보 0순위라는 프랑스를 상대로 깜짝 승리를 거두며 평가를 뒤집었다. 조별리그에서 9득점 무실점이었던 프랑스는 이탈리아 수비를 상대로 경기 내내 고전했고, 간결한 공격 루트에 당해 두 골을 내줬다. 이어 8강 잠비아전은 교체 투입된 디마르코의 왼발 세트피스로 1골 1도움을 만들며 연장 혈투 끝에 3-2로 역전했다.

준결승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초반부터 경기가 꼬이며 이탈리아 축구가 시나리오를 잃어버렸을 때 특유의 부진한 경기를 했지만, 3위 결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다시 승리했다. 유종의 미를 거둔 뒤 알베리고 에바니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낼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3위는 이탈리아가 이 대회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다.

이탈리아는 개인 기량이 아닌 팀 플레이 측면에서 가장 원숙한 모습을 보인 팀 중 하나였다. 경기마다 편차가 심했지만, 잘 되는 경기에서는 탄탄한 조직력으로 상대 공격을 틀어막고 빠르게 역습했다. 유벤투스 유망주 롤란도 만드라고라는 기대만큼 주도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대신 미드필더 세 명의 유기적인 호흡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득점왕을 차지한 리카르도 오르솔리니는 가장 화려하게 빛난 선수다. 조별리그 2차전부터 준결승까지 5경기 연속골을 터뜨렸다. 오른쪽 윙어 자리에서 대기하다가 상대 수비수들의 시야 밖에서 나타나 왼발로 골을 터뜨리는 플레이가 효과적이었다. 우루과이의 에이스로 기대를 모은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기대에 못미친 활약을 했기 때문에 오르솔리니의 경기력은 유벤투스 입장에서 더 고무적이었다.

골키퍼들도 빛났다. 주전으로 활약한 안드레아 차카뇨는 동년배 메렛, 후배 돈나룸마에 밀려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탁월한 선방 능력과 안정적인 수비 조율을 보여줬다. 프로베르첼리 임대를 마치고 토리노로 복귀할 예정인데, 마침 토리노는 주전 골키퍼 조 하트가 맨체스터시티로 돌아가야 한다. 차카뇨가 토리노에서 주전 경쟁을 해볼 만한 상황이다.

3위 결정전에서 골문을 지킨 알레산드로 플리차리는 17세에 불과한 선수지만 한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뒤 승부차기에서 두 개나 선방하며 마지막 순간의 주인공이 됐다. 플리차리는 AC밀란 소속으로, 돈나룸마보다 한 살 어린 후배다. 밀란은 최근 돈나룸마의 이적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플리차리를 주전으로 올릴 수는 없겠지만 미래가 밝다는 걸 확인했다.

AC밀란에서 스타 선수였던 에바니 감독은 평가절하 속에서 대회를 시작한 제자들이 더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A대표팀이나 U-21 대표팀에 올라간 선수들은 여기 오지 않았다. 사실이다. 그러나 우린 우리 팀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걸 증명하고 싶었다. 바렐라가 다친 건 큰 손실이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나머지 선수들이 그 이상을 보여줬다. 우린 우리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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