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동유럽 축구는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멀어진지 오래였다. 그러나 동유럽 출신 선수들은 각종 구단, 각종 대회에서 황홀한 축구를 만들어 왔다. 크로아티아는 모처럼 동유럽 축구의 매력을 확실하게 보여준 팀이다.

16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결승을 치른 크로아티아는 2-4로 프랑스에 패배하며 준우승했다. 1991년 국가가 성립된 뒤 축구 대표팀이 거둔 최고 성과다. 제 1회 대회부터 참가했던 유고슬라비아를 포함해도 결승 진출은 최초다.

결승전에서 패배했지만 크로아티아는 이번 대회 가장 매력적인 팀이었다. 유독 수비적으로 웅크린 팀이 많은 대회였다. 우승팀 프랑스도 그중 하나였다. 반면 크로아티아는 바르셀로나 소속 이반 라키티치, 레알마드리드 소속 루카 모드리치가 전개하는 미드필드 플레이를 기반으로 기술적인 플레이를 많이 보여줬다. 최전방 공격수 자원의 부족으로 다득점에는 실패했지만 늘 용감하게 경기하는 팀이었다.

크로아티아는 화려한 선수단 중에서도 유독 미드필드의 경쟁력이 높았다. 모드리치와 라키티치뿐 아니라 두 선수를 지원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마르셀로 브로조비치 역시 명문 인테르밀란 소속이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윙어 이반 페리시치는 화려하진 않지만 빠른 상황판단과 다양한 득점 루트를 가진 득점원이다. 이번 대회에서 후보 신세였던 마테오 코바치치도 레알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뛰는 스타 미드필더이자, 뛰어난 드리블 전진 능력을 가진 선수다.

동유럽 축구의 전통적인 테크니션이 크로아티아의 준우승을 통해 모처럼 활약했다. 크로아티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이었던 7개국 중 하나다. 유고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발칸 반도에서 많은 테크니션이 배출됐다. 크로아티아는 즈보니미르 보반, 세르비아는 데얀 스탄코비치와 프레데릭 미야토비치 등이 세계적인 테크니션으로 활동했다. 심지어 2007년부터 축구협회가 시작된 신생국 몬테네그로도 그 짧은 역사 동안 미르코 부치니치, 스테판 요베티치 등 세계적인 테크니션을 배출했고 축구 약소국에 속하는 마케도니아도 고란 판데프를 길러냈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이웃인 불가리아 역시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등 전설적인 선수들의 고향이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는 체격이 크다는 점만 주목해 동유럽의 축구 전통이 ‘기술 축구’라는 걸 간과하곤 했다. 지난 5월, 평가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감독은 자신들이 ‘가상 스웨덴’이라는 점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스웨덴은 피지컬이 좋다. 보스니아는 볼 터치, 패스 위주의 축구를 구사한다. 비슷한 점보다는 차이점이 많다.” 그러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우리는 동유럽 팀이다.” 유고 연방이었던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기술 위주의 축구를 한다는 것이 그들 사이에선 상식으로 굳어져 있는 것이다.

러시아월드컵은 모처럼 동유럽, 특히 발칸반도 축구가 매력적이라는 걸 잘 보여준 대회다. 이번 대회 최고 미드필더를 넘어 최고 선수로 선정된 모드리치는 키가 172cm에 불과하고 체격도 왜소한 선수지만 기술, 시야, 판단속도를 통해 늘 상대 미드필더보다 뛰어난 활약을 했다. 대회 최고 테크니션이었다.

모드리치는 ‘유로 2008’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때부터 크로아티아의 황금 세대가 거론됐다. 그러나 황금 세대는 ‘유로 2008’과 ‘유로 2016’에서 겨우 조별리그를 통과했을 뿐 나머지 유로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하며 화려한 멤버를 낭비했다. 모드리치, 라키티치, 마리오 만주키치 등 핵심 선수들이 모두 서른 언저리 전성기 나이인 이번 대회가 그들의 기술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테크니션들의 또 다른 고향인 남미 국가들이 대부분 일찌감치 탈락한 가운데, 크로아티아는 여전히 신체 능력이나 스피드보다 기술과 지능으로 축구하는 마지막 나라였다. 우승은 놓쳤지만 러시아월드컵을 가장 흥미롭게 만들어 준 팀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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