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김재성은 한국 축구의 외부자가 되어 돌아왔다. 올해 처음으로 K리그 바깥에서 축구를 시작한 김재성은 호주 A리그 디펜딩 챔피언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의 일원으로서 제주유나이티드를 상대했다. 하필이면 친정팀을 상대할 때마다 경기가 잘 풀렸다. 호주에서 맞붙었을 때는 어시스트를, 서귀포에서 맞붙었을 때는 골을 기록했다.

지난 11일 ‘2017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애들레이드가 제주에 3-1 깜짝승을 거둘 때 김재성의 경기력이 빛났다. 김재성은 애들레이드의 선제골을 넣었고, 쐐기골을 사실상 어시스트했다. 마냥 기분 좋은 경기는 아니었다. 제주는 김재성의 K리그 경력 처음과 끝을 모두 함께 한 팀이다. 경기 후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조성환 제주 감독에게 인사한 김재성은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한 채 호주로 돌아갔다.

‘풋볼리스트’는 경기를 하루 앞둔 10일 애들레이드의 숙소였던 파크 선샤인 제주에서 김재성을 만났다. 김재성은 오랜만에 돌아온 제주의 격세지감, 국가대표팀을 보는 심정 등 다방면에 걸친 이야기를 해 줬다.

 

1. “제주는 2009년 포항을 떠올리게 해요”

김재성은 2005년 제주의 전신인 부천SK에서 데뷔했고, 이듬해 연고이전을 경험했다. 이후 포항스틸러스, 상주상무, 서울이랜드FC에서 뛴 김재성은 지난해 하반기 서울이랜드에서 제주로 임대돼 반 시즌을 소화했다. 그리고 호주로 가자마자 제주 동료들과 상대 팀으로 만났다.

 

제주도에서 훈련장 구하기 힘들었는데, 제주가 클럽하우스 안에 있는 훈련장을 내줬어요. 그걸 보면서 여유가 있는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쪼잔하지 않잖아요. 빅클럽의 면모가 보이는 거죠. 제가 여기 왔을 때 생각하면 정말 많은 게 달라졌어요.

신인 시절 생각하면 정말 엄청나게 발전했죠. 연고이전 직후에 다들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그땐 클럽하우스도 없어서 풍림콘도에서 자고, 훈련장 매일 옮겨다니고, 선수들이 우울증에 걸렸어요. (우울증이요?) 선수들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생소한 연고지로 왔잖아요. 부천, 인천에 살다가 갑자기 서귀포에 오니까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죠. (조선시대에 제주도로 귀양 보내는 것처럼?) 크하하. 맞아요. 특히 선배들이 힘들어했어요. 형수님과 떨어져 있어야 되니까. 형수들이 와서 2, 3일 정도 있다가 서울로 돌아가거든요. 그래서 심리치료사가 와서 상담해주고 그랬어요.

조금 슬퍼요. 그 힘든 시간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거든요. 물론 지금의 영광은 지금 선수들의 것이지만, 그 전에 고생하면서 준비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서울이랜드에 있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승격할 테고, 그 멤버들은 영광을 누리겠죠. 창단 원년에 고생한 사람들 말고요. 외국에서도 연고이전을 하면 자리 잡는데 5년에서 7년 정도 걸린다고 들었어요. 그 시간을 견딘 사람들은 많이 힘들겠죠.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건 (구)자철이가 왔을 때(2007)였어요. 자철이는 저와 포지션이 같은데 스타일이 달라요. 상대 선수를 잘 벗겨내죠. 전 그걸 할 줄 몰라요. 조금씩 자철이에게 밀리기 시작했어요(2007년 출장 기록은 김재성 24경기, 구자철 16경기다). 따라하려고 시도해 봤는데 오히려 제 장점까지 없어지더라고요. 힘들어하다 밤이 되면 많이 울었어요. 아니, 과장이 아니에요. 정체돼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축구가 처음 불행해졌어요. 그렇게 울고 나서 조금 더 성숙해졌고, 이듬해 포항으로 이적한 뒤에 잘 풀리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자철이는 이런 이야기 모르죠.

자철이 있을 때 준우승(2010)을 거치면서 제주는 확실히 좋은 팀이 됐어요. 작년에 동료 선수들에게 물어보니까 박경훈 감독님 있을 때부터 추구한 축구를 조성환 감독님도 어느 정도 유지했고, 이젠 팀 컬러가 자리 잡았대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서 2009년 포항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표팀 선수는 아니지만 리그에서 실력은 확실한 선수들이 다 모여 있거든요. 포항 때 (황)진성이, (신)형민이 같은 친구들 생각하면 지금 제주의 (이)찬동이, (권)순형이, (이)창민이가 비슷하게 느껴져요. 안현범, 문상윤도 젊고 훌륭한 친구들이고요. 선수들간에 역할 분배가 잘 되어 있고 훈련에서 미리 준비한 대로 득점도 많이 나와요. 선수로서 정말 재밌게 축구할 수 있는 팀인 것 같아요.

아, 서귀포라는 곳도 정말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서귀포 시내에서 젊은 사람을 보려면 수학여행 기간이 유일한 기회였어요. 그런데 지금 중문에 가면 정말 세련된 사람들이 많아요. 제주도라는 섬이 정말 발전했다는 걸 느껴요. 요즘 애들은 살만 할 거예요. 귀양 아니고요. 잠깐 팀 미팅 좀 다녀와서 계속 이야기할게요.

2. “최용수 감독님이 ‘니네 감독 유명하니까 잘 배워’라고 하시더라고요”

김재성은 지난 2월 애들레이드에 합류했다. 애들레이드는 2015/2016 A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ACL에 참가하고 있지만, 2016/2017시즌은 10팀 중 9위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마쳤다. 바르셀로나의 1991년 유로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 주전 미드필더였던 기예르모 아모르 감독이 지휘하고 있다.

 

오기 전엔 몰랐는데, 감독님이 엄청 유명한 사람이래요. 장쑤 원정에서 최용수 감독님을 만났는데 “너네 감독 되게 유명한 사람이다. 많이 배워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지금도 축구 엄청 잘 해요. 훈련에 참가하실 때가 있는데 확실히 잘 해요. 스타일도 약간 바르셀로나 스타일이죠. 빌드업부터 일일이 만들어나가는 축구예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빅 클럽 가서 더 좋은 선수들을 지도하셔야 인정받을 것 같아요. 우리 보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렇잖아요? 황선홍 감독님이나 홍(명보) 쌤도 우리 가르치다가 답답해하시는 걸 가끔 느꼈는데, 아모르 저 분은 호주에 와서... (말을 잇지 못함) 감독님이 평소에 바르셀로나 출신이라고 티를 안 내는데, 한 번 저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한국 선수들이 있는데 잘 아냐고.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라고 했더니 “정말 좋은 선수들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호주는 매력 있는 곳이에요. 축구 하기도, 살기도 좋아요. 애들레이드는 멜버른, 시드니와 다른 시골이지만 우리 팀의 선수 관리는 훌륭해요. 운동 끝나면 아이스 배스(얼음을 채운 욕조)가 준비돼 있고 프로틴 스무디도 라커에 가져다주고요. 좋은 경험이에요.

호주 축구 분위기도 많이 다르죠. 작년에 영국 여행을 가서 브렉퍼스트를 먹는데, TV에서 A리그 중계를 해주더라고요. 런던에서 그걸 볼 줄 알았겠어요? 깜짝 놀랐어요.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예요. 어린 선수가 프로에서 10경기 정도 뛰면 유럽에 나갈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준대요. 비록 실패하더라도 일단 가는 거죠. 그래서 ‘풀럼에서 뛰었던 애’, ‘에버턴에서 뛰었던 애’가 굉장히 많아요. 우리도 현범이 같은 친구들은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겠죠.

무엇보다 애들레이드에서 사는 것이 제게는 큰 경험이에요. 우리 부부는 조용한 도시를 꿈꿔 왔고, 애들레이드는 딱 그런 곳이에요. 한국 음식 해 주는 분들 말고는 교민도 거의 못 만났고요. 항구 쪽은 영국인들이 남겨 놓은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고, 다른 곳은 미국 같은 도시예요. 그런 곳도 산책해 보고. 제 인생에서 이런 생활은 처음이에요. 경기 전날만 아니면 여유 있게 살아도 되는데 그동안 축구에 얽매여 살았거든요. 이제 식당도 제가 찾고, 직접 차 몰고 다니면서 드라이브도 하고, 제 생활이란 걸 찾았죠. 그러니까 축구에 대한 만족감도 더 늘어나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이 후회되진 않아요. 전 타고난 게 없는 선수거든요. 축구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뛰지 못했을 거예요. 와이프는 그런 절 보면서 불쌍했대요. 이제야 달라졌죠.

호주 친구들은 한국과 생활 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주위 선수들만 봐도 그래요. 호주 애들은 운동할 때 정말 피튀기게 해요. 훈련에서 지면 열 받아서 콘을 막 걷어차요. 그런데 훈련 끝나면 멋있게 차려 입고 놀러 가는 애도 있고, 공부하러 가는 애도 있어요. 한국에선 클럽하우스에 사니까 머리 만질 필요가 없죠.

 

3. “지금 대표팀에선 누가 지성이 형처럼 해요?”

김재성은 포항 시절 활약을 바탕으로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멤버에 발탁됐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면서도 헌신적인 플레이를 하는 김재성은 한국의 수비적인 전술에 잘 맞는 선수였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 선발 출장해 활약했다. 리더십 문제가 없었던 당시 대표 멤버 중에서도 ‘희생 담당’이었다.

 

그때 대표팀은 (박)지성이 형이 먼저 헌신했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은 100% 헌신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커 보이던 지성이 형조차 끝까지 공을 추격하고 빼앗아 오잖아요. 그런 선수가 있으니까 저 같은 선수도, (기)성용이 같은 어린 선수도 모두 희생적으로 플레이하려 했죠. 팀이 잘 돌아갔어요. 한국 축구의 큰 장점이죠. 공을 잘 차는 선수들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2010년보다 결과가 나아진 적은 없잖아요. 그렇다면 정답은 그 때 했던 축구, 투지 넘치고 희생적인 축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허정무 감독님이 저에게 “헌신해라” “수비해라”라고 말씀하신 건 아니었거든요. 지성이 형이 분위기 자체를 만들었죠. 그 형은 말로 하는 사람이 아니고 경기장에서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니까요. 그걸 따라하려 했고, 그렇게 축구하려 했고, 다들 그러면서 시너지 효과가 났었나 봐요. 형들의 희생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되물으며) 지금 대표팀에선 누가 그걸 해요?

골을 넣고 골을 먹는 건 다 한 발짝 차이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내가 일찍 땡겼어야 하는데 반 템포 늦게 땡겨서 상대가 중거리슛을 때릴 수 있는 거고. 영상을 돌려보면 그런 부분을 통해 선수가 정말 100% 헌신하는지 알 수 있어요. 물론 앞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수비하러 가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 있죠. (한)국영이 처럼 그걸 잘 하는 선수가 필요한 게 그래서라고 생각해요.

4. “포항에서 은퇴하라는 말, 고맙죠”

김재성이 K리그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족적은 2015년 챌린지 도움상이다. 화려한 선수가 아니라 개인상과 거리가 멀었던 김재성은 챌린지 첫해에 12도움을 기록했다. 이듬해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부침을 겪다 K리그를 떠났다. 김재성은 아직 K리그 경력이 끝나지 않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 하면서 득점상을 바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도움상은 계속 꿈꾸고 있었죠. 제가 골보다 도움을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상을 받았을 때 와이프에게 말했어요. “축구하면서 평생 받고 싶었던 상 받아서 너무 좋다”고. 그게 챌린지더라도.

첫 해외진출이지만 호주에 온 걸 도전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유럽에 가는 게 도전이지, 호주는 언어나 외국의 선수 관리를 경험하고 싶은 욕심에 선택한 것뿐이에요. 여기서 최대한 버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은퇴를 생각하기엔 이른데 적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 같아요. 한 해씩 버틴다는 생각으로, 여기 온 이상 많은 걸 습득해서 나중에 써먹고 싶은 생각이 있죠.

포항에 계신 한 프런트께서 “마지막 은퇴식은 포항에서 해라”라고 하셨어요. 그런 말씀 들으면 너무나 고맙죠. 호주를 택했을 때부터 K리그는 더이상 뛸 수 없겠구나 생각했거든요. 인사를 할 시간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슬펐는데. 아직 축구를 얼마나 할지 계획이 없어요. 호주에서 최대한 경험 하고,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 인사 드리고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사진= 풋볼리스트, 김재성 제공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