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동환 기자= ‘THE FUTURE IS NOW, PRIDE OF A NATION’

젊은 삼사자 군단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종주국’임에도 불구하고 1966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월드컵을 비롯한 각 연령별 월드컵에서 단 한 차례도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지 못한 잉글랜드가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된 ‘국제축구연맹(FIFA)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는 베네수엘라를 맞아 1-0 승리를 거뒀다. 전반 35분 칼버트-르윈의 선제골을 끝까지 지켰다. 결승을 앞두고 ‘THE FUTURE IS NOW(지금 이 순간이 바로 미래다)’라는 슬로건으로 우승을 노렸던 잉글랜드는 승리 후 ‘PRIDE OF NATION(나라의 자존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기쁨을 만끽했다.

51년 만에 월드컵 우승 세레머니를 펼친 잉글랜드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우승 세레머니를 펼치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했다. 삼삼오오 모인 잉글랜드 팬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기쁨을 나누었다. 선수들과 스태프 그리고 가족들까지 뒤엉켜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라커룸에서는 승리의 찬가가 흘렀고, 흥겨운 파티가 벌어졌다. 경기 후 한 시간 넘게 여운을 즐긴 이들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났다. 팀을 이끈 주장 루이스 쿡(AFC본머스), 대회 최고의 선수로 ‘골든 부츠’를 수상한 도미닉 솔란케(리버풀), 불꽃 선방을 펼친 프레드릭 우드먼(뉴캐슬유나이티드), 솔란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팀 내 득점을 기록한 아데몰라 루크먼(에버턴), 탄탄한 중원을 구축한 조슈아 오노마(토트넘홋스퍼)를 만나 잉글랜드의 우승 비결을 물었다. 

‘부임 3개월’ 폴 심슨 감독이 가져온 ‘믿음’ 
잉글랜드는 사실 가장 불안한 팀들 중 하나였다. 종주국이라는 수식 탓에 기대감은 높았지만 늘 국제대회에서는 의외의 약체였다. 1997년 이후 U-20 월드컵에서 본선 승리를 단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는 일찌감치 준비했지만 사령탑이 흔들렸다. 폴 심슨 감독이 팀을 맡은 것은 지난 3월이다. 주로 하부리그 팀의 감독 혹은 코치로 활약했지만, 어린 선수들에 대한 정보는 충분했다. 주장인 루이스 쿡은 “처음 감독님이 팀에 부임한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였다. 믿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감독이 하는 말을 믿었고, 감독은 우리를 믿었다. 매 순간 엄청난 영감과 동기를 부여했다”며 “그가 없었다면 잉글랜드가 우승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감독을 중심으로 모든 선수들이 서로를 믿었던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 역시 심슨 감독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한국에서 대회를 치르기 전 일본에서 최종전지훈련을 했던 것도 심슨 감독의 의중이 100% 반영된 결과다. 잉글랜드는 동일 시기에 U-21팀이 유럽 선수권을 준비하고 있어 일부 핵심 선수가 빠지고 상대적으로 U-20팀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심슨 감독은 “우리는 모두가 주전이다”는 말과 행동으로 선수들을 하나로 묶었다.

현실이 된 목표 ‘우승’…키워드는 ‘동료, 소통, 신뢰’
대회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골키퍼 우드먼은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었다. 본격적인 준비에 나선 3월부터 우승을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정말 먼 아득한 목표였다”고 했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를 2승 1무로 통과했다. 16강, 8강, 4강에서 모두 90분 내에 승부를 냈다. 결승전도 마찬가지였다. 우드먼은 결승을 포함해 6경기에 나서서 2실점만을 기록했다. 특히 결승 베네수엘라전에서 막판 상대의 파상공세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막아내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우드먼은 “골든 글러브는 내가 아닌 내 앞의 선수들에게 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수비수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던졌다. 끊임없이 서로 (경기 중) 소통을 했고, 공을 빼앗기지 않고 소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료들이 자랑스럽다”고 찬사를 보냈다. 우드먼과 달리 쿡의 목표는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 우승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우승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쿡은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던 선수들이었다. 나름 1군에서도 경기를 뛰던 자원들이 모여 한국에 왔다. 최대한 높이 가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승전과 우승은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며 “동료들 모두가 챔피언이 되기 위해 함께 땀을 흘렸다”고 했다. 중요한 순간 마다 득점포를 가동한 루크먼 역시 마찬가지로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루크먼은 “믿기지 않는 결과를 위대한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다. 최고의 팀웍을 그라운드 밖에서도 펼쳤고, 결과로 나왔다. 서로를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를 믿고 의지했다.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해 영광이다”고 모든 찬사를 팀 구성원에게 돌렸다. 심슨 감독은 “선수들을 포함한 모두가 믿음을 가지고 대회에 임했고, 그 결과로 우승을 거둘 수 있다”고 ‘신뢰’가 큰 힘이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꿈을 향해  
잉글랜드가 우승을 확정하던 순간 잉글랜드 성인 대표팀은 A매치를 위해 떠난 원정지 프랑스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젊은 삼사자 군단’을 응원했다. U-20팀 선수들의 꿈이자 롤모델인 이들이 미래를 응원한 것이다. 우승을 거둔 잉글랜드 선수들은 월드컵 우승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잉글랜드와 각자가 속한 팀에서의 성공을 위한 자양분이라고 했다. 주장 쿡은 “월드컵 우승은 엄청난 성과다. 앞으로 본머스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모든 선수들이 각자가 최고의 리그에서 활약을 하는 좋은 동기가 될 것이다”며 “이제 다시 시작이다”고 했다. 지난 시즌 토트넘에서 리그5경기를 소화한 오노마는 베네수엘라전에서 공수 양면에 걸쳐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오노마는 “어린 시절부터 월드컵 무대를 꿈꿨다.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며 “이제는 토트넘의 프리시즌을 준비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토트넘의 주전으로 제대로 발돋움하고 싶다”고 했다. 우드먼의 꿈은 더욱 원대했다. 그는 “뉴캐슬과 함께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싶다. 어직은 조금 먼 이야기이지만, 잉글랜드 성인 대표팀의 월드컵에서도 활약하는 것이 이번 대회를 통한 새로운 목표다”고 했다. 젊은 잉글랜드 선수들에게 U-20의 우승은 새로운 꿈, 목표를 선사했다. 심슨 감독도 마찬가지다. 선수 시절, 지도자 시절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제 차세대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됐다. 그는 “선수로서 월드컵 결승에 나서고 싶었지만 실력이 부족해 그럴 수는 없었다. 감독으로 꿈을 이뤄 기쁘다”면서 “내 미래는 잉글랜드축구협회가 결정할 것이다. 다만 나는 앞으로도 잉글랜드 축구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속내를 드러냈다.

고맙습니다, 대한민국! 
잉글랜드에게 이제 대한민국 수원은 성지가 됐다. 1966년 자국에서 월드컵 우승을 한 후 처음으로 월드컵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심슨 감독은 "전주에서 아르헨티나와 첫 경기를 치를 때부터 엄청난 팬들이 우리를 환대해줬다. 물론 수원에서 한국과 맞붙은 경기에서는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은 없었겠지만 이후 전주, 천안, 수원에서 경기를 치르며 만난 모든 한국인이 우리에게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했다”며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팬들이 맨체스터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줬다.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선수들도 하나같이 엄지를 치켜 세웠다. 쿡은 “너무나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완벽한 관중들까지 모두가 최고였다”고 했다. 솔란케는 “한국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환상적인 경기 주최국이었다”며 “사람들도 너무 좋고, 경기장 분위기, 시설 그리고 그라운드 사정까지 완벽했다.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잉글랜드는 약 한 달여 동안 전주, 천안 그리고 수원에서 경기를 치르며 자국 축구 역사의 새로운 발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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