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고양] 한준 기자= “5월 20일 개막전까지 백승호에 맞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신태용 감독)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은 지난 해 12월 부임해 반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옥석 고르기와 전술 입히기, 상대 대응 전력 준비 등 촉박한 일정을 보냈다. 신 감독은 3월 조추첨식 당시에도 “상대 분석과 준비는 대회 직전에 할 것이다. 우리 플레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신 감독의 축구 철학은 공격이다. “언제까지 개기는 축구로 이기려 할 것인가.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좋은 축구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3월 4개국 대회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우루과이나 세네갈처럼 각 대륙 예선을 좋은 성적으로 돌파한 팀을 상대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한국에서 열리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개막을 5일 앞둔 14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출정식이 있었다. U-20 대표팀은 A조 1차전 상대 기니를 대비한 아프리카 예선 2위 세네갈과 2-2로 비겼다. 사우디아라비아에 3-1 승리, 우루과이에 2-0 승리에 이은 무승부. 이겼다면 좋았겠지만, 자칫 자만할 수 있는 상황에 선수단의 들뜬 마음을 눌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가장 주목 받은 선수는 백승호(20, FC바르셀로나B)였다. 신 감독은 지난 2월 포르투갈에서 진행한 전지훈련에서 기대를 받고 있는 ‘바르사 트리오’를 처음 만났다. 백승호, 이승우, 장결희를 직접 훈련시키고, 친선경기를 통해 관찰했다. 신 감독은 백승호와 이승우를 전력의 중심 선수로 택했다. 백승호는 신 감독이 이야기한 '우리 플레이 만들기'에 꼭 필요한 선수였다.

"백승호 선수는 내가 봤을 때 볼을 상당히 잘 찬다. 상대가 아무리 강한 수비를 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다. 볼 키핑이 되고, 패스가 나갈 수 있고, 드리블을 할 줄 아니까. 백승호가 체력만 되면 상당히 기대해도 될 것 같다. 모든지 굉장히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 먼저 와서 자기 플레이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먼저 이야기도 많이 했다. 대표팀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재능 확인한 신태용, 100% 만들기 프로젝트

바르사 후베닐A(19세 이하)팀에서 꾸준히 경기하던 이승우와 달리 여러 사정으로 FC바르셀로나B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던 백승호를 위한 프로젝트 가동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 이때다. 신 감독은 백승호가 탁월한 기술과 축구 지능을 갖췄지만 경기 체력과 감각이 부족하다 것을 파악했다.

“포르투갈 전훈에서 처음 만났을 때 20분도 못 뛰는 구나,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전훈이 끝나니 45분까지 뛸 체력이 올라왔다. 4개국 대회를 하면서 구단을 찾아가 협조 요청을 했다. 대회 이후 바르셀로나로 돌아가지 않도록 부탁했다. 허락해줬고, 한국에서 체력과 근련 운동을 통해 꾸준히 몸을 만들었다.”

신 감독은 우루과이와 경기를 마치고 “백승호가 90분을 뛸 체력이 올라왔다. 우리가 가진 프로젝트로 90분 체력이 올라왔다는 판단이 섰다”고 했다. 그 동안 신 감독은 백승호가 체력적으로 어려워하는 와중에도 꾸준히 가진 체력보다 오랜 시간 경기를 뛰도록 했다. 4월 소집 훈련 당시 인천유나이티드, 수원FC, 전북현대와 경기에서 지속적으로 백승호를 출전시키며 경기 체력 올리기에 집중했다.

신 감독은 백승호가 경기 중 호흡을 가다듬으며 체력을 회복하려 하자 “체력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더 뛰라”고 다그쳤다. 당장 경기에서 체력을 비축해 경기력을 내기 보다 체력의 한계치를 끌어올리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백승호는 지난 경기들에서 플레이상 실수가 나오기도 했는데, 체력을 올리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였다.

신 감독은 백승호의 체력이 완성됐다고 말한 뒤 치른 세네갈과 경기에는 전반 45분 만 뛰게 하고 교체했다. 이제 백승호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과 회복 뿐이기 때문이다. 백승호는 세네갈전 전반전에 자신이 가진 기량을 충분히 보여줬다. 

압박 상황에서의 볼 컨트롤, 역습 상황에서의 장거리 패스, 공격 상황에서 깔끔한 마무리까지. 백승호는 전반 35분 조영욱의 패스를 받아 문전 우측에서 세네갈 수비를 무너트린 뒤 다리 사이로 예리한 마무리 슈팅을 시도해 골문 구석을 정확하게 찔렀다. 이미 지난 12월 수원컨티넨탈컵 이란전부터 3월 아디다스컵 온두라스전과 잠비아전에 득점포를 가동한 백승호는 U-20 대표팀에서 네 번째 골맛을 봤다. 

#날카로운 피니셔, 창조적인 14번, 크라위프의 향기

그 동안 기록한 득점 모두 슈팅 안정감이 좋았지만, 세네갈전 득점이야 말로 기술적으로 가장 탁월했다. 백승호는 “항상 경기 전에 골 넣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한다”며 다리 사이로 때리는 슈팅을 많이 연습한다”고 했다. 

백승호는 바르사 유스팀에서 미드필더로 기용됐고, 지난 1년 간 우측면 날개 역할로 자리를 옮겼다. 대동초 시절 초등리그를 지배할 때는 최전방 공격수로 골 사냥에 나서던 선수다. 공격 지역의 어느 위치에서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스스로 가진 재능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운명은 자신과 궁합이 맞는 감독, 자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신 감독과 백승호는 서로 잘 맞았다. 

신 감독은 원톱 조영욱에 대해 “골을 넣었지만 그것에 좋아하기 보다 지금까지 움직인 패턴과 빠져나가는 움직임, 등지면서 우리 선수들이 오면 볼을 키핑해서 기다려주는 움직임 등을 해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2선 공격과 연계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U-20 대표팀의 좌우 측면에 배치되는 이승우와 백승호는 실제론 풀백이 전진할 경우 가운데로 들어와 득점 과정에 가장 집중한다.

신 감독은 3월 4개국대회부터 4월 연습경기, 5월 친선경기 모두 이승우 조영욱 백승호 조합으로 득점 패턴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스트라이커는 조영욱이고, 10번을 달고 있는 이승우의 돌파와 슈팅이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우측면의 스나이퍼 백승호는 매 경기 꾸준하게 골고 가는 길에 포인트를 적립하고 있었다. 

신태용호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는 백승호는 팀 훈련 외에 득점 과정의 세밀함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개인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슈팅 훈련도 따로 신경 써서 하고 있다.” 백승호의 안정된 마무리 기술은 준비를 통해 얻은 것이다.

백승호는 자신의 득점이 자신 만의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기적인 팀 플레이 안에서의 결과물이다. “아무래도 공격에서 뛰고, (조)영욱이나 다른 선수들이 침투를 하면 2선이 많이 빈다. 그런 부분을 활용하려고 생각했는데 잘 먹힌 것 같다.” 

U-20 대표팀이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려를 받는 부분은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선수들과 비교해 피지컬적으로 열세에 있다는 점이다. 백승호는 세네갈전에서 상대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도 안정적으로 공을 지키고 전개하며 이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백승호에게 공이 연결되면 걱정이 없었다.

“(피지컬에 대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정신적으로 많이 생각하고 준비했다. 긴장하고 임하니 괜찮게 된 것 같다.”

백승호는 자신의 경기 체력과 컨디션이 100%에 근접했지만, 우루과이전이나 세네갈과 경기가 자신의 100%에 이른 것은 아니라고 했다. 백승호의 100%는 기니전에 볼 수 있다. “운동을 좀 강하게 해서 오늘까지 힘들었다. 5일 쉬고 컨디션을 관리하면 20일에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100%의 백승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승호 자신이 가장 염원했을 것이다. 백승호는 전통적인 포지션으로 구분할 수 없는 선수다. 측면과 전방, 2선, 중원을 자유롭게 누비며 경기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 자리보다 흐름을 중시하는 신태용 감독의 철학에 부합하는 선수다.

친선 경기 내내 백승호는 등번호 18번을 달고 뛰었다. 본선에서 달게 될 번호는 14번이다. 신 감독은 상대국의 분석에 혼란을 주기 위해 친선전에 다른 번호를 달게 했다. 14번은 바르사의 축구 철학을 확립한 요한 크라위프가 달았던 번호다.

U-20 월드컵 본선에서 골은 백승호를 타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우아한 플레이를 구사했던 14번의 전설을 재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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