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남자 축구대표팀 신입 이승우는 기분을 다섯 글자로 표현해 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이렇게 말했다. “이, 거, 실, 화, 냐?”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답게 ‘급식체’로 표현한 감정이었다.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서울광장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대표팀 출정식이 열렸다. 서울광장은 한국 거리응원의 성지다. 그러나 ‘2002 한일월드컵’으로 시작된 거리응원 문화는 이후 세 번의 대회를 거치며 점차 시들해졌고, 최근에는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우려가 나왔다. 대한축구협회는 한국 축구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출정식을 최초로 기획했다.

신태용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선수 22명이 참가했다. 대표팀 엔트리 27명 중 권경원, 김승규 등 해외파 선수 일부는 소속팀 일정을 소화한 뒤 합류가 늦어 출정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가벼운 무릎 부상을 안고 있는 이근호도 런웨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패션쇼 형식으로 진행된 행사는 차범근, 최순호, 서정원, 최진철, 이운재, 홍명보 등 역대 월드컵 대표 중 전설로 남은 인물들이 현역 대표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마지막에 현 주장 기성용이 ‘주장계의 전설’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와 단 둘이 등장해 대화하는 모습은 강렬했다.

현장 분위기는 뜨거웠다. 본행사가 12시 30분경 시작됐는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축구팬들은 오전 9시경부터 모여들기 시작해 사전 행사를 즐겼다. 축구협회는 참석한 팬을 3,000여 명으로 추산했다. 크게 두 부류가 있었다. 각자 응원하는 K리그 팀의 유니폼이나 대표팀 선수의 소속팀인 스완지시티, 토트넘홋스퍼의 유니폼을 입고 온 ‘축덕’들이 한 축이었다. 점심시간에 잠깐 방문한 근처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교집합도 있었다. 양복을 입고 온 축구팬 이성완 씨는 “직장이 광화문이라서 잠깐 들렀다. 대표팀 선수들을 직접 보고 열기를 느끼고 싶어서 왔다”며 대표팀 상황이 어떤지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국인 제이크 씨는 주한미군 아버지를 따라 한국 생활을 오래 경험했다며 “나는 축구 팬이다. 그러나 미국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제 한국이 내 팀이다. 월드컵에서 한국을 응원할 생각으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했다. 친구가 유니폼도 선물해 줬다”며 이름이 마킹된 대표팀 유니폼 차림으로 행사를 즐겼다.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은 ‘레전드’다운 무게감 있는 말투로 “우리 축구가 참 어렵다. 우리 팀이 축구를 잘 하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일방적인 응원이다. 우리 손흥민이 응원을 받아 끼를 발휘할 거다”라고 독려했다. 대표팀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으로 유명한 손흥민은 “내 눈물은 상관없다. 응원하는 사람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들에 이어 등장한 신 감독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첫 경기부터 유쾌한 반란을 보여드리겠다”며 스웨덴전 승리를 공약했다. 선수들도 현장 분위기에 취해 계속 공약을 내놓았다. 삼행시 도중 ‘8’에 맞춰 한 줄을 지어내야 했던 김민우는 8강 진출을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런웨이 행사와 인터뷰가 모두 끝난 뒤 팬들이 몰려들었다. 선수들은 일종의 레드카펫처럼 서울시청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이동한 뒤 버스에 탑승했다. 그 양옆을 축구팬들이 둘러싸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경기도 훈련도 아닌 순수한 대중 행사로 대표팀 선수들이 팬을 만날 기회는 드물다. 이날 참가자는 많지 않았지만 열기는 충분히 뜨거웠다.

서울광장은 이후 지속적으로 축구팬들을 위해 쓰인다. 축구협회는 이후 국내외 친선경기마다 거리 응원을 준비한다. 28일 온두라스전(대구 개최), 6월 1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전(전주), 6월 7일 볼리비아전(오스트리아)이다. 이 경기를 통해 열기를 끌어올린 뒤 6월 18일 스웨덴전으로 시작되는 월드컵 본선까지 서울광장을 축구로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대표팀은 이날 오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첫 훈련을 갖는다. 국내에서 두 차례 친선경기를 가진 뒤 6월 2일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고, 6월 3일 최종 전지훈련지인 오스트리아로 이동한다. 대표팀은 월드컵으로 가는 첫 발을 팬들과 함께 뗐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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